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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5월호

전시 <성좌의 변증법:소멸과 댄스플로어>와 <라틀라스의 ‘씰(SEAL, 도장)’>지구와 예술의 여정,부유와 섞임
예술은 표현 양식이다. 언어나 숫자로 드러내지 못한 인간의 신체적 경험, 심리를 드러내는 도구다. 예술은 또한 실험과도 같다. 끝없이 변화하는 환경과 조건 속에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고 있고, 또 경험할 것인가를 창의적으로, 상상으로 보여주려는 갈급한 실험이다. 세계화와 다문화가 그 세를 더욱 확장해가고 있는 환경에서 개인의 삶에도, 예술가의 작업에도 다른 문화와 기억, 정체성이 겹겹이 중첩돼간다. 이런 과정에서 찰나에 포착된 불안과 쾌락, 분리와 동화 그리고 문화적 혼재와 혼합들이 표현된다. 서울 학동역 인근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가 개관 2주년을 기념해 연 <성좌의 변증법:소멸과 댄스플로어>와 종로구 북촌로 아트웍스파리서울 갤러리에서 개최한 <라틀라스의 ‘씰(SEAL, 도장)’>전이 그랬다.

혼재와 찰나를 담은 다원예술 <성좌의 변증법:소멸과 댄스플로어>4. 6~6. 10,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진액이 다 빠져 문드러져버린 알로에 껍질, K팝 스타의 얼굴이 담긴 국제전화카드, 말린 국화 꽃잎, 알약 캡슐, 얼룩지고 더러운 베개와 쿠션, 곳곳에 흩뿌려진 하얀 페인트칠, 빈 페트병들, 모기장과 천 조각, 솜들…. 전시장 공간 하나를 모두 차지한 미모사 에샤르의 설치작품은 그야말로 정신이 없다. 어떤 면에선 기괴하기도, 장식적이기도 하다. 작가가 한국에 와서 직접 동대문, 남대문, 경동시장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수집한 물건들을 바닥에 흩트려놓았다고 한다. 스피커, 음향기기, 체인 등을 소재로 한 페포 살라자르의 작품은 천장에서 밑바닥으로 늘어뜨린 4개의 마이크들이 실시간 회전하면서, 크고 작은 동심원들을 바닥에 그려내는 동시에 불쾌한 소음을 만든다. 이처럼 후기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오브제들, 물건들의 규칙 없는 배열은 복잡다단한 사건과 여러 문화, 물질문명이 혼재된 지금 이 시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매체 설치뿐 아니라, 수준 높은 스크리닝 작품들이 여럿 소개됐다. 특히 이민자나 망명자를 바라보는 시각,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다시금 던지는 아라쉬 나시리와 최원준의 작품이 그렇다. 아라쉬 나시리는 페르시아력 새해를 맞아 LA 지역에 사는 이란인들이 벌이는 모임과 그들의 이야기들을 모티브로 해, LA가 테헤란처럼 바뀌는 듯한 환영을 묘사했다. 최원준은 기존의 다큐 형식에서 벗어나, 정제되고 짜임새 있는 단편영화를 소개했다. 제목은 <나는 평양에서 온 모니카입니다>이다. 적도 기니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재자였던 프란시스코 마시아스의 딸인 모니카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흑인이자 적도기니 사람이지만 조선말이 편한, 때때로 조선사람으로 자신을 이해하곤 한 그녀의 인생 역정을 연극적 세팅으로 풀어냈다. 이번 그룹전은 프랑스에 기반을 두고 활동 중인 해외 작가 9명과 국내 작가 4명이 참여해 꾸렸다.

관련된 이미지

1 <예쁜 안나>, 미모사 에샤르, 2018.
2 <나는 평양에서 온 모니카입니다>, 최원준, 2018.
3 <씰 넘버 3>, 라틀라스, 2017.
4 <씰 넘버 10>, 라틀라스, 2018.

한지에 탁본한 그라피티 예술가의 도장 <라틀라스의 ‘씰(SEAL, 도장)’> 4. 12~5. 31, 아트웍스파리서울 갤러리

거리예술, 그라피티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라틀라스(L'Atlas). 프랑스 작가인 그의 본명은 쥴 드데 그라넬이지만, 1980년대부터 라틀라스라는 예명을 쓰고 있다. ‘라틀라스’는 그리스 신화 속 지구를 지고 있는 거인이자 지도책이란 뜻이다. 모험심 강한 작가는 18살 때부터 모로코, 시리아, 이집트 등 아랍 지역을 거쳐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며 각 나라의 문화와 서예로부터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문자 조형을 고안했다. 그렇게 그의 그라피티는 타이포그래피로 연결됐고, 탁본 방식을 활용해 거리의 맨홀을 찍거나 광장 혹은 건물 외벽에 문자 도와 같은 대규모 작업을 선보이곤 했다.
이번 전시는 그가 한지에 탁본한 작품 16점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다. 2년 전 서울에서 갤러리 작품으로 소개된 그의 전시가 다소 기하학적인 옵아트에 가까웠다면, 이번 작품들은 나무로 제작한 미로 같은 거대 인장에 먹과 잉크, 물감 등을 묻혀 한지 위에 찍어내어 회화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그의 작업은 동양과 서 양적 요소, 여러 나라와 문화들 속 체험을 흡수해 일궈낸 그만의 감성이 섞여 조화를 이룬다. 라틀라스는 한지 작업에 대해 “지인을 통해 알게 된 한지는 얇지만 질기고, 잉크나 물감을 몇 겹으로 올려도 찢어지지 않아 놀라웠다. 탁본된 한지를 다시 캔버스에 붙이는 작업은 (한국 족자 제작 방식처럼) 이를 해줄 수 있는 프랑스 장인에게 맡긴다”고 했다.

글 오진희 문화기고가. <그림 부자들>을 펴냈으며 국제학, 문화재학을 전공하고 최근 영국 버밍엄대에서 문화유산학을 공부했다.
사진 제공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아트웍스파리서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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