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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레지테아터, 현시대 극장과 오페라의 경향

#1.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 여주인공은 일본의 게이샤가 아니라 서기 2576년 ‘파필리오’ 행성의 공주다. 남주인공도 미국의 해군 장교가 아니라 ‘엠포리오’ 행성이 파견한 사령관이다.
(연출 정구호, 10월 12일부터 15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2.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3막 끝부분에서 투란도트 공주가 칼라프 왕자의 손을 잡고 사랑의 성취를 찬미하는 대신 자신에게 총을 쏜다.
(연출 손진책,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 세종대극장)
#3.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 3천여 개의 십자가가 무대를 둘러싼다. 원작의 로마군 대신 20세기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등장하고, 여주인공의 집 TV에서 애니메이션이 흘러나온다.
(알렉스 오예Alex Olle 연출, 10월 26부터 29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전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로열오페라하우스 프로덕션 <노르마> ⓒ예술의전당

2023년 대한민국의 오페라 무대를 장식한 세 편의 작품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무대에 익숙한 오페라 팬들의 반응은 ‘새로운 감동을 경험했다’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로 엇갈렸다. 연출가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유럽과 미국의 오페라극장에서는 이처럼 오페라 원작의 고전적인 연출을 크게 바꾸는, 실험적이거나 전위적인 시도를 ‘레지테아터Regietheater’라고 부른다. 독일어로 ‘연출가 극장’이라는 뜻이다.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의 배경인 중세 스페인이 정부군과 게릴라의 교전이 벌어지는 남미로 바뀌고, 모차르트 <돈 조반니> 배경이 21세기의 라스베이거스로 바뀌기도 한다. LED 조명이나 무대 배경에 프로젝션과 같은 현대적 효과도 자주 사용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른바 ‘소격효과疏隔效果, Verfremdung’(낯설게 하기)가 연극과 오페라에서 강조되면서 먼저 독일을 비롯한 유럽 무대에서 레지테아터가 붐을 이뤘다. 이런 경향을 앞장서 이끈 인물로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손자인 빌란트 바그너Wieland Wagner가 꼽힌다. 그는 바이로이트 축제극장Bayreuth Festspielhaus에서 1950~60년대 바그너 극의 전위적인 해석을 이끌었으며, 이는 ‘극의 구조주의적이고 심층심리학적인 면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레지테아터에 대한 관용도 또는 수용성은 유럽과 미국이 다소 차이가 있다. 대체로 북미에서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레지테아터가 환영을 받는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중심으로 한 미국 오페라계는 전통적인 무대가 유럽보다 많은 편이다. 그 이유에는 오페라라는 장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차이가 작용한다. 유럽의 경우 대대로 오페라를 즐겨온 고정 인구가 많은 편이며, 익숙한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많이 요구한다. 반면 북미에서는 대체로 오페라가 뮤지컬이나 다른 쇼 비즈니스 경험의 일부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이해하기 쉬운 접근을 요구하는 경향이 크다.

손진책 연출 서울시오페라단 <투란도트> ⓒ세종문화회관

지난 10월 19일 <투란도트>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테너 이용훈은 흥미로운 일화를 전했다. “최근 독일 드레스덴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응용한 버전의 공연에 출연했죠. 줄다리기도 하고, 저는 동양인이어서인지 양궁도 하면서 난관을 뚫고 공주에게 도전하는 식이었어요. 한국 드라마의 힘을 실감했습니다.” 19세기 이전 작품을 창작 당시의 배경에서 이탈시키고 새로운 관점에서 만나게 하는 이런 ‘레지테아터’에는 자주 격렬한 찬성과 반대가 잇따른다. 미국 문화평론가 헤더 맥도널드Heather Mac Donald는 “오페라에 대한 유괴다. 무대 위에 남발하는 쓰레기 같은 섹스나 원작에서 분리된 설정은 깊은 질병의 증상이다. 가장 교활한 문제는 원작의 계몽주의적 가치에 대한 연출가들의 증오다”라고 질타한다. 얼마간 예술 외적인 이유로 레지테아터가 질타를 받는 경우도 있다. 연출가에게 지급되는 보수와 무대를 구성하는 비용이 커져 음악가들에게 돌아가야 할 비용은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레지테아터에 대한 찬성의 배경에도 여러 이유가 따른다. “예술가들은 많은 경우 당대의 시대적 문제를 작품에 녹였다. 예를 들어 <나비부인>에는 19세기 제국-주변부 사이 성노예 문제가 드러난다. 이를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의 문제로 현재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한 예다. 필자의 경우 레지테아터에 반감을 갖게 되는 때는 연출과 음악이 각각 다른 방향을 갈 경우다. 한 예로 푸치니 <라 보엠>에서 여주인공 미미를 먼저 로돌포를 유혹하는 적극적인 인물로 묘사한 경우가 있다. 원작 소설로 보면 미미는 2막을 지배하는 무제타와 마찬가지로 파리의 예술가와 패트런 사이를 옮겨 다니는 ‘코르티잔’ 여성 중 하나이니 이런 해석도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푸치니는 이 원작을 바탕으로 한없이 청순하고 순수한 여성 미미를 창조했다. 적극적인 미미는 이런 음악과 위배된다. 물론 그런 위배가 주는 반감까지 낯설게 하기, 소격효과의 일종일 수도 있지만, 연출가의 이해 부족이 드러난 결과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계와 과대 포장이 일부 존재할지라도 레지테아터는 이 시대 극장과 오페라의 뚜렷한 경향이다. 작품의 역사성을 보존하는 한편, 작품의 새로운 해석과 현재화 또한 필요하다. 두 가지가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보완하며 명작의 가치를 키워나가야 한다. 원작자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오늘날의 새로운 가치를 더하기 위해 오늘의 제작자와 연출가들은 한층 진지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유윤종 동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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