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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월호

구산동도서관마을공공 도서관의 미래
아이를 키우면서 왜 우리가 사는 도시에 도서관이 필요한지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나는 책이 펼쳐주는 풍경들이 삶의 지평을 확장한다고 믿는다. 그 믿음을 아이에게도 전하고 싶다. 하지만 단순히 책을 많이 접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대형 서점을 자주 방문하거나 개인 서가를 멋지게 꾸리는 것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도서관은 단지 책을 모아두는 곳만은 아니다.

세계적인 미술사학자 테리 스미스(Terry Smith)는 작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초청 강연에서 미술관과 도서관은 전 지구적으로 사회적 위기 상황에 놓인 오늘날 지켜야 할 인본주의의 마지막 보루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도서관은 현대 사회에 작동하는 얼마 남지 않은 공공의 기지다. 도시의 다양한 계층을 모이게 하고 소외된 자들의 기록을 저장하는 장소다. 이 민주주의적 명제가 작동하기 어려운 현실이 도서관을 가장자리로 내몰곤 한다. 문제는 이러한 도서관의 정의와 가치를 시민인 우리가 인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도서관은 가까우면서도 동시에 멀리 있다.

작은 도서관이 아닌 크고 깊은 도서관

최근 독립서점과 독립출판 붐, 한국 그래픽디자인의 질적 성장 등 여러 면에서 책을 둘러싼 산업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하지만 실상 책은 텍스트가 아니라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하게 소비되고 있다. 한편 공공 도서관은 양적으로 많아졌지만 책 종수가 턱없이 빈약하거나 전문 사서가 없는 상태로 문을 연 곳이 많다. 책의 개념과 도서관의 장소성이 모두 변화와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의 도서관은 종종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경이로운 지식의 성지와는 거리가 멀다. 서구의 역사적인 대학이나 시립 도서관 건물의 장엄함과도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공공 건축물의 비합리적인 생산 시스템이 근본적인 문제일 수 있으나 한국에서 접하는 도서관은 공간적으로 빈약하고 단조로운 편이다. 도서관은 수장고처럼 책을 담아내는 최소 기능만 수행하는 곳으로 보인다.
이러한 도서관 모델의 갈증 속에서 여러 건축상을 받은 특별한 도서관의 소식을 몇 년 전에 듣게 되었다. 디자인그룹오즈가 설계한 은평구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은 건축계 안에서도 화제였다. 단독주택 5채와 연립주택 3채를 활용해서 만든, 도서관 안에 기존 건물의 외관과 조직 일부를 살려낸 건축물로 도시재생의 좋은 사례로 회자되었다. ‘마을’이 붙은 이름에 걸맞게 도서관 내부의 동선이 골목처럼 짜여 동네 가로를 연상시켰다. “책 복도가 된 골목, 미디어실이 된 주차장, 토론방이 된 거실, 당시 유행했던 재료를 알려주는 기존 건물의 벽돌과 화강석 입면 마감재들, 내부로 들어온 발코니, 벤치가 된 기존 건물의 기초 등 마을에 남아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고 싶었다”1)는 건축가 최재원의 말처럼 구산동 풍경 자체를 설계 요소로 삼고 있다. 건물 디자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드물게 주민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방식도 화제가 되었다. 도서관 건립 과정을 담은 만화책 <날마다 도서관을 상상해>는 이러한 이야기를 담은 흥미로운 기록이다. 도서관이 우리에게 언제 이렇게 문화사회적인 측면에서 이슈가 되는 존재였을까. 그만큼 궁금증이 일었다.

건축보다 사람이 드러나는 곳

아이와 함께 구산동도서관마을을 방문하고 든 생각은 우리 동네에도 저런 크고 깊은 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이었다. 역세권에서 숲세권으로, 이제는 숲세권보다 도서관 같은 공공시설이 아이가 있는 가정의 거주 환경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서관은 연구자나 학생을 위한 공간만이 아니라 교육과 돌봄의 장소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 건물은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파트가 주거의 대표 유형인 지금 연립주택이 만연한 구산동의 모습은 한편으로 낯설게 보이기까지 한다. 공적 주체가 조성해야 할 커뮤니티 공간들이 아파트 놀이터나 상가시설로 대체될 때, 구산동의 어머니들은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주민의 뜻을 모아 구청에 정책 제안을 요청하며 긴 시간 동안 노력을 기울였다. 2006년 도서관 건립을 위한 주민들의 서명 운동에서 출발해 2015년 개관하기까지의 경험을 발판 삼아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수백 개의 문화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며 지역의 문화 생산기지로 자리 잡았다.
이곳은 분명한 건축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을 쓰는 사람과 그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이 또렷한, 말 그대로 건물보다 사람이 먼저 드러나는 건축이다. 탄탄하게 짜인 기획 방향과 운영 계획이 물리적인 공간에 잘 녹아들었다. 사서 분들은 적절한 위치에서 충분히 업무를 보고 있어 도움을 청하기 좋다. 도서관이 기획하는 프로그램은 도시문화, 페미니즘, 연극, 인디영화 등등 주제가 다양하며 치밀하다. 입주작가 프로그램도 운영하여 문학이 지역주민과 만나는 장을 만들고 있다. 신남희 구산동도서관마을 관장의 말처럼 이곳은 “공론장의 역할을 하는 곳”2)이다. 동시대 시민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움직이는, 행동을 촉구하는 도서관의 모습이다.
무엇보다 어린이는 물론 청소년을 위한 공간들이 잘 조직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도서관의 문턱을 넘나든다. 실제 구산동도서관마을에는 청소년 동아리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고 아이들은 방과 후에 자연스레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외부 세계와 접속하는 기회를 만든다. 공공 장소를 포함한 많은 곳에서 어린이를 포함한 청소년, 아이를 동반한 부모, 어르신을 보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하지만 세대를 뛰어넘어 사회적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한 장소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당연해야 할 풍경이 무척 신선하고 멋지게 느껴졌다. 우리에게는 이처럼 크고 복합적인, 그리고 유기적인 기능을 가진 도서관이 더욱 필요하다. 대충 책만 집어넣고 도서관이라고 불리는 공간들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나라 공공 도서관의 미래가 조금 더 나아지고 있다면, 그건 구산동도서관마을과 같은 장소가 성취해낸 실천의 두께 때문일 것이다.

  1. “구산동도서관마을”, 월간 <건축사> 2017년 8월호.
  2. “구산동도서관마을 신남희 관장으로부터 듣는 도서관의 역할”, <뉴스페이퍼> 2019년 4월 16일자.
글 정다영_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공간> 기자를 거쳐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다. 전시 기획과 시각문화 연구를 진행하며, 건국대 산업디자인학과 겸임교수 로 출강 중이다.
사진 제공 구산동도서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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