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원극 <포스트 아파트>.
현재의 화두와 미래의 내면 <포스트> 6. 18~7. 6,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윤수일은 <아파트>(1982)에서 노래했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라고. 최근 한국식 시티팝으로 재조명되는 이 곡에서 아파트는 낭만이었다. 이제 아파트에서는 낭만은커녕 추억도 찾기 힘들다. 저 멀리 물신화의 최첨단에서 질주하고 있다.
두산아트센터 ‘두산인문극장 2019 : 아파트’의 마지막 공연 <포스트 아파트>는 이 뜨거운 화두를 좀 더 이성적으로 들여다본다. 아파트에 대한 의견과 경험, 이상과 가능성을 녹여낸다. 여러 예술 장르에 몸담은 예술가들이 공동으로 구성을 맡아, 다양한 시선을 포섭하고 다각도의 분석물을 내놓는다. 안무가 정영두, 건축가 정이삭, 작곡가 카입(Kayip), 영화감독 백종관이 참여했다. 이 네 명은 지난해부터 1년간 아파트에 대해 자료를 조사하고 인터뷰와 현장답사를 진행했다. <포스트 아파트>는 이 과정에서 발견한 질문과 고민을 무용, 음악, 영상, 공간건축 형태로 구현한 다원 작품이다. 집·주택·가옥 등 물리적인 것에 방점이 찍힌 하우스(House)에서 가족과 함께 살며 정신적인 위안을 누리는 추상적인 의미에 비중을 실은 홈(Home)으로 전환 가능한지에서부터, 집의 다양한 풍경들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며 아파트, 나아가 집의 가치에 대해 살핀다.
아파트는 우리의 내면을 먹고 살아가고 꿈틀댄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화두를 압축한 집약체’인 것이다. 변화하는 세상과 관계를 맺어나가는 터전이 되는 아파트를 고찰하는 일은 삶의 기반을 감각해나가는 일이다. 이것을 이 공연이 보여준다. ‘포스트 아파트’, 나아가 ‘포스트 라이프’는 무엇일지 고민거리를 안긴다.
2 연극 <묵적지수> 연습 장면.
전쟁의 화두와 위력의 내면 <묵적지수> 6. 26~7. 7, 남산예술센터
초나라 혜왕 50년(기원전 439년),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묵적은 초나라의 송나라 침략을 막기 위해 초혜왕과 모의전을 벌인다. 이 시범경기 같은 전쟁에는 규칙이 있다. 실전과 같지만 단 한 사람의 목숨도 잃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서민준 작가의 제8회 벽산희곡상 수상작을 원작으로 한 <묵적지수>는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에 대해 이야기한다. 묵적의 모의전 제안을 받아들인 초혜왕은 초나라 사람들을 초인과 송인으로 나눠 역할을 부여하는데, 이 역할극은 오히려 저마다의 본분과 위치를 잃게 만든다. 자신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가 이어지고, 이는 통제가 가능할 것 같던 ‘전쟁 같은 삶’을 예측 불가한 소용돌이로 몰아간다. 여기서 폭력이 똬리를 튼 인물들의 민낯이 까발려진다. 권력을 손아귀에 넣고 싶어 하는 위정자들은 살육을 불사한다. 백성들은 소모품처럼 취급된다. 그 와중에 묵적은 겸애, 즉 ‘사람을 두루 사랑’하기 위해 애쓴다. 이 과정에서 위력의 정체는 의심을 사고, 승자독식 체제는 명분을 잃는다. 2019년 현 시점의 대한민국은 얼마나 다른가.
작은 공동체에서도 꼭대기에 오르기 위한 아귀다툼이 빚어지는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여기가 끝은 아니다. ‘권력에 저항하고 연대하는 움직임’은 수직적인 맥락에 수평적인 서사와 리듬을 부여한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의 ‘2019년 시즌 프로그램’ 세 번째 작품으로 달과아이 극단과 공동 제작한 <묵적지수>는 남성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만, 여성 연출가 이래은이 연출을 맡아 기분 좋은 괴리감을 안긴다. 펄떡이는 소녀들의 생존기를 그린 연극 <고등어>로 주목받은 이 연출가는 전쟁 서사가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관념을 깨고, 성별에 관계없이 배역을 정하는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관습조차 산산조각 낸다. 보통의 공연과 다르게 360°의 각도에서 다양한 관객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원형 무대를 사용한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배우들은 원형 무대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은 객석을 넘나들며 새로운 공간의 감각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극 자체의 형식과 캐스팅뿐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서까지 일방적 소통이 아닌 다원적 교감을 꾀한다.
이처럼 <포스트 아파트>와 <묵적지수>는 현재의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내면뿐만 아니라 공간과 형식의 속살까지 파고 들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글 이재훈_뉴시스 기자
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