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ASSOCIATED

5월호

책 《전국축제자랑》과 《쓰고 달콤한 직업》 허둥대면서 분투하는
정다운 사람들의 이야기

에세이가 아니라면 읽지 못할 정다운 경험이 있다. 다른 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느끼는 것도 그중 하나다. 부부 작가의 유쾌한 여행기 그리고 소설가의 스페인 식당 운영기로 동시대 한국의 삶을 읽어보자.

이상한데 진심인 축제 탐방기 《전국축제자랑》 | 김혼비·박태하 지음 | 민음사

《전국축제자랑》은 이상하면서 뭉클한 ‘K축제 탐험기’이다. 발품을 판여행기이자 지역 축제를 통한 ‘K스러움’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사실적이라 비현실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풍경이 신명 나게 흥을 돋운다.
두 저자는 충남 예산부터 경남 산청까지 열두 곳의 축제를 다녀왔다. 곶감이나 꼬막처럼 범상한 것부터 ‘와일드푸드’ ‘의좋은형제’와 같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 것까지 주제도 다양하다. “그러니까 황당(왜 저래?)과 납득(왜 저런지 알겠어!)이 엉켜들고, 수긍(저럴 수밖에 없겠네)과 반발(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과 포기(그러든지……)와 응원(이왕 이렇게 된 거!)이 버무려진 뭐 그런 느낌”의 축제 풍경이 장마다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하드코어 K푸드’ 홍어 축제, 비에 젖은 볏짚이 꽃잎 대신 흩어져 있는 축제장에서 어리둥절한 프러포즈를 감행하는 커플, 밀양아리랑을 주제로 장기자랑을 준비한 고등학생, 조악한 놀이시설에서도 즐겁게 뛰어노는 어린이들, 분위기를 띄우려 애쓰는 사회자, 몇 안 되는 관객 앞에서 열창하는 무명 트로트 가수, 여기저기 애향심 섞인 훈계를 던지는 어르신까지. 이상한데 진심인 축제장에선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무엇보다 사람들의 ‘분투’를 만나게 된다.
이야기는 웃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동시대 한국에 대한 핍진한 관찰을보여준다. 경남 의령 의병제전의 ‘부자 기 받기 투어’가 삼성그룹 창업자의 의령 생가에서 유래했다는 데서 ‘K’가 민족주의를 넘어 자본주와 샤머니즘으로 결합한 현장을 발견한다. 마이크로칩을 장착한 연어를 잡으면 상금 1,000만 원을 주는 강원 양양연어축제에선 철학의 부재와 첨단기술이 결합한 ‘K스러움’, 그리고 동물 축제의 잔인함에 할말을 잃는다. 하지만 거기에는 서글픔이 얽혀 있다.
축제마다 목도한 것은 지방 소도시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폐가와 폐건물, 페인트칠 벗겨진 담장들은 청사초롱을 든 홍보 캐릭터의 미소로도 밝힐 수 없는 것이었다. 지역 축제는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는 지방 중소도시들의 최후의 보루이자, 다들 하는 마당에 안할 수도 없어 어떻게든 그럴싸하게 뽑아내야 할 숙제 같은 것”이다. 그러한 사정이 빤히 보이기에 두 사람을 따라 응원과 염려를 보내게 된다.

우왕좌왕 갈팡질팡 식당 운영기 《쓰고 달콤한 직업》 | 천운영 지음 | 마음산책

개업식 전날에야 식자재가 배달되고 오븐을 돌려봤다. 동료 작가들이 모여 누구는 와인 잔에 붙은 라벨을 떼고, 누군가는 냅킨을 접고 메뉴판을 만들었다. 잠깐 인사하러 들렀던 사람이 꼬박 네 시간을 일하고, 식기세척기 사용법을 몰라 후배 작가는 설거지를 해야 했다. “우왕좌왕 갈팡질팡 난장판의 개업 전야를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엄마가 한마디 했다. 아이고 겁대가리 없는 년아, 어쩌자고 친구들까지 저 고생을 시키고 그러냐. 그 말에 나는, 그러게 말이야, 내가 왜 그랬을까, 그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소설가 천운영의 첫 산문집 《쓰고 달콤한 직업》은 서울 연남동에 차린 스페인 식당 ‘돈키호테의 식탁’ 운영기다. 식당을 열기까지 2년, 엄마 명자 씨와 함께 2년을 운영했고, 식탁을 접은 지 또 2년이 흘렀다. 천 작가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빠져 소설 속 음식을 찾아다니고, 결국 요리를 배우려 스페인 유학을 감행한다. 주변 만류에도 식당을 개업했지만, 이익은 뒷전. 자영업자이자 요리사로서 겪은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멸치를 기다리는 일은 그런 것 같다.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맛과, 꼭 한번 다시 보고 싶은 맛을, 어떻게든 기억해내는 일. 그러면서 침샘을 여는 일. 멸치 비린내가 진동하겠구나. 그 비린내 속에서 행복하겠구나. 미리미리 즐거워하는 일.” 천 작가는 식당 이야기뿐 아니라 음식에 얽힌 개인적인 경험도 다채롭게 풀어놓는다. 하몽 자르는 법을 배우다 그 돼지가 먹었을 도토리 맛과 누비던 숲을 상상하고, 산 오징어를 맛보다 대학 시절 풋사랑을 떠올리기도 한다. 식당을 차려 누군가를 먹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반려견이 마지막으로 먹고 세상을 떠난 달걀프라이 때문이었다. 그가 차려내는 맛의 기억이 아련함을 불러일으킨다.
책 뒤편에는 ‘돈키호테의 식탁’에서 진행했던 인터뷰를 실었다. 천 작가는 인터뷰이들의 특징을 면밀히 살핀 후, 그들에게 걸맞은 음식을 준비했다. 유현준 건축가에게는 해물죽, 노라노 디자이너에게는 파에야와 초리조를 준비하는 식이다. 음식에 개인적 서사를 불어넣은 이야기에서 과연 그가 소설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책을 읽고 나면 혀끝에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스페인 음식을 먹은 것처럼 아릿해진다.

배문규《경향신문》 기자 | 사진 제공 민음사, 마음산책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