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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5월호

덕수궁 대한문문화재의 수난사
도시가 개발되면 문화재는 몸살을 앓습니다. 덕수궁 대한문 또한 그러한 문화재 중 하나로, 도로가 확장되며 담벼락이 잘려나가거나 돌담이 헐리고 철책으로 바뀌면서 공원화되기도 했습니다. 197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기까지, 대한문이 경험한 수난의 역사를 되돌아봅니다.

1969년 대한문 모습

<사진> 1969년 대한문 모습.

‘크게 편안’하지 않은 대한문

서울 중구 정동에 자리한 덕수궁(德壽宮)의 정문인 대한문(大漢門)은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합니다. 주말마다 이곳에서 집회가 열리고, 매일 ‘왕국 수문장 교대의식’을 보려는 외국 관광객들이 몰리기 때문입니다. 1963년 사적 제124호로 지정된 덕수궁은 조선시대 궁궐로, 원래 명칭은 경운궁(慶運宮)이었습니다.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뒤 이곳에 살면서 장수 기원의 의미를 담아 명칭을 덕수궁으로 바꾸었습니다. 덕수궁의 현재 면적은 6만 1,500㎡로, 대한문을 비롯해 중화문(中和門), 광명문(光明門) 등의 문이 있고, 중화전(中和殿), 석어당(昔御堂), 준명당(俊明堂), 즉조당(卽祚堂), 함녕전(咸寧殿), 덕홍전(德弘殿), 석조전(石造殿) 등의 전각이 있습니다. 개인 저택을 궁궐로 개축했기 때문에 전각 배치도 정연하지 못하며 석조전(石造殿), 정관헌(靜觀軒) 등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 있어서 고유한 궁궐의 양식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대한문은 원래 대안문으로 불렸습니다. 대한제국 시기에 대신을 지낸 민병석이 ‘크게 편안하다’는 의미로 쓴 대안문 현판이 남아 있습니다. 1906년 대한문으로 바뀌었으나 누가, 어떤 이유로 바꿨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있습니다.
대한문은 처음 중화전 정면에 있다가 나중에 동쪽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 위치에서 16m 물러난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덕수궁 앞길인 태평로가 신설되고 확장되면서 궁이 3번 잘려나갔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태평로를 만들며 당시 경운궁 담벼락을 잘라냈습니다. 또 서울시의 개발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며 2번 더 잘렸습니다. 1961년 태평로를 확장하며 덕수궁 돌담을 헐고, 철책으로 바꾸면서 공원화했습니다. 그러고는 1968년 교통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이 철책을 뒤로 물려 이축해 현재의 높은 돌담을 쌓았습니다. 대한문은 그대로 뒀습니다. 문화재위원회의 강력한 반대 때문입니다.그러다 보니 1969년 촬영된 <사진>에서처럼 대한문만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외로운 섬처럼 길 한가운데 홀로 남아

1968년 1월 31일 신문에 난 기사가 당시 상황을 잘 설명해줍니다. “서울시에 의하면 금년도 서울시 예산에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의 이전비가 책정되지 않아 대한문은 계속 길 한복판에 나앉아 있게 됐다. 대한문은 서울시가 작년 초 덕수궁 철책을 뒤로 물리면서 대한문도 함께 옮기려 했으나 문화재위원회의 반발로 손을 못 댔다. 그런데 그 후 대한문을 뒤로 옮기라는 시민들의 여론에 문화재위원들이 당초의 주장을 뒤집어 서울시에 이전을 요구했으나 이번에는 서울시가 옮기지 말랄 때는 언제고 지금 와서 옮기라고 하느냐면서 맞서 700만 원의 복원비조차 책정하지 않았다.”
덕수궁 돌담이 철책이 되고, 대한문이 돌담과 떨어져 남아 있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담은 신문 칼럼도 있습니다. “돌담은 헐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수백만 원의 세금으로 만들어놓은 그 철책이 곧 녹이 슬고 말아서 페인트칠을 몇 번이고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그 담마저도 몇 해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궁 안쪽으로 옮겨갔고, 수백만 원을 재투자해서 돌담을 다시 세운 것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담과 문은 분리해 생각할 수 없거늘 대한문은 왜 그대로 서 있는가. 마치 외로운 섬처럼 길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대한문을 볼 때마다 ‘덕수궁은 이제 궁궐이라고 부를 수는 없고, 공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서울시와 문화재위원회가 맞서며 2년 가까이 어정쩡한 자리에 놓여 있던 대한문은 1970년 12월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대한문 외에도 1979년 고가도로에 밀려 독립문이 북쪽으로 조금 이전되기도 했고, 지하철 공사로 인해 많은 문화재들이 몸살을 앓았습니다.

사진 김천길 전 AP통신 기자. 1950년부터 38년 동안 서울지국 사진기자로 일하며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김구철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대중문화팀장으로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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