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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3월호

선농단 역사문화관 역사를 복원하여 땅에 아로새긴
조선시대에는 선농단에서 왕이 몸소 밭갈이를 시범하는 친경이 끝나면 귀한 고기로 국물을 내어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를 선농단에서 내린 국밥이라 하여 ‘선농탕’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의 설렁탕이 여기서 유래했다. 왕이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직접 밭을 가는 시범인 친경례를 거행하는 행사를 선농제라 하는데, 그 선농제를 지냈던 곳이 바로 선농단이다. 일제강점기와 도시화를 거치며 훼손된 선농단은 현재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일대에 유적으로 남아 있다. 선농단의 역사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선농단 역사문화관과 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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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중으로 떠 있는 지붕 슬래브가 오픈 스페이스를 제공하며 입구를 만든다.

2 전시관 중정의 중심에 검은 직육면체의 ‘시간의 방’이 있다.

현재의 선농단이 되기까지

선농제의 역사는 고대부터 시작되며, <삼국사기>에 신라가 절기에 맞추어 세 번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그중 입춘 후에 지내는 제사를 선농(先農)이라 했다. 이후 고려시대에 성종이 친경의식을 위해 적전을 설치했고, 의종 때 선농단 제도가 잘 정비됐다. 조선 태종 때 선농단의 형태와 제도를 정비하며 선농만 지내는 것으로 했는데, 성종 대에 이르러 비로소 친경의식 전반에 걸쳐 절차를 정리했다. 이후 성종 6년에 조선 건국 이후 최초로 선농제를 지냈다. 왕이 몸소 밭갈이 시범을 보이는 친경이 적극적으로 논의된 것은 숙종 대이며, 오랫동안 중단됐던 친경의식은 영조 대에 이르러서야 다시 거행됐다. 1909년과 1910년, 순종이 거행한 제사를 마지막으로 사직단으로 위폐가 옮겨지고 제향이 폐지됐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원잠종제조소(씨누에 보급기관)가 당시 동적전 인근으로 이전되면서 선농단 주변이 크게 변화되고 훼손되었다. 1923년 사이토 마코토 총독에 의해 방치되어 황폐된 선농단은 한 차례 정비됐다. 1938년 경성여자사범학교가 세워지고 1939년 학교 기숙사가 계획되면서 향나무를 기준으로 남향에 있었던 제단의 위치가 변경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그 부지가 서울대 사범대학으로 이어졌으며, 1957년까지 학생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었다. 1970년 서울대가 관악으로 통합 이전하며 당시 대한주택공사에서 부지를 매입했고, 이후 주변으로 주택 단지가 들어서면서 어린이 놀이터로 변했다.
1979년에는 지역주민들이 대가 끊긴 선농제를 다시 지냈다. 이에 선농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1988년에 동대문구가 중심이 되어 선농제를 복원, 지역행사로 이어져오고 있다. 1994년 서울 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일환인 뿌리 찾기 사업으로 복원 과정을 거쳐 2009년 이후 선농단 정비 및 역사공원조성 기본 계획이 수립되었다.
현재 복원된 선농단은 선농단 역사문화관의 상부에 있다. 건물에서 바로 연결되지 않고 도로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계단을 조성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보면, 선농단은 총 4개의 홍살문으로 둘러싸인 바깥의 외유와 안쪽의 내유로 나뉜다. 내유에는 잔디 없이 흙만으로 이루어진 사각형의 제단이 있다. 제단에서 북쪽의 홍살문을 바라보면 멀리 있는 아파트 단지가 시선을 가로막는다. 600여 년 된 향나무를 중심으로 과거 선농단의 위치와 크기 등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선농단은 위치가 바뀌고 규모가 변화되었지만, 향나무는 여전히 옛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선농단 역사문화관의 시간

선농단 역사문화관은 우리동인 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했으며 2015년 개관했다. 선농단을 기준으로 보면 지하 1층이지만 입구에서 바라보면 1층으로 콘크리트 기둥 두 개가 지붕 슬래브를 받쳐 올리고 있다. 사람들의 접근을 유도하는 오픈 스페이스를 만들어 입구성을 강조했다. 어두운 색의 벽체는 밝은 색의 슬래브와 경계를 명확히하여 마치 지붕 슬래브가 공중에 떠 있는 듯 보인다. 외벽은 정갈하게 쌓인 석재와 가로 줄무늬 와편으로 시공되어 전통적인 분위기와 함께 편안한 느낌을 자아낸다. 세로로 긴 창은 재료와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됐다.
전체가 지하로 묻힌 선농단 역사문화관은 지하 1층으로 들어가야한다. 지하 1층 로비에는 안내데스크와 전통카페가 있으며, 전시실에서 바로 지하 3층 체험공간으로 내려갈 수 있다. 지하 2층은 주차장이다. 전시관은 중정을 중심으로 경사로를 따라 관람할 수 있다. 동선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벽의 가로로 비어진 창을 통해 검은 직육면체가 보인다. ‘시간의 방’이라 불리는 이 공간은 선농단 역사문화관 내부에 외부공간을 관입시키는 장치이면서 전시관 중정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지하 3층은 체험형 전시 시설이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와 체험학습 등이 이곳에서 열린다. 선농제 진설 체험, 외복 체험, 탁본 체험, 농기구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지하 3층에서는 직접 ‘시간의 방’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시간의 방’은 원래의 위치를 유지하는 향나무를 중심으로 남측에 존재했던 원형의 선농단을 북측에 투영한 공간이다. 하늘과 연결된 유일한 공간으로 콘크리트 벽에 햇빛이 반사되어 들어와 내부까지 밝힌다. 안쪽의 벽에는 작은 아크릴 기둥들이 박혀 있다. 해가 강하게 비추는 날에는 투명한 아크릴에 그림자가 만들어져 환상적인 이미지가 생겨난다. 해가 뜨는지, 비가 오는지, 눈이 내리는지 등 날씨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도록 비워졌다.
과거가 현재로 복원되면서 어우러진 시간과 공간은 백성에서 시민으로 변화된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듯 보인다. 선농단 역사문화관은 아래에 숨어 있지만, 그 의미만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로새겨지면 좋겠다.

글·사진 이훈길_(주)종합건축사사무소 천산건축 대표. 건축사이자 도시공학박사이다. 건축뿐 아니라 건축 사진, 일러스트, 칼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도시를 걷다>와 <건축 사진·스케치 기초부터 따라하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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