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계는 지금?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 전경(사진 제공: 경기도청).
올 초 미술월간지 <아트인컬처> 2월호가 전문가 23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백남준은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가 부동의 1위였다. 월북 거장 이쾌대(1913~1965)가 2위, 김환기(1913~1974)와 이응노(1904~1989)가 함께 3위에 올랐지만, 백남준과의 격차가 컸다. 과거 미술잡지의 조사에서도 백남준은 줄곧 1위거나 1~3위권 ‘빅 스리’의 자리에서 내려온적이 없다. 문화판에는 그를 내세워 아트 사업을 벌이는 이들이 적지 않고, 실제로 거의 날마다 백남준 전시와 관련 행사들이 입에 오르내린다. 언론은 백남준 관련 뉴스를 신속하게, 장황할 정도로 열심히 보도한다.
특히 고인의 10주기가 되는 내년은 추모행사와 기념전시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미 올해 초부터 백남준은 미술계 열쇳말로 떠오른 상태다. 지난해부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1970년대 원로 모더니즘 작가들의 단색조 회화와 더불어 그들의 작품 거래 활성화가 미술시장의 중요한 관심사로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초 세계적인 명문 화랑인 미국 가고시안 갤러리가 백남준 유족과 이례적으로 전속계약을 맺으면서 서구 미술시장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려는 조짐을 보인 게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가고시안 갤러리는 내년 중 고인의 회고전을 대규모로 열 계획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세종문화회관이 올 연말에 백남준 기획전을 여는 것을 신호탄으로, 백남준의 국내 종가를 자부하는 경기문화재단의 백남준아트센터와 국내 미술시장에 고인을 처음 소개한 갤러리 현대 등이 내년 중에 대규모 10주기전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백남준 작품 가치 재평가받을 기반 마련해야
지속되는 관심에도 불구하고 국제미술시장에서 그의 작품 값은 턱없이 낮다. 백남준 작품의 역대 최고가 기록은 2007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 때 낙찰된 1995년작 <라이트 형제>의 503만 홍콩달러로 한화 7억 원 남짓이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 통계에서도 그의 작품 낙찰가 1~10위 액수는 7억 원에서 2억 원대 사이에 그친다. 1점당 수백억 원대를 호가하는 앤디 워홀 같은 서구거장들과 비교하면 수십 분의 일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세계미술사에 비디오아트의 혁명을 일으킨 거장이 왜 이렇게 저평가되는 걸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백남준 작품에 대한 기본 정보가 불투명하다는 맹점을 지목한다.
세계 각지에 산재한 그의 비디오아트 작업들, 스케치·드로잉 등이 몇 점이고 어느 소장처에 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가 현재까지도 없다. 제작 및 구입 경로는 물론이고, 그의 눈길과 손길이 묻어났는지 의심스러운 작품도 숱하게 돌아다닌다. 국내 소장된 고인의 작품 상당수가 진품인지 헷갈린다는 풍설도 오래전부터 흘러나왔다. 한마디로 작품 가치를 평가할 만한 근거 자체가 빈약한 것이다.
국내에 있는 백남준 작품은 500점 정도로 추산된다. 생전 주된 작업 터전이었던 미국과 독일, 일본 등 국외에 흩어진 작품까지 넣으면 2000~3000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평생 자유인으로 살았고, 접하는 일상 모든 것을 예술의 터전이자 소재로 여긴 플럭서스 미술의 신봉자 백남준은 여느 작가들처럼 작품의 관리와 기록, 유통 과정에 별다르게 집착하지 않았다.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도 작품을 상당수 만들었지만, 화랑, 지인, 미술관 등에 내키는 대로 작품을 주고 체계적인 관리는 거의 신경쓰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중요한 과제로 꼽히는 것이 백남준의 전작을 망라한 작품 목록 총정리 작업이다. 전작 목록은 ‘카탈로그 레조네’라고 불린다. 작품 재료나 기법, 제작 시기, 소장 경위, 전시 이력 등이 한데 모인 총자료집인데, 진위작을 가릴 근거가 되며, 미술사적 평가의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한계가 크다. 2013년부터 작품 목록집 사업을 추진해온 백남준문화재단은 2017년까지 목록집 사업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지난해 정부 지원 중단으로 현재 공공기관 컬렉션 중심으로 73점만 조사한 채손을 놓은 상황이다. 개인 소장자들의 경우 조사 자체에 대한 반발이 커서 작품 관련 자료 입수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실 목록화 사업을 누가 주도할 것인지의 문제도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백남준문화재단과 컬렉션을 소장·연구해온 백남준아트센터는 목록화 사업에서도 서로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외부에 밝히면서 미묘한 갈등을 빚어왔다.
