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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2017> 참여 작가 미디어 아티스트 이성은 가상현실 속 또 다른 나를 만난다
금천예술공장에서 10월 20일부터 11월 5일까지 열리는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2017>은 국내 미디어 아티스트의 등용문이자, 기술과 예술이 어우러진 축제의 장이다. 2015년에 이어 본 전시에 2회 연속 참여한 미디어 아티스트 이성은의 이력은 특별하다. 디지털 기술과 DIY를 접목해 ‘만드는 일’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메이커스 운동(makers movement)에 매료되었다가 미디어 아티스트로 전향한 탓일까? 그는 첨단 기술에 기반을 둔 창작을 하면서도 지난한 수작업을 거쳐 작품을 완성한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

미디어 아트를 하기 전에는 메이커스 운동에 뜻을 두었다고 들었는데 계기가 있었나요?

대학생 때 <메이크>(Make)라는 잡지를 접했는데, 이 잡지를 만든 사람이 한 말이 인상 깊었어요. 모든 사람은 다 메이커(maker)라고, 어렸을 때 만드는 걸 안 좋아했던 사람이 있겠느냐고요. 제가 어렸을 때 블록 장난감이랑 과학상자로 밤새 뭔가 만들고 그랬거든요. 전공을 기계공학과로 선택하면서, 여기 가면 뭔가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늘 갈증이 있었어요. 우연한 계기에 메이커스 운동을 알게 돼서 나도 뭔가 만들어봐야겠다 생각한 거죠.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

오큘러스 고글로 보여주는 가상현실은 ‘남처럼 느껴지는 나’이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바라보는 나’에 가까운 듯해요. 처음 만든 작품은 어떤 것인지요.

2012년 ‘킥스타터’1)에 ‘오큘러스 리프트’라는 VR 헤드셋이 올라온 적이 있어요. 인기가 아주 많았는데 시판되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자동차 내비게이션 디스플레이를 사다가 직접 만들어봤죠. VR 헤드셋과 실시간 영상을 결합하면 유체이탈을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제가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걸 쓰면 영화에서처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죠. 어렸을 때부터 나 하나의 모습으로만 사는 게 답답했거든요. 잘나가는 친구로도 살아보고 싶고, 다른 사람 머릿속에 들어가보고 싶고. 그래서 첫 작품 제목도 <존 메이커비치 되기>로 정했어요.

이 작품을 발전시켜 국내 메이커들의 축제인 <메이커 페어 서울 2013>에 참여하셨죠. ‘디지털 히피’라는 예명도 그때부터 썼는데 창작 그룹인가요?

사실 디지털 히피는 즉흥적으로 지은 이름이에요. 메이커 페어에 나갈 때 친구와 이름을 어떻게 적어낼까 고민하다 “히피인데 디지털로 작업하니까 ‘디지털 히피’라고 하자” 그랬어요. 메이커 페어에 걸맞은, 긱(geek)한 이름을 써야겠다 싶어서. 그 뒤로 계속 디지털 히피라는 이름을 쓰게 됐는데 고정 멤버가 있는 단체는 아니에요.

그때부터 히피처럼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셨는지 궁금하네요.

히피를 동경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학교 3학년 때 친구랑 음악을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휴학했는데 그때 뭔가 탁 풀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외면뿐 아니라 내적인 면에서도 그랬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정해진 선을 벗어난 삶이 두려웠는데, 그 선을 넘은 결정적인 계기가 2013년 떠난 해외여행이었어요. 동해항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까지 가서 횡단열차로 유럽을 거쳐 이스라엘까지 3개월을 돌다 왔는데, 카우치 서핑이나 히치하이킹도 많이 하고 길에서도 잤어요. 거기서 만난 친구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보면서 ‘아,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휴학 중에는 ‘팹랩서울’에서도 일하셨죠? 그곳에서 국내 메이커스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때만 해도 미디어 아트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창업해서 새로운 걸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은 했죠. ‘킥스타터’를 자주 들여다본 것도 그래서였고요. 마침 2011년 타이드 인스티튜트를 설립한 고산 대표님이 저희 학교에 수업하러 오셨다가 팹랩(FAB LAB: Fabrication Laboratory)을 만들 거라고 하셔서 나중에 찾아갔죠. 팹랩서울에서는 CNC, 라우터, 레이저 커터, 3D 프린터 등 디지털 제작 방식을 많이 썼어요. 거기선 1년 조금 못 되게 일하고 그만뒀어요. 남이 만드는 걸 도와주는 사람보다 내가 직접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2015년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공모는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초기에 VR 헤드셋을 영상과 연결하는 실험을 해보고 나서 영화가 너무 찍고 싶었어요. VR 영화를 촬영해줄 사람을 간신히 섭외했는데 장비가 비싸더라고요. 고프로(소형 액션캠)가 최소 6대는 필요해서 장비 값만 300만 원이 넘었어요. 그래서 지원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창업지원만 생각했지 예술 공모 쪽은 생각을 못했어요. 팹랩서울에서 일할 때 예술가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거기서 팀보이드 작가 분들도 만나고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공모도 알게 되어서 지원했죠. 이때 완성한 영화 내용이 <가상현실에서의 죽음>인데요. 병실처럼 꾸민 방의 침대에 관객이 누워 VR 헤드셋을 쓰면 스토리가 있는 영화가 상영돼요. 가족들이 와서 안부도 묻고, 과거 회상도 해요. 그러다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막 울죠. 러닝타임 6분의 짧은 영화예요.

