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터뷰는 크뤼거를 만나기보다 크뤼거라는 캐릭터로 살고 있는 사람, 김선경을 만나고 싶었다.
<포미니츠>는 ‘재능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다. 자기가 가진 게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 여기서 배우 김선경의 재능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녀가 가진 소중한 재능은
멀리서 보면 배우 김선경은 맑고 밝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2003년 <넌센스 잼보리>에서 로버트 앤 수녀를 연기한 김선경을 잊을 수 없다. 타고난 재능으로 공연·영화·방송을 종횡무진하며 승승장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어린 시절 단단한 호두 껍데기 안에 있던 재능을 잘 피워내지 못한 상처를 언급했다. “제가 어릴 때, 가난했어요. 어려웠어요. 그런데 노래를 참 잘했어요. 학교 대표로 시립합창단에 들어갔는데, 재능으로만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더라고요.
” 연줄, 치맛바람 영향이 컸던 그 시절에 단장님이 엄마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합창단을 그만뒀다는 고백을 했다.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존감이 어릴 때는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빛과 물을 받으면서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성장하기 어려웠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정통으로 배우지도 못했고, 학비 때문에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그 삶이 너무 치열해 마음으로 함께하지 못하고, 자꾸 울기만 했어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녀는 환경이 어렵더라도 재능 있는 친구들을 키워주는 역할이 앞으로의 꿈이라고 언급했다. 김선경 안에 크뤼거를 해야 하는 생생한 이유가 있었다.
김선경의 소중한 재능은 변신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제가 예전에 일인극을 했을 때, 일인팔역을 했어요. 너무 재밌는 거예요.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사람 속에는 참 여러 가지 모습이 있구나.” 배우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은 양면성과 부조리, 각자가 모순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배우는 그런 다양한 모습을 대신해서 보여준다. 김선경이 배우로서 행복감을 느낄 때는 “할머니 같아, 진짜 할머니야, 나올 때부터 할머니야”라는 자신의 변신에 대한 반응을 실감할 때 용기가 생긴다고 한다. 김선경의 변신은 다채로운 화려함이 아니다. 그녀는 배우를 서비스업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사람이 웃을 때 웃을 수 있고, 울 때 울 수 있으면 스트레스가 없을 것 같아요. 울고 싶을 때 참아야 하고, 웃고 싶은데도 참아야 하고, 주위에 너무 휘둘리면 내가 없어지잖아요.” 그녀의 변신은 관객이 울고 싶을 때 울게 하고, 웃고 싶을 때 웃게 할 수 있는, 나를 버리는 변화를 통해 사람들을 안아줄 수 있는 변신을 의미한다. 재능은 어찌 보면 재주보다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인지 모른다.
제가 예전에 일인극을 했을 때, 일인팔역을 했어요. 너무 재밌는 거예요.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사람 속에는 참 여러 가지 모습이 있구나.
