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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2월호

윤리적 정치 주체 리부트 출판계 1990년대생 작가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격언은 출판계에도 통용된다.
독자는 앞물결(기성세대)이 낸 책을 읽는다.
그러다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작가를 겸하면서 뒷물결(신세대)의 힘을 갖는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오늘날 시점에서는 1990년대생(이하 90년대생) 작가들이 신세대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1960년대 한국 문단에 등장한 1940년대생 문인은 자칭 ‘한글 세대’ 임을 내세웠다. 거기에는 일본어 교육을 받고 자란 이전 세대와 자신들의 글쓰기가 근본적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당신들의 유산으로 성장했으나 당신들의 복제는 아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딛고 진화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출판계는 신세대가 출사표를 던지는 대표적 장으로 기능했다.현재 20~30대인 90년대생은 각계각층에 새로 진입해 자신들의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의 출현을 공표한 책이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이다. “‘9급 공무원 세대’라고도 할 수 있는 90년대생이 이전 세대와 어떠한 차이가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아가 우리는 어떤 눈으로 이들을 바라봐야 하는지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책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있었다. 흥미로운 점 가운데 하나는 《90년생이 온다》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대다수 독자가 90년대생이 아니라 그 전 세대였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덧붙이면 이 책을 쓴 저자는 1982년생이고, 대기업에서 인사 담당 업무를 맡아 “1990년대에 출생한 신입 사원과 소비자를 마주하며 받았던 충격의 경험을 바탕으로” 《90년생이 온다》를 집필했다. 1980년대생이나 90년대생이나 다르면 얼마나 다르다고 그런 책까지 냈느냐고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는 그들을 통칭해 MZ세대라고 하니까. ‘충격의 경험들’이 정말 세대에 기초한 것인지, 아니면 권력의 유무에 기반을 둔 것인지도 따져볼 사안이다.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이 책이 90년대생을 관리돼야 할 회사의 신입 사원이나, 상품을 마케팅해야 할 소비자 정도로 규정짓는다는 것이다.

90년대생의 진짜 목소리

따라서 요구되는 바는 90년대생의 자기 발언이다. 기성세대의 신세대 분석론이 아닌 신세대의 입장론 말이다. 굳이 요구까지 하지 않더라도 출판계에서 90년대생은 척척 나름의 글쓰기를 해왔다. 소설 분야에서는 1993년생 김초엽을 거론할 수 있다. 첫 번째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출간한 이래 그녀는 한국문학의 신성으로 줄곧 주목받고 있다. 한국문학의 변방이었던 과학소설이 평론가와 독자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된 이유도 김초엽의 대두와 관련된다. 그녀의 작품이 열풍을 불러일으킨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그중 한 가지를 꼽자면 ‘윤리적 가치의 일관된 실천’을 들 수 있다.무슨 말인가 하면, 김초엽은 한 사람이 존중받아야 할 삶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에 작품 내외적으로 반대한다는 뜻이다. 그녀는 소설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를 펼쳐내고, 소설 바깥에서 “소설의 가치가 한 사람의 삶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명하면서 윤리적 가치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인다. 2010년대 후반 공론화된 문단 성폭력 사태 이후 한국문학계의 행태에 실망한 독자는 김초엽이 추구하는 윤리적 가치의 일관된 실천에 호응했다. 특히 그녀와 같은 90년대생 독자는 도덕적으로 결함 있는 작가를 적극적으로 보이콧Boycott한다. 작품을 작품으로만 봐달라, 예술성이 정말 뛰어난 작가다, 누군가 그렇게 옹호한들 그들의 선택은 변하지 않는다.
이는 출판계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연예계와 스포츠계 등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업무 능력만 출중하면 사생활의 방종쯤 괜찮다는 능력제일주의는 구시대의 산물이 됐다. 윤리성은 90년대생이 무엇을 하든 염두에 두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달리 말하면 기존에는 세력을 형성하기 어려웠던 ‘윤리적 정치 주체의 리부트Reboot’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을 대변하는 책이 1994년생 임명묵이 쓴 《K를 생각한다》이다. 책의 부제는 이렇다. ‘90년대생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실제로 이 책은 윤리적 정치 주체로서의 90년대생이 한국 사회를 통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90년생이 온다》의 대척점에 위치한 책이다.
임명묵은 “90년대생이 원하는 것은 ‘공정’보다는 다만 불안을 더는 키우지 않는 것과, 신뢰의 기반이 쓸려나가는 와중에도 신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인 것”이라고 기술한다. 이에 비추어 보면 90년대생이 화두로 삼는 윤리적 가치의 일면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들은 절대선을 추앙하지 않는다. 그동안 지켜지지 않았던 최소한의 선을 지켜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일 뿐이다. K-방역과 입시 교육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 그는 그러한 논지를 전개한다. 이 책의 백미는 90년대생의 부모 세대인 1960년대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대한민국 386의 일대기’이다. 1980년대 윤리적 정치 주체를 자임한 1960년대생은 90년대생의 윤리관으로 논파된다. 한강의 앞물결은 뒷물결에 거세게 밀리고 있다.

허희 문학평론가 | 사진 제공 허블, 사이드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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