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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신촌문화발전소 2021 오드아이프로젝트 <이홍도 자서전(나의 극작 인생)> 쓰레기통 가장자리에 선 작가

연극 <이홍도 자서전(나의극작인생)> 중

<이홍도 자서전>은 한 작가가 선배 작가를 차례차례 죽이고 자신도 신인 작가에게 죽음을 맞는 가상과 현실이 담긴 ‘자서전’이다. 주인공인 ‘작가’는 ‘퀴어 작가’로서 ‘퀴어 작가’인 선배 작가들을 죽인다. 주인공의 이야기는 극작 기술을 배우기 위해 불러낸 선배 작가 에드워드 올비의 가르침을 받으며 시작된다. 올비는 후배에게 당수를 맞아 죽기 전에 극작을 하려면 “살불살조 살부살모殺佛殺祖 殺父殺母”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긴다. 극작 기술을 얻은 주인공은 잇따라 테네시 윌리엄스·토니 쿠시너·장 주네·장 콕토 등 선배이자 퀴어 작가를 불러내 죽인다. 그렇게 모든 선배 극작가를 살해한 주인공은 ‘극작 기술 +∞’를 달성해 자신 위에 아무도 없는 최고참 작가가 된다.
최고참이 된 주인공은 자신이 갈망하던 모든 극작 기술을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에 대한 질투와 후배 작가에 대한 불안감으로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그의 질투와 불안 모두 현실이 돼 그에게 다가온다. 주인공이 ‘가짜 게이’라고 비판하는 배우 ‘안필’은 주인공이 의심하는 바로 그 당사자성을 이용해 온갖 연극상을 휩쓴다. 주인공은 자신이 생각하는 ‘안필’의 진실을 희곡으로 집필하는데, 이로 인해 주인공은 타인의 이야기를 허락 없이 사용한 잘못으로 후배 작가에 의해 처단된다. 후배 작가, 또는 변호사이기도 한 배우는 도덕의 벽이 무너진 주인공이 죽은 틈을 타 자신이 새로운 도덕의 문지기가 됐음을 밝힌다.
공연은 이처럼 ‘정치적 올바름’을 가치관으로 삼은 주인공 그 자신이 정치적 올바름에 의해 죽는 모습을 그리며, ‘당사자성’ ‘부정성’ ‘동시대성’ 등을 비판의 기준으로 삼는다. 작품은 정치적 올바름과 그것의 배제성에 매몰된 예술계를 비판하는 듯 보인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적 관점은 ‘스스로를 위해 박수치는 관객’과 같이 ‘정치적 올바름’의 자아도취성에 칼을 겨누는 대사에서도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어떻게 보면 <이홍도 자서전>은 ‘혐오받는 퀴어’가 아니라 ‘혐오하는 퀴어’의 연극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결국 ‘정치적 올바름’을 이용한 작가의 선배 죽이기의 목적은 무엇이었나? 작가들은 무엇을 그토록 갈구했길래 2055년 가상의 미래에서조차 살불살조 살부살모의 관행이 반복되는 것인가?

마침내 쓰레기통 속으로

<이홍도 자서전>에서 작가의 죽음이란 물리적 죽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작품 속 작가가 지워지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죽은 선배 중 장 주네가 “원래 이용당하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라며 체념한 것과 같이, 작품이 세상에 나와 관객·독자에게 ‘이용당하는’ 순간 작가의 죽음은 이미 필연으로 보인다. 본 공연에서 무대장치가 사용되는 방식 또한 작가와 작품의 운명과 맞물린다. 소품들의 본래 용도는 상황에 따라 바뀌며 소실된다. 이는 작가가 작품에 부여한 그 어떤 것도 독자의 손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운명과 닮았다. 하지만 <이홍도 자서전>의 주인공은 공연 중간에 사고로 떨어진 달력과 같이 불가피한 작가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바라고 있다.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 그것을 찬미한 장 주네를 비판하던 주인공은 잠시 멈칫하고는, “책이 지금 나왔으면 바로 절판됐겠다” 고 읊조린다. 주네는 이에 “부러워 죽겠지?”라는 대사를 남기는데, 이는 주인공의 행위 목적에 대한 가장 적확한 평가임에 틀림없다. 주인공은 부처를 죽이고 조상을 죽이고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죽여, 자신이 그들이 되기를, 그래서 그들처럼 살해당하기를 원했다. 주인공은 자신이 죽인 작가들의 극작 능력뿐만 아니라 그들의 운명마저 얻고 싶어 했다. 공연 말미에 주인공은 기차가 다가오는 철로에 머리를 기대듯이 하고 죽음을 맞는다. 이전까지 질투와 혐오·경멸·불안으로 떨리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마치 그 울림을 만끽하듯이, 이것만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이홍도 자서전>의 주인공은 퀴어 작가로서 퀴어 당사자의 이야기를 쓰면서 본인은 ‘항상 혼자’라고 느끼며 고독에 잠긴다. 다시 말해 주인공 작가의 당사자성은 사회적 연대로 이어지는 장치가 아니다. 작가의 당사자성은 그것이 퀴어적이라 하더라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만 남을 뿐이다. 결국 ‘작가의 삶에는 알리바이가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운동으로서 퀴어에게는 생존이 목적이라도 작가로서 퀴어에게는 죽음이 목적일지도 모른다. <이홍도 자서전>이 그려내듯 작가의 운명은 고독과 외로움, 연대 불가능성뿐이니 말이다.

신촌문화발전소 2021 오드아이프로젝트 <이홍도 자서전(나의 극작 인생)>

일자 2021.6.4(금)~12(토)

장소 신촌문화발전소 공연장

작가 이홍도 연출 송이원

출연 권형준·김정화·박종현 무대 김재란

조명 서가영 음향 목소

영상 손영규 조연출 오휘민

기획 이선민 그래픽 홍진학

주최 이홍도×丙소사이어티 신촌문화발전소

영이 폭력과고통,그리고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월간종이》제작. monthly-paper.tumblr.com
사진 제공 신촌문화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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