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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1월호

영화감독·작가 이길보라 일단 시도할 것, 계속 질문할 것
“안녕하세요,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 굳게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이길보라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해가 지기 시작한 시간, 먼저 발표한 발제자의 소개를 받고 이길보라 감독이 등장해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10월 16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지하3층 하늘광장에서 진행된 <같이 잇는 가치> 문화예술 오픈포럼 1일차 무대였다.
공식석상에서 그는 대개 같은 문장으로 자기소개를 한다.
거기엔 ‘농인 부모’ ‘이야기꾼’ ‘글’ ‘영화’ 그리고 부모님이 지어주신 멋진 이름 ‘이길보라’까지, 필요한 사항이 군더더기 없이 담겨 있다.
‘코다’라는 정체성을 반영해 글과 영화를 짓고 세상에 질문하길 주저하지 않는 그를 포럼이 시작되기 전 만나보았다.

소리가 반짝이는 세계로부터

10월 16~17일 양일간 진행된 서울문화재단의 <같이 잇는 가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존을 모색하는 문화예술 프로젝트로, 담론 형성 자리인 ‘문화예술 오픈포럼’과 장애·비장애 예술인의 창작 프로젝트 3가지를 만날 수 있는 ‘전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이길보라 감독은 16일 ‘일상의 조건’을 주제로 진행된 1일차 문화예술 오픈포럼에서 발제를 맡아 20여 분간 ‘당사자성’에 대해, 농인 부모님과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udults.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인 자신의 경험담 및 이를 담은 창작 활동을 예로 들어가며 경쾌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장애를 말할 때 장애인만이 당사자가 아니라 장애인과 관계를 맺는 모든 이가 당사자임을 인지하는 것, 나아가 장애를 ‘차이’로 인정하고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발제 내용의 핵심이었다. 글로 옮기고 보니 딱딱한 메시지가 됐지만, 감독 본인이 흥미롭게 경험하는 세계를 그는 조리 있는 이야기꾼으로서 청중에게도 흥미롭게 전했다.
‘재미’는 이길보라 감독이 다양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데 중요한 요소다. 그는 수어로 소통하는 농인의 문화와 음성언어로 소통하는 청인의 문화를 모두 경험해 왔다. 부모님 덕분에 수어로 옹알이를 시작한 그는 양손을 펴고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손목을 좌우로 빠르게 흔드는(흔히 ‘반짝인다’고 표현할 때의 그 손동작) 수어 ‘박수’가 아름답고 재미있었고, 그래서 이 세계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 부모님이 만나 사랑하고 가족을 이루기까지의 이야기와 일상, 그리고 코다로서 이길보라 감독 남매가 경험한 일들을 담아낸 첫 장편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3)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영화를 본 관객은 아마도 자신도 모르게 쌓아온 내면의 잣대나 선입관이 허물어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경쾌하고 따뜻하게 말이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는 일상적인 장면이 많이 등장해요. 밥을 먹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친척들이 모여 함께 제사를 지내고, 가족이 함께 이사할 집을 보러 가기도 하죠. 노래방도 가고요. 아주 평범한 에피소드인데, 그 주체가 농인일 때 어떻게 달리 보이고 또는 그렇지 않은지 느껴지실 거예요. 예를 들면 식사 장면에서 음성언어가 없어서 수저가 그릇을 건드릴 때 나는 달그락 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진다든지 하는 차이를 보며 ‘아 이건 이렇게 다르구나’ 또 ‘이런 건 비슷하구나’ 경험하고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죠.”
들리지 않는다는 건 부족한 게 아니라 ‘다른 언어로 소통하고 세상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길보라 감독은 스물두 살에 친구를 통해 ‘코다’라는 단어를 알았고,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는 다른 사람, 선행된 농인 문화 연구와 작업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어떤 안도감을 갖게 됐다. 그리고 같은 해, 농인의 국제 교류에 관심이 많던 아버지와 함께 미국을 방문해 농문화 축제 ‘데프네이션 엑스포(Deafnation Expo)’에 참여하고 세계 유일의 농인 고등교육기관 갤러뎃대학을 둘러보며 정말 다른 세상이 있음을 발견했다. ‘시각언어를 사용하는 문화’ 속에서 오히려 청인이 소외감을 느낀 경험은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의 시작이 됐고, 코다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과 연대의 기회를 모색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대화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만난 이들과 함께 2019년에는 코다가 경험하는 삶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우리는 코다입니다》를 펴냈다.
“사람들은 코다를 특별하게 보기도 하는데, 저는 제가 가장 평범하고 보편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 입장에서는 수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거죠. 반면에 저는 농인의 세계는 잘 알지만 다른 장애를 가진 분들, 다른 문화권에 대해서는 무지하기도 해요. 각자가 가진 이런 차이에 대해 서로 불편하지 않게 계속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예술가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

