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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월호

안소랑 작 아포토시스와 총

10분 희곡 릴레이 관련 이미지

* <10분 희곡 릴레이>는 젊은 작가 혹은 지망생들의 재기발랄한 10분 단막극입니다.
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人에 가시면 더 많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webzine.e-stc.or.kr)


등장인물 학생, 형사
무대 교실 책상, 교실 의자



어두운 교실 안에 총을 든 학생이 서있다.

학생
(관객석을 바라보며) 주말에 교실에서 사건 하나가 일어났어요. 무슨 사건인지는 모르겠는데 누가 우리 반에서 자살을 했대요. 학교에서는 묻으려고 조용히 끝내려 한다는데, 여튼 그때 형사 하나가 수사를 하려고 교실에 들어왔는데 총을 두고 간 모양이에요. 총은 제 자리 위에 있었어요. 이게 무슨 뜻인 줄 알아요? 나한테 기회가 왔단 뜻이에요. 전부터 마음에 안 드는 년 한명이 있었어요, 제 1등 자릴 빼앗은 년이죠. 이번 중간고사, 그년때문에 다 말아먹었어요, 나한테 검정 볼펜 하나를 빌려갔는데 보니까 그게 저한테 있던 마지막 볼펜이었던 거예요. 덕분에 전 시험을 제대로 못 봤어요. 답이란 답은 죄다 밀려 쓰고, 서술형 답 맞춤법을 틀려버렸다고요. 그래서 전 그년한테 복수할 계획을 세우려고 했어요. 하지만 어떻게 세워야 할지 막막했죠. 이런 기회가 생길 줄도 모르고요.

그때 누군가가 교실 문을 열쇠로 여는 소리가 들린다.
학생은 침착하게 자신이 숨어 있을 곳을 향해 숨어 어둠 속에 파묻힌다.
교실 문을 연 것은 형사였다. 형사는 열쇠로 머리를 긁적이며 교실 안으로 들어온다.

형사
에이 시발, 건망증도 이런 건망증이 없지. 총을 두고 다니는 형사가 세상에 어디 있어. 어제는 뭐 기집애가 죽지를 않나. 분명 여긴 터가 안 좋은 거야, 터가.

형사는 자신이 있던 책상으로 걸어간다.
하지만 책상 위는 깨끗하게 비어 있다.

형사
어? 뭐야, 분명 내가 총을 여기에다가, 여기에다가 두고 갔는데! (관객석을 바라보며) 저기요, 여기 계속 앉아 있었어요? 그럼 내 총, 내 총 어디 있는지 알아요? 몰라? 모른다는 거야, 안다는 거야. 내가 어제 총 없어진 거 알고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알아? 아주 나타나기만 해봐, 내가 돈이란 돈은 다 물려서 깜빵으로 시원하게 보내버릴…. (학생이 숨어 있는 곳을 발견하며) 왁!
학생
(저를 찾은 형사를 발견하며) 악!
형사
왁!
학생
악!
형사
왁!
학생
악!
형사
학생 왜 거기에 쥐새끼처럼 숨어 있어!
학생
아저씨야말로 왜 이 시간에 교실에 들어와 있어요!
형사
나야, 내…. 학생, 그나저나 여기 책상 위에 있던 총 본 적 없어?
학생
모, 몰라요.
형사
모를 리가 있나, 새까만 거! 총 말이야, 총! 빵빵! 총!
학생
(들고 있던 총을 뒤로 숨기며) 아니, 그걸 왜 저한테 찾아요! 아저씨가 잃어버린 걸.
형사
그러니까 지금 찾고 있는 거 아니야, 거 뒤에 숨긴 건 뭐야.
학생
뒤에 숨긴 거 없어요.
형사
숨긴 게 없기는, 빨리 내놔 봐.
학생
왜 그러세요, 진짜! 이거 성추행으로 신고할 거예요!
형사
(학생에게 다가가며) 성추행은 무슨! 만지지도 않았고만! 빨리 뒤에 좀 봐, 학생!
학생
(허겁지겁 형사에게 총을 겨눈다) 저리 가라니까!
형사
악! 니가 가진 거 맞잖아! 그거 위험한 거야. 진짜 탄알이 들어가 있는 거라고, 얼른 총 내려놔. 내려놓고 우리 천천히. 그래, 말로 하자! 말로!
학생
저 이 기회 놓치면 진짜 등신이에요. 쓰고 바로 돌려드릴게요, 그러니까 제발 한번만요!
형사
학생! 사람 쏘면 살인이야! 그리고 우리 형사들도 총 같은 거 함부로 못 쓰게 되어 있어!
학생
거짓말 마요! 영화에서 보면 막 빵빵 쏴 죽이고 그러잖아요!
형사
그건 영화잖아, 등신아! 얼른 총 내려놔, 아저씨 진짜 화낼 거야! 나 진짜 화내!
학생
아! 알았어요. (형사와 자신의 거리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그럼 총 여기, 여기에 둘게요. 여기에 둘 테니까 건 드리지 마요.
형사
알았다고! 알았다고!

