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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2월호

배치되는 욕망을 넘어서 문화 향유자에게 2021년이란

어느덧 2021년 한 해도 저물어간다. 올해를 돌아보면, 모든 것을 어떻게 최대한 ‘비대면’으로 해낼 것이냐에 필사적 노력을 기울인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글쓰기 모임, 독서 모임, 인문학 강연, 직장 근무 등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도 비대면으로 이뤄졌다. 내가 일종의 문화 제공자로서 하는 역할이 있었다면 거의 90% 이상은 비대면으로 했던 셈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문화 향유자로서도 문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비대면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됐다.

구독의 늪

올해 내게 비대면 문화 소비를 상징하는 일은 ‘넷플릭스 구독’이었다. 집에 어린아이가 있는 탓이기도 했지만, 영화관을 찾는 일이 부쩍 줄어들면서 집에서 누릴 콘텐츠가 필요했다. 그렇게 ‘남들 다 본다는’ 넷플릭스를 구독했고, 몇 년 만에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정주행한다든지, 한국 드라마·다큐멘터리·영화 등을 매일같이 찾아봤다.
철학자 들뢰즈가 지적했듯이, 욕망은 ‘배치’에 따른다. 나와 문화 향유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 ‘배치’되자, 나는 그곳에 있는 콘텐츠를 따라 시간을 소비하게 됐다. 넷플릭스가 추천하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소비하고, 그에 대한 욕망을 느끼면서, 자연스레 한 해의 상당 부분이 그런 화 향유로 채워졌다.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 성공만 하더라도 넷플릭스 플랫폼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그런 성공은 불가능했으리라는 것이 거의 대부분의 견해이기도 하다.
결국 코로나 시대, 그중 한 해의 경험은 그 자체로 문화 향유자에게 하나의 거대한 ‘배치’가 된다. 나아가 이런 배치는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 정책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면서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일상생활 전반을 규정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는 공연·전시·강연 공간 등을 멀리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그 일련의 문화가 몰락에 가까운 위기를 겪기도 한다. 그럴때면 문화 향유자로서 나의 위치란, 결국 전체 배치도에 따른 획일적인 하나의 흐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새로운 길을 찾는 주체적 여행

그런데 사실 내가 ‘문화 제공자’로서 필사적으로 다른 방식을 찾았던 것처럼, ‘문화 향유자’로서도 더 주체적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올해 초, 한 강연 업체와 이야기하면서 인문학 강연이 코로나 이후 거의 80% 이상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다. 주변의 작가들도 사실상 생계를 강연료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난 2년여는 “강의가 씨가 말랐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그럴 때, 나는 홀로 SNS에서 사람들을 모집해서 강연과 낭독회, 모임을 비대면으로 이어가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런데 그로 인해 오히려 지역에 갇히지 않고 전 세계의 무수한 사람을 비대면 으로 만나게 됐다.
마찬가지로 문화를 향유하는 입장에서도, 필사적으로 나를 풍요롭게 해줄 문화를 더 명확하게 찾아나갈 의지가 필요했을 것 같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배치돼 드러누워 리모컨을 누르며 고정된 나의 그 자세는 동시에 나의 정신과 경험을 지배해 버린다.
그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으로 자리를 옮기면 나는 책장 앞에 ‘배치’된다. 적어도 내가 느낄 때 책장 앞을 거니는 경험은 TV 앞에 앉아 있는 것보다 주체적이다. 책장의 책들을 살펴보며 기억과 기대를 되짚고, 더욱 차분하게 나의 시간을 결정할 권한이 내게 주어진 느낌을 받는다. 혹은 인터넷을 열어 나의 시간을 달리 채울 방법에 대해 ‘검색’한다. 검색 기술에 따라, 단순히 노출되는 것들의 ‘배치’에 종속되기도 하고, 내가 진짜 원하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서핑’을 해볼 수 도 있다.
어차피 인간의 욕망이란 어느 정도 배치되는 것들에 종속될 수밖에 없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해에는 내가 더욱 주체적으로 문화를 찾아나서는 문화 향유자의 위치를 되찾고 싶다. 무기력이든 코로나 블루든 떨쳐내고, 그것이 방구석 여행이든, 저 바깥 세상을 거니는 위드 코로 나의 여행이든, 더욱 의욕 넘치는 문화 향유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주체적인 문화 향유자들이 우리 사회도, 문화도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어갈 것이라 믿는다.

정지우 문화평론가,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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