올해 이길보라 감독의 이름이 눈에 더 많이 띈 이유 중 하나는 지난 2월 그의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기억의 전쟁>이 개봉해 관객과 만났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에 의해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퐁니퐁넛 마을의 생존자 응우옌 티 탄 씨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소재나 무게감에서는 전작과 확연히 다른 작품으로 느껴지지만, 베트남 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로부터 영화를 구상했다는 점에서, 작품의 모티프를 개인적 경험에서 얻고 있다는 공통점이 깔려 있다. 아울러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탄 씨와 함께 중요한 화자로 증언하는 딘 껌 씨는 농인이다. 그가 수어로 증언할 때 전해지는 고요한 힘과 함께 관객은 전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체험하게 된다.
“껌 아저씨는 저와 소통이 잘되는 분이었어요. 그건 제가 수어를 사용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는데, 껌 아저씨의 수어는 베트남 수어가 아닌, 언어 체계를 갖지 않은 사인(sign)이거든요. 아저씨는 농인으로 태어났지만 수어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대요. 전쟁은 한창이고 장애인은 학교에 가지도 못했고, 구두닦이로 돈을 벌며 생계를 이어야 했기 때문이죠. 한데 제가 그분과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해 얘기를 나눠보니, 양민 학살이 일어난 하미 마을에서 도망쳐 나오셨더라고요. 농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쟁은, 역사는 어떤 것이었을까 전달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자 중 한 분으로 모시게 됐어요.”
영화에서 탄 씨는 용기를 내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공개 증언하며 한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 가족을 모두 잃은 피해자임에도 고통 속에 상처의 순간을 수차례 복기해야 하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더하고, 결국 그는 한국인 참전자에게서도, 한국 정부로부터도 사과받지 못한다. 어렵게 던진 이야기가 어디에도 가닿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일은 어쩌면 이를 기록하는 이길보라 감독 역시 창작 과정에서 계속 겪을 일일 것만 같았다. 무력감이 클 텐데 쉽게 해결되지 않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이유, 원동력이 궁금해졌다.
“힘들다고 생각했으면 예술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예술가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고 거기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요. 그 목소리를 나 혼자 낸다면 정말 외롭고 힘들 것 같은데, 같은 생각을 갖고 연대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믿어요.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들리고 보이게 하는 많은 활동도 넓은 의미에서 연대일 수 있고, 제가 영화를 만들면 그 영화를 보러 온 관객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역시 일종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말하고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결과가 어떻든 시도가 중요하니까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의 영화와 글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듯 이길보라 감독은 열일곱 살에 학교 수업을 중단하고 동남아시아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꼼꼼하게 계획해 부모님을 설득했고 여비는 펀딩을 받아 마련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책 《길은 학교다》와 영화 <로드스쿨러>를 세상에 내놓았다. 다큐멘터리영화를 더 공부하고 배우고 싶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진학했으며 2017년에는 네덜란드 필름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났다. 하고 싶은 건 일단 시도했다. 뭐든 직접 부딪쳐 경험하며 세상을 터득해 온 부모님은 딸이 고민하는 순간 “괜찮아, 경험”이라는 말로 그의 시도를 응원했다. 행동은 당당하고 생각과 말은 명쾌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논리정연하게 전달하는 글을 쓰는 사람. “속하고 싶은 세계가 있었나” 라는 우문에 “내가 가고 싶은 판이 존재하지 않거나 너무 멀어 보일 땐 내가 직접 판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모이게 했다”는 현답을 낸다. 부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 같다. 물론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을 테지만.
“남보다 일찍 경험했을 뿐이지 저도 또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걱정이 정말 많은 평범한 사람이에요. 올해 나온 저의 책을 읽어보신 독자분들이 위안을 얻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이길보라가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 같지만 삶의 큰 결정을 내릴 때 무수한 고민을 했구나 하는 점에서요.”
지난 8월에 발간된 책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에는 그가 네덜란드 필름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나는 과정과 그곳에서 살고 공부하며 느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길보라 감독이 경험을 밑천 삼아 다음 경험을 만들어낸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이 솔직하고 담담한 언어로 적혀 있기에 코로나시대에 ‘대리 유학기’ 삼으며 위안을 얻는 독자가 많다는 소식에 감독도 흐뭇하게 웃었다. 그의 당당함이 부러운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사실 그 역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이걸 영화로 만들어도 될지’ 확신을 갖지 못해 수없이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에서 많은 여성 창작자가 겪는 일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 위해 그는 무엇이 바뀌거나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가장 필요한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들이 섞인 공동체나 커뮤니티 공간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삶의 최고 가치는 하나가 아닌데, 우리는 (코로나 시대에서는 더욱) 물질만능주의로 흐르기 쉬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봐요. ‘이런 얘기를 해볼까’라고 하면 그건 돈이 안 돼, 안 팔려, 너무 작고 사소해, 좀 더 센 이야기를 해 라는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높죠. 우리는 한 개인에게 그의 인생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묻고 토론해본 경험이 거의 없어요. 그런 걸 제대로 말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사회 환경이 마련돼야 한국 사회에서도 무엇이든 창작을 시도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고 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라면 무엇이든 질문하고 시도하는 분위기는 만들어지기 힘들겠죠.”
그의 다음 영화는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에 관련한 이야기가 될 예정이다. “다양성이 존중되기 위해서는 각자의 기본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선택할 권리, 내 몸이 변화하거나 변화하지 않을 권리”라는 그의 말에서 일관된 방향, 어떤 단단함 같은 게 느껴졌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가 걷고 있는 길은 어쩌면 탄탄대로에서 먼 길이지만 그가 부럽다.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을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지만 긍정적이다. 그의 행보가 돋보인다면 그건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씩 천천히 오래 문을 두드리는 일을 그는 계속 경쾌하고 명쾌하게 이어나갈 예정이다.
“한번 문을 두드리는 게 어려울 수는 있지만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봐요. 때로 한 곡의 노래, 한 권의 책이 누군가의 인생을 구원하기도 하잖아요. 거대한 세계를 뒤집어야 의미 있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을 바꾸는 것에서 변화는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건 정말 크나큰 힘이죠.”
글 이아림_객원 기자
사진 공간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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