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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지금 여기 박완서>우리가 기억하는, 여전히 함께하는
<지금 여기 박완서>는 성북문화재단의 네 번째 문인사 기획전이다. 매년 성북구의 문인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문인사 기획전은 문학과 예술을 융합해 아카이빙을 기반으로 풀어낸다. 지난해 12월 13일부터 올해 1월 22일까지는 소설가 박완서(1931~2011)가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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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민숙 <1310(박완서)>, mixed media, 61×73cm, 2013.

2 이은주 <박완서>, Pigment Print, 100×66.6cm, 1993, 2018 재제작.

3 기획전 1층.

작가의 내적 특성을 작품으로

전시장인 성북예술창작터에 들어서면 박완서의 사진이 보인다. 이은주 작가의 작품으로 작품명은 <박완서>(1993, 2018 재제작)이다. <중앙 선데이>에 실렸던 사진인데, 당시 최신형 기계였던 대우통신의 워드프로세서 ‘르모’ 앞에 앉아 있는 작가의 모습을 담았다. 얼마 전 모 문예지에서 르모에 대해 얘기하며 박완서를 다룬 부분이 있었는데 휙 하고 지나갔다면 아쉬울 뻔했다. 우측에는 작가의 방대한 작품 연대기가 거주 공간별로 정리되어있다. 작품집도 순서에 맞게 전시되어 시각과 촉각을 만족시킨다. 다른 한편에는 장·단편소설과 에세이의 초판본과 번역본이, 또 다른 한편에는 주요 저작들의 서문이 꽂혀 있어 프롤로그 형식으로 박완서를 볼 수 있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공간 사이에는 조민숙 작가의 <1310 (박완서)>(2013)가 있다. 관계자는 “박완서의 내적 특성을 대나무로 표현한 부조 작품”이라며 “해방과 한국전쟁의 시대 속에서 고투하며 개인적인 상실을 겪었지만 소설과 에세이를 통해 생활 속에서 세밀한 정서를 보여주었던 작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2층에서 박완서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데 공간과 공간 사이에 작가의 내적 특성을 표현한 작품을 둠으로써 그 접점을 잘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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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획전 2층.

5 한승훈 <Re: Sunset>, 싱글채널 비디오, 15분 내외, 2018.

6 김도희 <살갗 아래의 해변: 나목 裸木>, 2018.

흔적을 불러내다

2층은 ‘기억, 상상, 복원’이란 테마로 구성되었다. ‘부재의 고고학’, ‘소박한 개인주의자’, ‘사늘한 낮꿈’이란 소주제로 이루어지며 박완서의 문학작품의 핵심이 다양한 자료와 여러 예술작품을 만나 재해석됐다. 한승훈 작가의 <Re: Sunset>(2018)은 도서관과 헌책방에 있는 박완서의 책들에 남겨진 흔적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박완서가 사라져버리는 기억을 책으로 만들었다면, 그는 그것을 이어받아 오래된 책의 흔적들을 다시 건져내고 그 증거를 디지털 영상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작품 속에서 그 기획의도가 선명히 보였다.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김도희 작가의 <살갗 아래의 해변: 나목 裸木>(2018)도 인상 깊었다. 작품 해설에는 “부산이 고향인 작가가 영도 깡깡이 마을의 기억을 탐구하고 낡은 선박의 따개비와 녹을 벗기듯, 벽을 연마기로 갈아내며 그 아래 떨어진 잔해와 먼지를 해변처럼 모았다”며 “진동과 먼지를 동반한 격렬한 과정을 거치자 벽 뒤의 중첩된 지층이 모습을 드러냈고 작가는 삶 속 사연처럼 개인의 경험이 품은 미적 가치를 직관했다”고 되어 있었다. 이에 덧붙여 관계자는 “김도희 작가는 나목 전체의 짙은 상징적 이미지를 박완서의 정서적 원형으로 인식하고 깊이 공감했으며 회색 계열의 페인트가 여러 겹 쌓인 기존 성북예술창작터의 벽 위에, 상처를 품고 새로 돋는 살결과 생명을 상상하며, 색을 올리고 작업을 했다”며 “자신의 몸에 깃든 경험을 후벼 파듯 깨움과 동시에 다시 새기는 것은 박완서의 소설 쓰기와도 상통한다”고 했다.

문학과 예술의 융합
작고 1년 전 가톨릭대에서 강연한 영상과 결혼식 영상, 호원숙(수필가, 박완서의 장녀)·박철수(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이근혜(문학과지성사 편집장) 등과 진행한 총 6편의 인터뷰 영상은 박동명 작가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박완서의 문학이 지속적으로 소환해내는 기억과 경험들, 소탈하고 반듯하면서도 날선 지성 등을 구조물로 형상화한 장시각융합소(홍장오)의 전시 디자인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시와 더불어 사전 강좌, 좌담회, 낭독극 등 풍성한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해 많은 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관계자는 “박완서를 단일한 프레임에 덧씌우기보다 균형감 있게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한 전시 공간은 박완서의 작품세계를 여러 예술작품과 융합해서 보여주기에 충분했고, 그 덕분에 한정된 시간과 제한된 공간에서도 인물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글 전주호 서울문화재단 홍보팀
사진 제공 성북예술창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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