뮤지컬 <포미니츠>에서 크뤼거를 연기하는 배우 김선경
재능의 문을 연 순간
<포미니츠>에서 크뤼거는 재능을 가진 제니에게 “너의 문을 열어라”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 목소리는 제니의 재능을 피우기 위해 크뤼거가 주는 빛과 물일 것이다. 어린 시절 자신의 재능에 자존감을 갖지 못했던 김선경이 자신이 지닌 재능의 문을 연 그 순간이 궁금했다. “저 같은 경우는 뒤에 알았어요. 난 정말 피하고 싶었는데, 웃긴 건 돌고 돌았는데 돌아서 온곳이 결국 여기더라고요. 그게 40대였어요.” 의외의 답변이었다. 사람들이 “넌 연기에 미칠 수 있는 여자야”라고 했을 때, 그녀는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고 했더랬다. 스스로 단지 배워가는 사람이고, 세상이 싫고,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애라고 생각했다. 40대가 돼서야, 나의 문을 열고 이게 내가 갈 길이구나를 깨닫고 미친 듯이 열심히 했다고 한다. 이어서 바로 물었다. “이전에도 미친 듯이 했잖아요. 지금의 ‘미친 듯이’와 이전의 ‘미친 듯이’는 무슨 차이가 있나요?” 바로 다르다고 대답했다. “이전에 미친 듯이는 나를 택한 사람에게 후회하는 마음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어요. 나를 택한 당신을 믿고, 당신이 나를 믿어줘 정말 고마우니, 내가 그 믿음에 어긋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 충실하고 성실하게 미쳐보겠다는 의미였어요.” 우리들은 누군가의 기대와 믿음을 충족하기 위해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비중이 너무 커지면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김선경은 타인의 기대 속에서 살아내는 자신의 모습에서 ‘내’가 별로 없었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 <써니>의 복희는 그녀에게 분기점이 됐다. 분량이 많지도 않고, 예쁜 캐릭터도 아니었다. “약간 정신 나간 여자였어요. 왔다갔다 왔다갔다 하는 연기를 연극 한 편을 찍듯이 하루 종일 담배 몇 갑을 피우고, 그런데 사람들한테 임팩트를 줬어요.” 나의 중심을 가지고, 내가 어떤 색깔로 가느냐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어쩌면 나로서 존재하는 연기 인생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은 자각의 순간이 있었다. 나로서 존재하는 것은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묵묵히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라 얘기한다. 배우로서 삶의 중심이 타인의 기대에서 나 자신으로 온 것이다.
지구력을 가진 연기 인생
<포미니츠>의 크뤼거는 나이가 많은 할머니다. 배우가 나이를 먹으면, 맡는 캐릭터도 나이를 먹는다. 이전 다른 인터뷰에서 김선경은 “지금이 연기하기 가장 적정한 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많은 20~30대 배우에 비해 50대 배우는 그 수가 적다. 50대 배우로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질문했다. “40, 50대까지는 재능을 가지고 살 수 있지만, 60대부터는 정신력으로 사는 것 같아요. 재능이 자꾸 쇠퇴하고 힘이 빠지는 것이라면, 60대부터는 어떻게 정신력으로 이것을 끌고 가느냐인데, 60대까지 살아온 사람들은 느릴 수는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 죽을힘을 다하는 정신력이 있는 것 같아요.” 안 되는걸 억지로 하는 정신력이 아니라 배우로서 마음을 잃지 않는 정신력을 얘기한다. 60대 이후 지난 시간에 머물지 않고,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본인 스스로 흐트러지지 않으려는 자기 고집이 있다. 그리고 “오래 활동하는 배우분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본다고 생각해요. 연기 잘하는 사람은 있지만, 불편하게 하는 사람은 안 보는 거죠. 젊을 때는 다 예쁘지. 그런데 나이 들면 그 사람이 살아온 게 보이잖아요. 그게 독하게 보이면 그 자체가 시청자와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거든요. 나문희 선생님도 그렇고, 김혜자 선생님도 소녀 같은 눈빛이 있어요.” 인간적인 면이 오래 활동하게 하는 재능이 될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재주보다는 인간적인 면이 함께 살아가는 재능이 된다. 여기서 인간적인 면은 인정이 많다는 의미도 있지만 솔직함에 대한 의미가 커 보인다. “<미나리>에서 윤여정 선생님을 보면 힘을 주는 연기가 아니라 힘을 빼고 하시거든요. 본인이 그냥 할머니라는 걸 인정하고 들어가는 거예요. 인정했기 때문에 연기가 아니라 그냥 할머니로서의 모습, 본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생각해요. 그게 인정받았다고 생각해요. 뭐든 억지로 먹으면 체해요. 그냥 있는 그대로 약간 모자라도 그게 사람들에게 더 어필이 된다고 생각해요.” 20대부터 시작된 그녀의 연기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면 이제 후반이 아니라 반환점을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젊어 보이려는 안티에이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들어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익어가는 연기를 하려고 하는 힘에서 느껴졌다.
