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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전시 <김환기의 선·면·점>과 <프랭크 스텔라 개인전> 음악적 추상 회화 vs 음악적 추상 조각
김환기(1913~1974)는 요즘 작품 값이 가장 비싼 한국 작가로 회자된다. 2015년 10월 홍콩 경매에서 그의 ‘점화’ 추상작품 (작품명 <19-VII-71 #209>)이 47억 2100만 원에 낙찰됐는데, 이로써 박수근 작 <빨래터> (45억 2000만 원)가 보유했던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미국의 추상작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1936~)는 몰라도 서울 강남 포스코 빌딩 앞에 설치된 그의 거대한 고철 꽃 조각(작품명 <아마벨>)은 거리를 오가며 한 번쯤은 눈여겨봤을 것이다. 두 작가의 전시가 권력 1번지 청와대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열리고 있다.

뉴욕 시절 ‘점화’엔 교향곡에서 장송곡까지
<김환기의 선·면·점>, 2015. 12. 4~2016. 1. 10, 현대화랑

<아침의 메아리(Echo of Morning) 04-VIII-65>(캔버스에 유채, 177×126.5cm, 1965). 점화가 나오기전 음악적 실험을한 듯한 작품들. 크게 구획횐 면 안에 액센트를 주는 작은점들이 행진하듯 나열돼있다. 우리 자연의 소리와 대기의 음향이 들리는 듯하다.<아침의 메아리(Echo of Morning) 04-VIII-65>(캔버스에 유채, 177×126.5cm, 1965).
점화가 나오기전 음악적 실험을한 듯한 작품들. 크게 구획횐 면 안에 액센트를 주는 작은점들이 행진하듯 나열돼있다.
우리 자연의 소리와 대기의 음향이 들리는 듯하다.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 김환기가 1935년 일본 니혼대학의 졸업 작품전에 낸 작품 제목은 <론도(원무곡)>. 선과 면의 리드미컬한 조합을 통해 음악성을 추구한다. ‘추상의 아버지’인 러시아 작가 바실리 칸딘스키(1866~1844)의 영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그런 김환기가 광복 이후 선보인 작품들은 항아리, 달, 학 등 구체적인 한국적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김환기는 뉴욕에 가서야 청년 시절 본능이 되살아난 듯 추상을 끝까지 밀어붙였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수많은 점으로만 이뤄진 ‘점화’다. 현대화랑 전시는 뉴욕 시절에 그린 22점의 대작으로 꾸몄다. 점화가 나오기 전의 1963~69년작, 1970~73년 점화의 시기, 세상을 떠나던 1974년의 점화로 크게 구별돼 있다.
점화가 나오기 전까지의 작품 제목을 보면 <아침의 메아리> <봄의 소리> 등 음향을 느끼게 하는 제목이 유독 많다. 파란 네모위에 콕 찍은 붉은 점이 점점이 이어지는 화면은 경쾌하고 리드미컬하다. 그림 속에 흐르는 음악성은 본격적인 전면 점화의 시기에도 절절히 흐른다.
'(고향의)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 (1970년 어느 날의 일기)
점화는 고국의 그리운 얼굴들을 한 점 한 점 찍어나간 노스탤지어로 해석이 된다. 그런데 점화에서도 음악 소리가 느껴지는 이유를 그의 일기가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점화의 색은 밝은 코발트 블루에서 점점 짙어져 청회색으로 바뀌어간다. 이역에서는 깊어지는 향수병이 색의 변화로 표현되는 것 같다.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에 완성한 그림들을 보라. 죽음을 예감한 듯 캔버스의 색은 심연 같은 잿빛이다. 붓을 쥔 손이 힘을 잃은 듯 점의 윤곽은 흐릿하다. 그래서 전시장에서 느껴지는 음악은 풍성하다. 경쾌한 소나타에서 깊고 풍성한 교향곡, 옷깃을 여미게 하는 장송곡까지.

신작 조각에선 경쾌한 피아노 음악이
<프랭크 스텔라 개인전>, 2015. 11. 19~2016. 1. 30, 리안갤러리

2 K 시리즈 전시 전경.<br/>
3 작품명 <엔게레카> (Ngereka, 2006).2 K 시리즈 전시 전경.
3 작품명 <엔게레카> (Ngereka, 2006).

프랭크 스텔라는 ‘검은 회화’ 시리즈로 미니멀리즘을 개척한 작가다. 회화에 머물지 않고 조각의 영역으로 확장해왔다. 조각 분야에서는 ‘조각적 회화’의 징검돌을 건너 1970년대 말부터는 무겁고 거대한 사이즈의 조각을 선보였다. 흉물스럽다며 철거 논란까지 빚은, <아마벨>이 대표적이다.
그런 작품으로 스텔라를 기억해온 사람이라면 이번 신작들에 깜짝 놀랄 것 같다. 3D프린트 기법으로 만든 조각이라는데, 덩어리를 만들 듯 이어 붙인 갖가지 모양 도형을 스틸 관이 친친 감기도 하고 자유롭게 뻗어나가기도 한다. 오선지 위에 음표가 떠다니는 듯한 이미지다. 날렵하고 경쾌하기 그지없다. 초록, 연두, 빨강 등 원색이 리듬감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내 마치 전시장엔 기분 좋은 경음악이 흐르는 것 같다. 이들 작품들은 ‘스카를라티 소나타 커크패트릭’ 시리즈다. 줄여서 ‘K시리즈’로 불린다. ‘근대 피아노 주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탈리아 작곡가 도메니코 스카를라티(1685~1571)와 스카를라티 소나타 시리즈를 정리한 미국의 음악학 연구자 랄프 커크패트릭(1991~1984)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함께 나온 ‘발리 시리즈’는 인도네시아 발리의 원주민 언어를 시각화했다는 점에서 역시 소리를 추상 조각으로 보여주려는 실험 정신이 배어 있다. 발리 시리즈 5점(2003~2009)과 K시리즈 8점(2006년 이후) 등 13점이 나왔다.
두 작가 모두 머물지 않고 변신을 시도하는 작가라는 점에서 반갑다. 흐르는 음악처럼.

글 손영옥
국민일보 선임기자
사진 제공 현대화랑, 리안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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