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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전시 <필리핀 미술, 그 다양성과 역동성>과 <어느 청소부의 안내-풍경, 뮤지엄, 가정> 파란만장한 역사에 요동친 필리핀 미술
그동안 한국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필리핀 작가의 전시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관심조차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다행히 올해 한국-필리핀 수교 70주년을 맞아 필리핀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전시가 잇달아 열린다. 2019 한세예스24문화재단 국제문화교류전 <필리핀 미술, 그 다양성과 역동성>이 9월 4~10일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펼쳐지고,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호텔에선 필리핀 작가 뷰엔 칼루바얀의 개인전 <어느 청소부의 안내-풍경, 뮤지엄, 가정>이 11월 10일까지 관람객을 맞는다.

1 알빈 그레고리오 <Non-violent Resist-stance>.(한세예스24문화재단 제공)

두 전시를 통해 서양 유화 기법이 필리핀에 전해진 시기가 무려 16세기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식민 역사의 영향이었다. 스페인이 1565년부터 1898년까지 장장 4세기에 걸쳐 필리핀을 지배하면서 서양 르네상스 원근법이 도입된다. 종교도 스페인을 따라 가톨릭 국가가 된 필리핀의 유화 장인들은 서양 기법으로 성화를 그렸다. 미국이 1898년부터 1946년까지 필리핀을 지배하면서 근대 미술이 싹트기 시작한다. 1909년 필리핀미술대학이 설립됐으며, 사실주의와 낭만주의가 종합된 양식이 유행했다. 이후 필리핀 모더니스트들은 입체주의를 비롯한 모더니즘의 다양한 양식을 탐구하면서 민족주의, 탈식민주의 등을 통해 식민주의 잔재들을 극복하고 진정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듯 파란만장한 역사는 필리핀 미술을 역동적이고 다양하게 만들었다. 필리핀 작가들은 식민주의 역사와 종교, 제국주의 등 민감한 소재를 다루며 예술이 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역할과 기능, 반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왔다.

필리핀의 과거, 그리고 현재 <필리핀 미술, 그 다양성과 역동성> 9. 4~9. 10, 서울 인사아트센터

전시에 참여한 작가 11명은 필리핀 미술의 전통을 의식하고 현대적 특성과 경향을 반영하면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제드 메리노, 진 카반기스, 뤼 메디나, 빅토 발라논, 알빈 그레고리오, 잉글랜드 히달고, 키티 카부로, 노베르토 롤단, 호안 프랭크 사바도, 페트리샤 페레즈 유스타키오, 샤티 코로넬 등은 회화, 조각, 미디어아트, 설치작품 등 40여 점을 선보인다. 이들의 작품 세계는 풍경(landscape), 유전(heredity), 풍자(satire), 욕망(desire), 치유(healing)라는 주제로 나뉘어 소개된다.
노베르토 롤단은 필리핀인들의 현재 삶이 어느 뿌리에서 파생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오브제 아트로 재현한다. 그의 작품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오브제들은 필리핀인들의 삶을 대변하는 상징성을 지닌다. 향수를 자아내는 낡은 흑백 초상 사진, 꽃무늬로 치장된 프레임, 기도를 위한 성물들, 작은 인형들과 약병들은 필리핀 사람들이 겪어낸 역사의 유전을 암시한다.
키티 카부로는 한국계 필리핀 작가다. 그의 이름 ‘카부로’는 한국어 음역의 일종이다. ‘까불어’라는 단어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작가는 자신의 이름에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고자 했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그의 눈에 비친 풍경은 필리핀에서 경험한 온갖 원색이 넘실대는 열대의 풍경이다. 그 풍경 속에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음모와 욕망이 들어 있다는 것을 간파한 작가는 언뜻 보기에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이면을 들춰보면 암울한 서사를 담고 있는 풍경을 그린다.
알빈 그레고리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러 나라를 떠돈 가족 아래 성장했다. 자연스럽게 이민과 가족의 해체, 글로벌리즘, 폭력과 전쟁 등의 주제를 다룬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부엉이와 판다는 작가의 페르소나로서 또 다른 자아의 상실감과 무력감을 표시한다.

2 뷰엔 칼루바얀 개인전 전경.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제공)

청소부처럼 정리하고 기록한 삶 뷰엔 칼루바얀 개인전 <어느 청소부의 안내-풍경, 뮤지엄, 가정> 8. 1~ 11. 10,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호텔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호텔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열고 있는 뷰엔 칼루바얀은 동시대 필리핀 사람들의 의식의 프레임을 역사에서 찾고 싶어 2010년부터 7년간 일상을 기록했다. 청소부처럼 매일 삶을 정리하고 기록해 전시 제목 또한 <어느 청소부의 안내-풍경, 뮤지엄, 가정>이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관계를 상징적으로 비유한 단어들로 풍경은 자연, 뮤지엄은 사회(기관), 가정은 개인을 의미한다.
2010년부터 필리핀 국립박물관 연구원으로 근무한 그는 자국의 풍경화에 담긴 19세기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잔재를 발견한다. 서양 르네상스 시대 원근법의 영향을 받아 하나의 소실점과 지평선을 토대로 그려져 있었다. 이를 비틀고 싶었던 작가는 여러 개의 소실점과 지평선이 담긴 풍경화를 실험했다.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의 소실점과 지평선을 토대로 그림을 그리도록 교육받았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리듯이 소실점과 지평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풍경화도 달라진다”고 말한다.
식민지 시대의 회화 연구는 필리핀 독립 혁명에 대한 관심으로 확산된다. 1896년 안드레스 보니파시오가 이끄는 무장독립단체 ‘카티푸난’이 16세기 후반부터 필리핀을 지배한 스페인에 반기를 들었으나 실패했다. 두 번째 혁명은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을 틈타 일어났으나 결국 미국의 식민지 지배로 이어진다.
작가는 필리핀 혁명사를 담은 레이날도 클레메나 이레토의 저서 <패션 앤 레볼루션>(Pasyon and Revolution, 1979년 출간)의 낱장을 잘라 꼬아 만든 해먹을 전시장에 걸었다. ‘패션’은 필리핀에서 사순절에 영창되는 예수 그리스도 수난시다. 작가는 “해먹은 혁명가들의 휴식처이자 올가미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혁명가들이 1896년부터 2년간 투쟁했던 바나하오산은 피난처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필리핀 사람들이 성지처럼 자주 찾는 곳이 됐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혁명이 종교화되는 과정을 담았다”고 설명한다.

글 전지현_매일경제 기자
사진 제공 한세예스24문화재단,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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