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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책 <꿀벌과 천둥>과 <빛 혹은 그림자> 소설로 만난 음악 VS 그림
문학과 다른 예술 장르의 결합은 때로 강렬하고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피아노 콩쿠르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각각 다룬 두 소설 <꿀벌과 천둥>, <빛 혹은 그림자>는 읽는 재미는 물론 음악과 미술의 매력을 함께 맛보는 시간을 선사한다.

장편 <꿀벌과 천둥>은 가상의 일본 도시 요시가에에서 3년마다 열리는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책을 펼치자마자 순식간에 클래식 음악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빛 혹은 그림자>는 스티븐 킹, 조이스 캐럴 오츠, 마이클 코널리 등 17명의 작가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17점에서 영감을 받아 쓴 단편소설들을 엮었다. 호퍼는 현대 미국인의 고독, 상실감을 탁월하게 그려낸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우리나라의 한 유통 대기업은 호퍼의 그림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TV 광고를 만들어 주목받기도 했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

활자로 듣는 음악

<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현대문학

<꿀벌과 천둥>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콩쿠르에 참가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양봉가의 아들로 자유분방하고 매혹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연주를 하는 가자마 진, 어머니를 잃은 후 연주회장에서 갑자기 사라졌던 천재 소녀 에이덴 아야, 뛰어난 실력과 빼어난 외모로 줄리아드음악원을 대표하는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대형 악기점에서 일하는 다카시마 아카시….
이들은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빗방울이 지붕에 세차게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숲속의 싱그러운 바람을 느끼는가 하면 광활한 우주까지 만난다. 예선부터 본선까지, 수차례 경연이 진행되며 점점 좁아지는 문을 통과하는 이들의 팽팽한 여정은 긴장을 고조시킨다. 탄탄하고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작가의 솜씨는 일품이다.
가자마 진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도 짜릿함을 더한다. 진은 제자를 별로 두지 않았던 전설적인 음악가 유지 폰 호프만이 숨지기 직전까지 찾아가 가르친 천재 소년. 천진난만하고 바람 같은 진은 아야와 마사루는 물론 심사위원들에게까지 강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호프만이 진을 통해 의도한 바를 더듬으며 음악이 자신에게 지닌 의미를 곱씹는다. 진 역시 처음 참가한 콩쿠르에서 다양한 연주를 듣고 아야, 마사루와 교감하며 성장한다.
저자는 일본 하마마쓰시에서 3년마다 열리는 ‘하마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2006년부터 4번 지켜보며 꼼꼼하게 취재했다. 덕분에 콩쿠르 현장과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조율사와 무대 매니저 등이 흘리는 땀방울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듯하다. 두 번째 참관한 2009년 대회의 우승자는 조성진이었다. 책 후반부에는 조성진을 연상케 하는 참가자가 등장한다. 쇼팽, 리스트, 베토벤, 브람스 등 거장의 음악이 활자로 쉼 없이 흘러나오기에 직접 들어보고 싶어진다. 일본에서는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책에 등장한 음악을 모은 CD가 큰 사랑을 받았다. 올해 일본 나오키상, 서점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림 한 점에 담긴 소설 한 편

<빛 혹은 그림자> 로런스 블록 엮음, 이진 옮김, 문학동네

<빛 혹은 그림자>는 좋아하는 작가나 마음에 드는 그림을 찾아 자유롭게 즐기면 된다. 컬러 도판으로 수록된 호퍼의 유명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호퍼의 그림을 보고 글을 쓰는 프로젝트는 로런스 블록의 주도로 진행됐고, 그 결과 스릴러, 범죄, 미스터리 등 다양한 유형의 소설이 모였다.
마이클 코널리는 늦은 밤 식당에 홀로 온 남성,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은 남녀 등이 그려진 <밤을 새우는 사람들>을 이야기 속에 직접 등장시켰다. 사설탐정이 된 전직 경찰이 영화계 거물 프로듀서의 의뢰를 받아 한 여성의 신원 확인에 나선다. 의뢰인은 여성이 자취를 감춘 딸이라고 여기고 있다. 작가 지망생인 여성은 미술관에서 호퍼의 <밤을 새우는 사람들>을 보며 글을 쓴다. 사설탐정과 여성이 그림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듣다 보면 작품 속 인물들을 더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소파에 앉아 책 읽는 여성과 창밖을 내다보며 담배를 피우는 남성이 있는 <선로 옆 호텔>을 보고 제프리 디버가 풀어낸 상상력은 무릎을 칠 만하다. 러시아 대령이 감시하던 유명 독일 과학자의 미국 망명을 막지 못한 사유를 보고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과학자가 미국에 있는 가족과 엽서를 주고받으며 그 속에 있는 그림을 통해 암호처럼 의사를 전달하는데, 특히 <선로 옆 호텔> 그림은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자동판매기 식당>, <호텔 로비>를 통해서는 반전을 선사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오전 열한시>에서는 밀애를 나누는 여성의 복잡한 심리를 세밀하게 짚어낸다. 그림 한 점에서도 누에고치처럼 이렇게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다니! 그림은 적어도 두 번은 보게 된다. 글을 읽기 전과 후. 같은 그림이지만 느낌은 사뭇 달라진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긴 호흡으로 책 속에 풍덩 뛰어들고 싶다면 <꿀벌과 천둥>을 권한다. 그림을 보며 머리도 식히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즐기길 원하는 이에게는 <빛 혹은 그림자>가 제격이다.

글 손효림_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사진 제공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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