나에게 맡겨진 건 뭐였을까,
어쩌면 견디는 일이었는지도 몰라.
뮤지컬 <포미니츠>중 피아노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는 크뤼거(김선경)와 제니(김환희)
하나의 배역에 들어가고 나오는 흐름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배우는 자신만의 연기를 하는 루틴 혹은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김선경 배우가 가진 연기의 도화지는 따뜻한 인정의 질감을 가진 한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뤼거라는 수묵이 떨어졌을 때, 캐릭터를 흡수하며 번져가는 모습을 인터뷰하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배역을 맡으면 ‘내가 너라면’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크뤼거를 감성으로 공감하죠. 왜 여기서 이런 말을 했을까,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크뤼거는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이에요. 이 여자는 옷도 한 다섯 벌 정도 있을 거야. 그저 단절돼 있고, 스탠드 하나 놓고 살았을 거야. 대본에 나와 있는 이 여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말과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연기는 원인 혹은 사건을 찾는 과정보다는 행동의 이유를 찾는 여정에 가깝다. “그다음부터 ‘내가 크뤼거라면’ 이라고 생각해요. 크뤼거의 가정과 환경에 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제니를 만났다면 난 얘를 좀 살살 달래서 일부러 상처를 자극하지 않을 텐데, 트레이닝 방법에서 크뤼거는 하드 트레이닝으로 갔구나. 차가운 사람은 아닌데 삶이 건조한 사람이구나. 크뤼거도 사랑의 끈이 있었구나. 나는 어떤 끈을 잡고 싶었을까. 크뤼거가 제니를 보는 입장은 서로의 지푸라기를 엮는 방법이구나. 너의 끊어진 지푸라기, 나의 끊어진 지푸라기를 엮어보자.” 크뤼거를 해석하고, 크뤼거와 자신의 거리를 가늠하면서, 서서히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선경은 필자 앞에서 서서히 크뤼거로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제니가 도전적으로 나올 때) 할머니지만 열정은 안에 있기 때문에, (제니에게 노하며) 네가 지금 날 누르려 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가는 거지.” 크뤼거에 포커스가 맞춰지며 김선경이 포개졌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그녀의 내적 힘의 모태는 긍정에서 오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어도 낙관적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나의 긍정을 위해 이 <포미니츠>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 안에 빈 곳을 또 채울 수 있고, 또 새로운 것들을 배워요.” 이런 마음이 계속해서 연기를 할 수 있는 삶의 지구력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삶의 목표나 삶의 햇빛은 어떤 순간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나를 비춰주는 햇볕은 ‘아 그동안 수고했다, 선경아.’ 이때가 나의 모습이에요. 지금 모습은 이런 가능성과 저런 가능성이 있어요. 오늘은 햇볕, 오늘은 그늘, 나에 대한 다양한 것을 그저 보여주는 거 같아요.” 그렇다면 당신의 별은 무엇인가요? “음, 나의 끝은 나의 별은, 그 끝에서 내가 딱 섰을 때, ‘아, 나 이렇게 살았구나’ 살아온 길을 천천히 뒤돌아서 봤을 때, ‘아! 괜찮았네.’ 이게 나의 목표예요.” 삶의 낙조가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삶의 마지막에서 그녀가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표정이 떠올랐다. 크뤼거가 극 끝에서 말하는 대사가 있다. “나에게 맡겨진 건 뭐였을까, 어쩌면 견디는 일이었는지도 몰라.” 그 대사를 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자신도 삶의 여정에 우여곡절이 많아 견디는 힘이 생겼다고 담담히 얘기한다.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뒤돌아봤을 때, “괜찮았어, 잘하고도 못하고도 아니야. 괜찮았어”라고 얘기하는 배우 김선경이 펼쳐내는 삶의 지평이 참 아름다울 것 같다.
글 장석류 문화정책 연구자(Ph.D), 칼럼니스트 | 사진 제공 국립정동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