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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월호

오케스트라로부터 배운다 ‘조화(Harmonie)’를 향한 ‘사랑(Phil)’
‘오케스트라’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의 무대와 객석 사이에 위치한 공간을 가리키는 용어 ‘오르케스트라(orchestra)’에서 유래한다. 무대 위의 배우들과 별개로 극의 진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코로스(chorus)’는 주로 이 공간에서 춤을 추거나 악기 연주를 하며 노래를 했다고 전해진다.

장윤선의 음악 정원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오르페오>, 근대적 오케스트라의 출현

무대에서는 직접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암시들을 관객들을 향해 전달하는 ‘코로스’의 거점이 바로 ‘오르케스트라’였다. 오늘날 일부 공연장 구조에서 무대와 객석 사이에 객석보다 한 단 정도 낮게 갖춰진 구역인 ‘오케스트라 피트(pit)’는 바로 ‘오르케스트라’의 흔적이다.
그리스 문명의 모방과 변형을 통해 독자적 문화를 형성한 고대 로마 시기에는 공간으로서의 오르케스트라에 일종의 ‘특별석’ 의미가 부여되었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연결 장치로서 기능한 이 공간이 무대와 객석을 구분 짓게 된 것이다. 현재의 공연장에서도 ‘오케스트라 피트’를 객석으로 개방하는 사례를 종종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전통에서 유래하는 셈이다.
근대적 의미의 연주 방식으로 ‘오케스트라’가 역사 속에 등장하게 된 것은 르네상스 후기에 해당하는 16세기 말경부터다. ‘문예부흥(文藝復興)’이라는 한자어로 번역되는 르네상스의 기본 취지는 잘 알려진 대로 고대 그리스의 예술과 정신을 되살리는 데 있었다. 이 시기 이탈리아의 작곡가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34)가 남긴 오페라 <오르페오>(1607년 초연) 역시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창작된 작품이다. <오르페오>는 여건에 따라 임의로 악기를 선택해 연주하던 기존의 관례를 벗어나, 극 중 연주되는 악기들을 악보에 상세하게 지정해놓은 최초의 사례로 기록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본격적인 전문 연주자들로 구성된 근대 오케스트라의 시작점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고대에 대한 동경과 시민사회의 역동성이 녹아 있는 역사

오케스트라와 고대 그리스를 잇는 또 하나의 키워드 ‘아카데미(academy)’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BC 427~347)의 교육기관 ‘아카데메이아('Aκαδημ(ε)ια)’에 기원을 둔다.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플라토니카(accademia platonica)’는 메디치 가문 중심의 인문주의자 모임으로, 이곳에서 이루어진 논의는 주로 그리스의 종합적 지식을 부활하려는 취지와 맞닿아 있었다. 음악 연주와 청취 역시 이 모임의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모차르트(W.A.Mozart, 1756~1791)가 18세기 후반경 빈에서 개최한 자신의 음악회를 ‘아카데미’라고 지칭한 것을 비롯해, 현재에도 공식 명칭에 ‘아카데미’라는 단어를 포함하는 주요 오케스트라의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오케스트라를 뜻하는 말 중에 ‘조화(Harmonie)’에 대한 ‘사랑(Phil)’, 즉 필하모니(Philharmonie)를 빼놓을 수 없다. 181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결성된 ‘음악 애호가 모임(Gesellshaft der Musikfreunde in Wien)’이 마련한 연주단체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빈 필하모닉(Wiener Philharmoniker)’의 모체가 되었다. 이후 유럽의 주요 도시에는 ‘필하모니’라는 명칭이 붙는 오케스트라가 다수 등장하게 되었다. 이때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들은 대체로 과거의 왕정사회 관습을 거부하는 자주적 시민계급을 중심으로 직접 기획 운영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지혜로운 자’라는 호칭 대신, 스스로 ‘지혜를 사랑하는 자(philo-sophos, 철학자)’로 불리기를 바랐다고 한다. 특정한 지혜를 얻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탐구의 여정을 멈추지 않은 옛 철학자의 신념이 전해지는 일화다. 같은 방식의 조어 ‘필하모니(phil-harmony)’ 또한 완결된 조화이기보다는 ‘균형 또는 조화를 향한 사랑’을 추구하는 일종의 유기체로서의 오케스트라에 대한 은유로 이해할 수 있다.

안정적 질서와 견고한 제도 위의 아름다운 조화

영국 출신의 고대 그리스 연구자 콘퍼드(F.M.Cornford, 1874~1943)는 <천체(天體)의 조화>라는 에세이에서, 고대 그리스의 ‘하르모니아(harmonia)’는 “복잡한 조직 안에서 각 부분이 적절하게 갖춘 질서”를 의미하는 개념이었다고 설명한다. 음악 용어로서의 ‘하모니’는 주로 ‘화성(和聲)’과 동의어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지만, 더욱 상위 개념의 조화까지 포괄하는 표현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흔히 서구의 근대 오케스트라는 일상적 제도나 조직의 모범 사례로 거론되곤 한다. 대부분의 오케스트라가 음악 작품의 연주를 통해 주목받는 듯 보이지만, 그에 앞서 필요한 안정적 질서와 이를 구현하기 위한 견고한 제도가 확립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연마의 절차가 필요하다. 고대 그리스의 정신성을 향한 동경과 서구 시민사회로의 역동적 전개가 내재한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그 자체로 조화에 대한 사랑의 오랜 기록이기도 하다. 소란한 한 해를 마감하며 맞이하는 새해 아침, 새삼 되새겨볼 만한 주제가 아닐까 한다.문화+서울

글 장윤선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사를 전공하고 <근대 일본의 서양음악 수용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강의>(교유서가, 2016)를 우리말로 옮겼다. 현재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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