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지난해 11월 검찰이 박유하 교수(사진 1)를 명예훼손죄로 기소한 뒤, 12월 2일 박 교수는 기자회견을 열어 본인의 입장을 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같은 날 검찰의 기소에 대해 ‘표현의 자유 침해’를 들어 반대 입장을 전하는 지식인 190명의 성명(사진 2)도 발표되었다.
“2012년 5월의 일본의 제안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였다. 앞으로 일본이 다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그 기회가 마지막 기회였다고 말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중략) 정대협과 정부는 당시에,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위안부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214~215쪽
2013년 8월에 <제국의 위안부>를 펴낸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의 예상 혹은 기대와는 달리, 2015년 12월 한국과 일본 두 나라정부는 벼락처럼 정치적 합의에 이른다. 박유하 교수가 자신의 주장에 근거해 내세운 예측부터 무너지자 바탕에 있던 그의 주장도 일시에 색깔을 잃었다. 학계와 사회에서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고, 박 교수의 주장은 조금씩 무관심의 영역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박 교수를 둘러싼 소송은 끝나지 않았다. 법원은 지난 1월 13일 위안부 할머니 9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박교수에게 1000만 원씩 모두 9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앞서 검찰은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박 교수를 기소했다. 지난 1월 19일 첫 공판준비기일에 박 교수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국민참여재판이 시작될지는 4월 18일에 결정된다.
박유하 교수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것은 의외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중의 오해를 바로잡는 것에 초점을 맞춘 책의 저자가 여론의 재판을 자청했기 때문이다. 참여재판을 선택한 이유는 민사에서도 크게 패소한 만큼 형사에서도 유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추측된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참여재판을 열어 큰 틀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를 이야기하겠다는, (박 교수 본인보다는) 변호사들의 전략일 수 있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실제로 검찰의 기소에 반대하는 성명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2일 지식인 192명이 검찰의 기소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장정일 소설가, 유시민 작가, 고종석 칼럼니스트,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 금태섭 변호사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국가가 원한다면 위안부 문제를 넘어 역사 문제 일반과 관련해서도 시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반민주적 관례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파장을 우려해 검찰도 박 교수의 기소 당시 보도자료에 이렇게 밝혔다. “양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학문의 자유등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인 권리이기는 하지만 아무런 제한이 없는 것은 아니며, 헌법 제37조2항에 의하여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그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제한할 수 있는 것인바, (중략) 학문의 자유를 일탈하였음.”
헌법 제37조2항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도 제약이 가능하다는 아주 원론적이고 신중한 조항이다. 이 조항으로 생명권도 제약하고, 투표권도 제약한다. 당연히 헌법 제37조2항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신중하게 작동한다. 표현을 제약하려면 오래된 판례대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제국의 위안부>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인지가 문제가 된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 다수 학자와 법조인의 견해다.
표현의 자유에 정통한 박경신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박 교수의 저서가 부실한 창작물이지 위험한 저작물은 아니라고 했다. “역사학적 상상력이라고 해야 하나, 해석적인 상상력이라고 해야 하나. 상상력에 기반을 둔 글이고 무책임한 해석이다. 하지만 (허위든 진실이든 어떠한) 사실을 적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명예훼손은 아니다.” 박 교수 역시 기본적으로 검찰의 기소에는 반대했다.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 사이
이처럼 검찰의 기소에는 반대하지만 저서가 그다지 훌륭한 내용은 아니라는 법조계와 학계의 반응이 많았다. 이 때문인지 박 교수 본인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기보다는 책의 내용이 정당하다는 발언을 주로 해왔다. 자신을 비난하는 국내외 학자와 언론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고 반박했다. 그러던 지난 2월 1일 법원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1심 판결을 근거로 박 교수의 월급을 압류했다. 이에 박 교수는 “이런 이들이 또다시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을 듯하다”고 했다.
책의 내용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나중 일이고,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본질임을 박 교수가 뒤늦게 인식한 것 같다. 그렇다면 <제국의 위안부>는 보호해야 하는 저작물일까. 민·형사소송은 부당할 것일까. 나아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하는 모든 표현을 토론이 해결토록 놔두어야 할까. 토론과 처벌의 경계는 어디일까. 이제 논란은 위안부 문제보다 표현의 자유에 맞춰져야 한다. 박유하 교수는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국의 래리 플린트1가 되어야 하는 시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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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래리 플린트(Larry Claxton Flynt). 미국의 성인 잡지 <허슬러> 발행인으로, 성인물 발간에 관해 법적인 소송을 당하면서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보장에 대한 투쟁을 계속했다. 최종 판결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그의 이야기는 1996년 <래리 플린트>란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 글 이범준
- 경향신문 법조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