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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노배우, 젊은 배우
눈부시게 밝은 조명이 켜지면 노배우가 무대 가운데에 서 있다. 흐뭇한 표정의 노배우는 관객을 향해 천천히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곧이어 누군가를 소개하겠다는 듯 잠시 박수를 친 후, 뒤의 무대 장막을 가리킨다. 하지만 장막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노배우는 당황한 것을 숨기려는 듯 애써 태연한 기색으로 한 번 더 무대 뒤를 가리킨다. 여전히 아무도 나오지 않는 무대. 노배우는 관객들의 눈치를 보며 무대 뒤 장막으로 슬금슬금 다가간다.
- 노배우
- (속삭이듯) 뭐하고 있는 거야.
아무도 대답이 없다. 노배우는 잠시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장막을 두드려보려 한다. 그때 장막이 조금 흔들린다.
- 노배우
- 거기 있네. 빨리 나오라고!
묵묵부답.
- 노배우
- 지금 나와야 되는 거 몰라?
불러도 대답이 없자, 노배우는 포기하고 다시 무대 중앙으로 온다. 노배우는 혼자서 무슨 행동을 해보려다가 이내 멈추는 것을 몇 번 반복한다. 노배우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장막 뒤에서 젊은 배우가 등장해 노배우 옆에 선다. 젊은 배우는 노배우와 똑같은 옷차림을 한, 무척이나 닮은 모습이다.
- 젊은 배우
- (노배우를 바라보며) 죄송합니다.
노배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젊은 배우를 바라본다.
- 젊은 배우
- 나오시죠.
노배우, 객석과 젊은 배우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객석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한다.
- 노배우
- 정말 죄송합니다, 여러분. 잠시만….
노배우는 젊은 배우를 무대 구석으로 끌고 간다.
- 노배우
- (작은 소리로) 왜 그러는 거야? 미쳤어?
- 젊은 배우
- (분명한 목소리로) 아뇨. 저는 그저 제 할 일을 다했을 뿐입니다.
- 노배우
- 다음 장면을 이어가야 할 거 아냐. 이제 제일 중요한 장면이잖아.
- 젊은 배우
- 아뇨. 이 공연은 다 끝났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조명이 조금 어두워진다.
- 젊은 배우
- 나가셔야 합니다.
- 노배우
- (답답하다는 듯) 그게 무슨 헛소리야.
- 젊은 배우
- 따라오셔야 해요.
- 노배우
- 나 원 참. 이거 미치겠구먼.
순간 객석 몇몇 자리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전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다. 아까보다 조금 더 어두워지는 조명. 노배우는 이상하다는 듯 객석의 울음소리가 나는 쪽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젊은 배우를 바라본다.
- 노배우
-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을 좀 해줘.
- 젊은 배우
- 정말 모르시겠어요?
(사이)
- 젊은 배우
- 당신만 퇴장하면 이 연극은 끝나요.
노배우, 멍하다가 점점 무언가를 깨달아가는 표정이다. 노배우가 객석을 향해 고개를 천천히 든다. 그와 동시에 조명은 점점 더 어두워진다. 어느새 암흑 같은 무대, 젊은 배우와 노배우를 비추는 핀조명만이 남는다.
- 젊은 배우
- 가시죠.
- 노배우
- 안 돼. 이다음 장면 하고 가야지.
- 젊은 배우
- 저도 어쩔 수 없어요. 나가야 해요.
- 노배우
- 아니야. 아직 늦지 않았어.
- 젊은 배우
- 아뇨. 늦었어요. 나도 그러고 싶었던 건 아닌데.
- 노배우
- (울분을 토하며) 이제 여기가 클라이맥스잖아. 이 사람아!
(사이)
- 젊은 배우
- 미안해요. 당신이 원하던 장면은 이게 아니죠?
- 노배우
- 이제 정말 멋진 장면이 시작되는데. 잘할 수 있단 말이야.
노배우, 퇴장하기 싫다는 듯 무대 이쪽저쪽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그 모습이 안쓰럽다는 듯 객석에서 한 번 더 울음소리가 들린다. 켜져 있던 핀조명마저 희미해지고, 무대는 두 사람의 움직임이 희미하게만 보일 정도로 어두워져 있다. 노배우, 무대가 어두워진 것을 확인하고는 털썩 주저앉는다.
- 노배우
- 할 수 있는데.
(사이)
- 노배우
-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젊은 배우, 노배우에게 천천히 다가와 앉아 있는 노배우를 안아준다.
- 젊은 배우
- 그러고 싶었던 건 아니야.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어요. 나 이해하죠?
노배우, 젊은 배우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번엔 본인이 먼저 젊은 배우를 안아준다. 젊은 배우를 따라 천천히 일어나는 노배우.
- 노배우
- 한 많고 미련 많은 공연이었어….
노배우와 젊은 배우가 천천히 퇴장하며 무대도 서서히 암전. 그와 동시에 객석의 울음소리가 커져간다. 중간중간 곡소리도 들린다.
3월호를 마지막으로 <10분 희곡 릴레이>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