2회 연속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작가로 선정되셨는데 올해 작품은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으셨는지요.

2015년 상반기에 MIT에서 온라인으로 운영하는 팹아카데미 과정을 수강한 적이 있는데, 그때 파이널 프로젝트로 만든 것이 ‘3인칭으로 인생을 살아보는 게임기’였어요. 제가 게임을 좋아하거든요. 1인칭 슈팅 게임은 화면이 주인공 시야대로 보이지만, 3인칭은 등 뒤에서 자기 캐릭터를 보잖아요. 현실의 나는 1인칭으로 살지만, GTA 게임처럼 3인칭 시점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조종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1, 2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2015에 출품한 <가상현실에서의 죽음>. 관람자가 오큘러스 고글을 쓰고 침대에 누우면, 임종을 앞둔 환자의 병실 풍경이 가상현실로 펼쳐진다.

이번 작품은 관람자의 동작에 따라 로봇 손도 움직이는 게 특이하네요.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 건가요?

관객이 앉아서 VR 헤드셋을 쓰면, 등 뒤에 있는 로봇의 눈높이로 사물이 보여요. 높이 3m의 로봇이라 처음에는 ‘어, 뭐지? 되게 높아 보이는데’ 하고 놀라죠. VR 헤드셋에 360°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실시간 스트리밍을 해주는데, 컴퓨터에 연결된 게임 엔진에서 내가 보는 방향의 영상을 틀어줘요. 로봇의 시선으로 보기 때문에 아래를 내려다보면 내 모습이 보이고, 그걸 잡으려 손을 뻗으면 로봇 손이 내 손의 움직임을 따라 나를 만지게 됩니다. 모션 트래킹을 하는 ‘립 모션’(leap motion) 센서가 있는데, 손가락의 움직임을 포착해서 내가 손을 오므릴 때 로봇 손도 따라 오므리죠.

로봇이 너무 커서 위압감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익살스러운 풍선 인형 같기도 해요.

딱딱하고 무시무시한 산업용 로봇이 등 뒤에 서 있으면 등을 내주고 앉기가 불편하잖아요. 뭔가가 나를 만진다는 건 다양한 뜻을 담고 있어요. 가능하면 토닥토닥하는 부드러운 느낌이어야 해서 소프트 로봇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디즈니 영화 <빅 히어로>처럼, 로봇을 보았을 때 감정적인 교류가 가능한 형태였으면 했어요. 정확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산업용 로봇은 딱딱한 느낌이지만, 이 로봇은 모터가 아니라 공기로 움직여서 동작이 부드러워요. 안아줘도 될 것 같고, 몸을 내줘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죠.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3 2016 다빈치 아이디어 마켓에 참여한 <거대 외로움 로봇> 프로토타입. 관람자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로봇의 손도 따라 움직인다.

그럼 작품 제목인 <에테리얼: 지극히 가볍고 여린>(Ethereal: Too Perfect for This World)은 소프트 로봇을 뜻하나요?

아뇨, ‘가볍고 여린’은 관객 자신이에요. 내가 유령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면 다른 사람이 “너 보여, 유령 아니야” 하고 말해주는 방법밖에는 없어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있어야만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건 무척 의존적이고 나약하다는 뜻이잖아요. 근데 이 작품은 그런 시선을 약간 비틀었어요. 내가 다른 사람의 시선이 되어서 나를 보고, 내가 유령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만져보면서 확인하는 거죠.

공동 창작자인 이승민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나요?

이승민 작가는 UCLA에서 미디어 아트를 전공하고 있어요. 학기 중이라 아쉽게도 인터뷰 자리엔 나오지 못했어요. 애니메이션과 디지털 작업을 주로 하는데 이 친구가 합류하면서 로봇의 외모가 많이 바뀌었어요. 맨 처음 작품을 기획할 때는 온전히 저 혼자서 해요. 누가 개입하는 걸 안 좋아해서요. 하지만 작품을 어떻게 만들고 발전시킬까 하는 단계에서는 협업하는 게 좋아요. 이번 작품만 해도 처음엔 로봇 재질이 가죽이었는데, 가죽옷을 입은 사람보다 부드러운 니트 옷을 입은 ‘훈남’이 뒤에 서 있으면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어서 바꿨어요. 저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 생각할 때보다 다른 사람과 소통할 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아요.

1) 2009년 시작된 미국의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www.kickstarter.com).

글 고경원_ 자유기고가
사진 오계옥
사진 제공 이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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