학생은 조심스레 들고 있던 총을 바닥에 내려둔다. 학생이 총을 내려놓은 것을 확인한 형사도 안도하며 자리에 털썩 주저 앉는다.

형사
아이고, 식겁했네. 야, 총은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멋있게 탕, 탕하고 쏠 수 있는 게 아니야.
학생
아무것도 모르면서, 제가 이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형사
왜, 왜! 누굴 쏘려고, 뭘 누굴 쏘려고 중요한 기회 타령이야!
학생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예요, 걜 죽이면 저는 제자리를 찾을 수 있어요.
형사
네가 지금 있는 자리가 뭔데.
학생
1등이요.
형사
뭐? 1등? 겨우 1등 자리 가지고 사람을 죽이겠다고? 와, 요즘 애들 무섭네.
학생
겨우 1등 자리 아니에요. 제가 여태까지 줄곧 지켜오던 자리라고요!
형사
그냥 다시 그 1등 자린가 뭔가를 뺏으면 될 거 아냐, 꼭 사람까지 죽여야겠냐?
학생
네, 죽여야 해요. 저는 제 물건, 제자리 건드리는 애들은 가만 안 둬요.
형사
그럼 총은 더더욱 못 빌려준다. 아니 애초에 빌려주지도 못해.
학생
아저씨, 아저씨는 제가 얼마나 필사적인지 모르잖아요!
형사
그게 필사적이라고? 그건 필사적인 게 아니라 충동적인 거야! 너 충동적인 살인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기는 아냐?
학생
충동적인 거 아니에요, 그리고 걔는 죽어도 상관없는 애라고요.
형사
세상엔 죽어도 될 만한 이유를 가진 애는 없어! 그리고 네가 뭔데 죽어도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냐, 네가 판사라도 되냐?
학생
아저씨!
형사
내가 원래 이런 도덕적인 말 쓰는 거 싫어하는데, 너한테는 써도 되겠다. 학생! 생명은 소중한 거야!
학생
아저씨가 뭘 안다고 저한테 충고예요.
형사
아잇, 시끄러워. 철없는 고삐리 얘길 처음부터 들어주는 게 아닌데.

형사가 앉았던 자리에서 엉덩이를 털며 일어서자 학생이 바닥에 두었던 총을 잽싸게 챙긴다. 그러자 형사가 학생의 팔을 꽉 부여잡으며 총을 빼앗으려 한다.

형사
너 그거 이리 안 내놔?
학생
안 돼요! 못 줘요! 아저씨가 제 책상 위에 두고 간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이제 제 거예요!
형사
그건 내 총이야! 그리고 잃어버린 거지, 너한테 버린 게 아니거든!
학생
아이 씨, 시간 없어요! 이제 안소랑 올 때 다 됐단 말이에요!

그때 필사적으로 총을 받으려 하던 형사가 멈춰 선다. 형사가 학생을 바라보자 학생도 형사를 바라본다.

형사
안소랑이라니.
학생
뭐가요.
형사
지금 너가 안소랑이라면서.
학생
네, 왜요?
형사
그, 그러니까 네가 여태까지 죽인다 하고 떠든 애 이름이 안 소랑이야?
학생
네. 제가 죽인다 하고 떠든 애가 안소랑이에요.

형사가 말없이 침묵을 유지하다 학생을 바라보며 말한다.

형사
걔 죽었어, 여기 교실에서.문화+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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