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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영화 <소공녀>와 <더 미드와이프> 여자의 일생
임순례 연출, 김태리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가 얼마 전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여성감독이 연출하고 여배우가 출연한 영화는 극장 흥행이 저조하다는 선입견을 깨고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한다.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와 마르탱 프로보스트 감독의 <더 미드와이프> 역시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을 세심하게 관찰한 영화들이다.

N포 세대의 진짜 모습전고운 감독의 <소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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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소공녀>

“쌀 좀 남는 거 있어? 집에 쌀이 떨어져서….”일당 4만 5,000원, 가사도우미 미소(이솜)는 궁핍하다. 그래서 친구에게 ‘구걸’을 한다. 웹툰작가 지망생인 남자친구 한솔(안재홍)과 사귀고 있지만, 가난은 이들 사랑에 한없이 불편한 장애요소다. 한겨울, 남자친구와의 잠자리를 위해 잔뜩 껴입은 옷을 벗어던진 미소는, 냉골인 방에서 맞닿은 상대의 차가운 살에 놀라 말한다. “아이 차가워. 너무 춥다.”그렇게 이들의 사랑은 “봄에 하자”라는 말로 무기한 유예된다.
동화 <소공녀>의 세라는 가난했지만 한때는 잘살았다. 하지만 월세난, 취업난에 처한 N포 세대의 신음이 들리는 대한민국, 영화 <소공녀>의 미소에겐 부유했던 과거도 없을 뿐더러, 이대로라면 앞으로 살 길은 더 막막할 뿐이다. 월세가 5만 원 인상되고, 담뱃값은 두 배로 치솟은 상황에서 급기야 미소는 결단을 내린다. “집 뺄게요.”좋아하는 위스키와 담배를 위해 차라리 살 곳을 포기하는 젊음. 쌀을 구걸하던 미소는 이제, 대학 선배와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하룻밤 잘 곳’을 구걸한다.
<소공녀>는 그렇게 집을 떠난, 아니 집을 잃은 미소가 만나는 ‘헬조선’의 사람들을 그린다. 좋은 직장을 구했지만 바쁜 스케줄로 고전하는 친구, 시부모와 남편의 눈치를 보며 기죽어 사는 친구, 생활은 풍족하지만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서 위안을 찾을 수 없는 친구…. 누구를 봐도 집 없이 떠도는 미소보다 더 낫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미소는 사회적 기준으로 볼 때 낙오자로 인식된다. 집도 없고, 결혼도 안 하고, 가진 것 없는 미소를 두고 미소의 친구는 “너는 아직 판타지 속에 살고 있구나”, “나 같으면 (그런 상황이면) 담배 먼저 끊었겠다”라는 지극히 전형적인 말들로 미소를 비난하지만, 미소는 그 걱정 어린 시선에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라는 말을 되돌려주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전개한다.
블랙코미디와 판타지에 가까운 전개 방식을 통해, <소공녀>는 ‘N 포 세대’라는 말로 청춘을 가두는 사회를 비판한다. 집을 구해야 한다는, 안정된 직장을 찾아야 한다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들을 가장 먼저 챙기는 미소는 별종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끝까지 미소를 ‘멋진 친구’로 남겨놓는다. 욜로(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 소확행(일상에서의 작지만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처럼 삶의 가치에 대한 요구가 대두되는 지금, 남들과 똑같은 삶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길을 떠나는 미소의 선택을 응원하게 된다.

엄마와 딸, 함께 나이 드는 여자들마르탱 프로보스트 감독의 <더 미드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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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더 미드와이프>

35년 전 집을 나갔던 새엄마의 연락. 중년 여성 클레어(카트린 프로)는 갑작스런 엄마의 귀환이 달갑지 않다. 인연을 끊고 살았던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아빠는 엄마가 떠난 직후 상실감에 자살을 택했고, ‘가슴에 총을 쏘고 자살한 아빠’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도 바로 자신이었다. 이후 그녀가 어떤 상처를 극복하고 살아왔을지 익히 짐작되는 사건이다. 하지만 새엄마 베아트리체(카트린 드뇌브)는 자신을 외면하지 못할 말을 던진다. “나 뇌종양이래.”클레어에게는 그녀를 받아들이지도, 또 그렇다고 아픈 노인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복잡한 상황이 주어진다. 중년과 노년에 이른 두 여성의 해후를 그린 <더 미드와이프>는 관계가 뒤틀린 이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래도 그 시간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힘겨운 과정을 세심하게 지켜본다.
베아트리체는 “날 원망했겠다”고 하면서도 “그땐 그런 사정이 있었다”고 딸에게 이해를 구한다. 어린 딸에게 설명할 수 없었던 복잡한 문제들은 무엇이었을까. 흥미로운 건 그녀의 이런 사정을 받아들이는 클레어가 당시 엄마가 집을 떠날 때의 소녀가 아닌, 이제는 대학생 아들을 둔 중년의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이제 어른이라고 여겼던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다. 클레어는 한 때 자신의 엄마였지만, 자신처럼 또 한 명의 여성이기도 한 베아트리체를 이해할 구실을 찾는다. 둘의 관계가 딸과 엄마가 아닌 두 명의 여성으로 보이는 이유도 여기 있다. 물론 산부인과 병원에서 조산사로 일하며 바른 생활을 하는 클레어와 술, 담배, 도박을 즐기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베아트리체는 성격부터 스타일까지 쉽게 친해질 수 없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건들을 통해, 조금씩 둘은 친밀감을 형성한다. 이 세심한 관찰에 먹먹한 감정들이 밀려온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조산사인 클레어가 참여하는 분만 장면이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사실감을 전달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임신부들의 사전 동의를 받아 촬영한, 실제 상황이라고 한다. 클레어와 베아트리체가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사이, 영화에는 무수한 새 생명이 등장한다. 어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죽기도하고, 어떤 아기는 의료진의 도움으로 새 생명을 얻기도 한다. 어린 시절 산파 덕에 목숨을 구했던 마르탱 프로보스트 감독의 경험을 토대로, 그 산파에게 헌정의 뜻을 담아 만들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국민배우 카트린 드뇌브와 카트린 프로의 안정된 연기 역시 리얼함을 배가하는 요소다. 개봉 당시 프랑스에서 31주간 장기 상영되며 잔잔한 감동을 줬다.

글 이화정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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