백남준 유족 측, 한국미술계에 불신 드러내
또 다른 변수는 유족이다. 미국 뉴욕에서 백남준 스튜디오를 운영 중인 고인의 장조카이자 법적 대리인인 켄 백 하쿠타는 한국 미술계와 관계가 불편하다. 국외 백남준 컬렉션의 저작권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그는 최근 가고시안 갤러리와 전속계약을 하면서 작품의 아카이브 관리를 상당 부분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한국 미술계가 생전 백남준을 이용하기만 했다”며 극도의 불신감을 표출해온 그는 국내 기관들과의 공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백남준 10주기와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내년 4~8월 프랑스 파리시립근대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고인의 대형 회고전은 유족의 반대로 취소됐다. 회고전은 파리시립근대미술관과 국내 백남준아트센터의 공동기획으로 추진해온 한불 교류행사의 핵심 사업이었는데도, 켄 백 하쿠다가 미술관 쪽에 한국 쪽과 전시를 공동 개최하지 말라고 압박해 결국 무산된 것이다. 켄 백은 2006년 고인의 별세 이래로 한국 미술계를 의도적으로 멀리해왔다. 장례 당시에도 언론에 한국 미술계에 대한 불신과 피해의식을 노골적으로 표출했고, 백남준아트센터 설립 과정에서 협력했던 경기문화재단에도 등을 돌린 상황이다. 경기문화재단 쪽은 그와 연락을 꾀하고 있지만, 현재도 일부 지인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연락이 두절된 형편이다.
가장 심각한 건 백남준의 작품 저작권이 고인의 유언에 따라 켄 백에게 주어져 있다는 점이다. 국외 전시의 경우 백남준의 파리 회고전이 무산된 데서도 보이듯 사실상 켄 백이 우월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미술관, 화랑, 개인 소장품들은 저작권 관계가 명확지 않은 데다 진위 분쟁의 소지까지 안고 있는 형편이다. 고인의 말년 여러 국내 미술인과 화상들이 고인의 인증을 받아 작품들을 제작했다고 주장하지만, 켄 백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켄 백은 “백남준 작품의 모든 저작권 권리는 내가 행사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내년 10주기 때 국내 전시에 그가 제동을 걸려 할 경우 저작권을 둘러싼 소송 등 법적 대결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백남준 서거 10주기, 정체 상태인 한국 미술계
이와 관련해 국내 미술계에서 대책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7월22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백남준 서거 10주기 전국 네트워크 전시 1차 준비 모임이 열렸다. 백남준재단 공동이사장인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사장과 이남식 계원예술대 총장,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을 비롯해 재단이사인 김원 건축가, 박우홍 화랑협회 회장,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장,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 등이 나온 자리였다. 원래 내년 10주기를 맞아 국내 공사립미술관과 화랑들이 준비 중인 추모행사·전시의 효율적인 연계 방안을 협의하려는 자리였으나, 백남준 파리 회고전이 유족 켄 백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격렬한 토론장이 됐다. 유족과 국내 미술계 사이의 저작권 시비를 비롯해 정체 상태인 작품 목록화 사업, 작품 저평가 등에 대한 성토와 격론이 모처럼 터져 나온 것이다. 3시간 이상 펼쳐진 이날 토의는 백남준 작품의 국내 소재지와 소장자 정보 파악 등 현실적으로 가능한 부분부터 풀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유족과의 관계 개선 등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합의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고인을 기려야 할 10주기를 앞두고 이처럼 미술관, 화상, 유족들 사이에 불화와 갈등, 반목이 지속되고 분쟁마저 예견되는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국내 미술계와 유족과의 관계 개선이 가장 시급한 문제인데, 이를 풀기 위한 노력과 성과가 별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미술인들을 우울하게 한다.
이미 기존 미술인들의 역량으로는 문제 해결에 한계가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에, 문체부 등 정부 부처나 경기도 등 지자체의 수장이 나서서 유족과의 화해와 저작권 작품 목록 등에 대한 협의 여건을 조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글 노형석
-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 한겨레신문에서 미술, 문화재 분야를 오랫동안 취재해왔다.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으며 <한겨레21> 문화팀장, 한겨레신문의 대중문화팀장, 문화담당 에디터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