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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3월호

공연 하기와 공연 보기

<다페르튜토 쿼드> 연습실에서 만난 연출가 적극

새로 개관하는 극장과 새로운 활동기를 맞는 연출가의 작업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올해 첫 번째 쿼드 제작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연출가 적극과 오세혁이 만나 대립하는 모든 것과 공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주 오래전, 연출가 적극을 처음으로 인터뷰한 적이 있다. “연극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적극 연출은 “연극이라는 단어를 재정의하는 작업이 연극”이라고 답했다. 연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극이라는 단어 자체를 새롭게 만드는 것. 그래서 그가 만드는 ‘연극’의 뜻은 매번 다르다. 그에게 연극이란 “무대를 세운 후에 다시 부수는 것”이기도 하고, “끊임없이 갈등과 갈등을 반복하는 것”이기도 하며, “모방으로 탄생한 어떤 것을 다시 모방하며 새로운 창조를 끌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의 사전에는 저마다의 뜻이 다른, 무수한 ‘연극’이라는 단어가 끝없이 적혀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그를 다시 인터뷰하게 됐다. 서울문화재단이 새롭게 탄생시킨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그는 <다페르튜토 쿼드>라는 제목으로 연극이라는 단어를 또 한 번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다페르튜토는 러시아의 배우이자 연출가 메이예르홀드Vsevolod Meyerhold의 공연명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공연에 늘 ‘다페르튜토 박사’라는 이름으로 출연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쩌면 메이예르홀드는 평생 하나의 공연에 하나의 배역으로만 살아온 것일 수도 있다.
적극 연출의 거의 모든 연극은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라는 제목을 쓴다. 하나의 제목으로 저마다의 도시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연을 올린다. 부산·안산·서울·고양·대구, 그렇게 하나의 제목을 통한 저마다의 공연이 계속된다. 어쩌면 적극 연출도 하나의 연극을 평생 끝없이 공연 중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공연의 러닝타임은 그가 삶을 살아가는 시간 동안 계속될 것이다.
이번 작업에 대해 그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대립의 공존”이었다. 근대의 문명은 아주 오랫동안 이분법의 세계관으로 발전해왔다. 밝음과 어두움, 깨끗함과 더러움, 육체와 영혼, 아군과 적군, 과학과 미신, 이 수많은 이분법의 세계에서 공존은 불가능하다. 아군이 아니면 적군일 뿐, 아군과 적군의 중간은 없다. 살아남는 길은 상대를 죽이는 것뿐이다.
적극 연출은 근대의 이분법이 하나의 무대에서 내팽개쳐지는 상상을 한다. 하나를 위해 하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와 하나가 모두 살아나는 상상을 한다. 서로 모순된 것들이 하나의 무대에서 상생하고, 서로 대립하는 것들이 하나의 무대에서 공존하는 상상을 한다. 언젠가 그 서로 다른 것들은 공존의 순간을 넘어 ‘일치’의 순간에 다다를 것이다. <다페르튜토 쿼드>는 바로 그런 상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시학과 과학이 공존하고, 배우와 관객이 공존한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지고, 연기와 관극의 경계를 넘나든다. 오프라인의 극장과 온라인의 극장이 나란히 운영된다.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는 동시에, 공연을 펼치는 무대의 광경이 온라인 채널로 매일 업데이트된다. ‘코로나 시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극장’에서 공연하는 동시에, ‘코로나 시대에 점점 사라져가는 극장’의 대안을 찾기 위해 온라인 극장을 실험한다. 하나가 탄생하고 하나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탄생과 소멸이 공존한다.
<다페르튜토 쿼드>의 이야기는 4원소로 이루어진 4개의 막으로 펼쳐진다. 불·물·흙·공기. 세상의 모든 존재를 이루는 근원이 되는 재료다. 적극 연출은 각자의 재료가 지닌 각자의 운동성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불이라는 재료를 상상해보자. 불은 무언가를 불태운다. 그렇다면 불은 죽음의 운동성이다. 하지만 불로 인해 또 다른 무언가가 담금질돼 탄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불은 삶의 운동성이다. 불이라는 재료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선물함으로서, 인간은 어둠을 밝히고 삶과 삶으로 이어지는 역사가 생겨났다. 그러나 신의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는 끝없는 어둠 속에서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이어간다. 누군가의 어둠이 누군가의 빛으로,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의 삶으로 이어진다. 머나먼 신화 속에서 피어난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끝없는 운동성을 가지고 현대의 시공간으로 옮겨붙는다. 어느 전쟁터의 폭탄이 뿜어내는 불꽃일 수도 있고, 그 전쟁터의 폐허에서 몸을 녹이기 위해 피워내는 모닥불일 수도 있다. 어느 도시의 시위대의 화염병과 진압대의 살수차가 충돌하며 피어나는 증기일 수도 있다. 불이라는 재료의 운동성을 통해 서로 대립하는 것들의 공존이 탄생하는 것이다. 신화의 세계관과 과학의 세계관이 하나의 무대에서 만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대학로극장 쿼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류와 공존하는 시기에 개관했다. 팬데믹 시대에 탄생한 극장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아마 서울문화재단 또한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극장이 되어야 할까’라는 고민을 넘어 ‘극장이란 무엇일까?’라는 고민 또한 생겨났을 것이다. ‘연극이란 무엇일까’를 늘 고민하는 적극 연출과의 만남은 아마도 필연이었을 것이다. ‘극장의 의미를 찾으려는 극장’과 ‘연극의 의미를 찾으려는 연극인’의 만남은 우리를 어떤 무대의 세계로 초대해줄까.
‘쿼드quad(rangle)’는 사각형이라는 뜻이다. 사각은 서로 다른 4개의 선이 만나 만들어낸 공간이다. 치열한 토론이 오갔던 대학 공론장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쿼드는 여러 형태로 변형이 가능한 블랙박스 극장이다. 적극 연출의 표현에 의하면 “새로운 냄새”,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느낌”, “들쑥날쑥한 탄력을 지닌”, “아직 길들지 않은 말 같은” 느낌의 극장이다. 아직 탄생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이 가득한 극장이다.
어쩌면 우리는 초대받는 입장이 아니라 행위하는 입장으로 극장에 갈 수도 있다. 관객의 시선이 아니라 배우의 시선으로 무대를 누빌 수도 있다. 공연을 하는 동시에 공연을 보고, 무대를 바라보는 동시에 무대의 구성원이 될 수도 있다. 적극 연출은 지난 10년간 ‘다페르튜토’의 이름으로 꾸준히 작업해왔다. 그간의 작업과 방향성을 정리하기 위해 1년간 안식기를 보내고 시작하는 첫 작업이다. 새로 개관하는 극장과 새로운 활동기를 맞는 연출가의 작업이 계속해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적극 연출이 마지막으로 언급한 한마디가 계속해서 기억에 남는다. “골짜기 안에서 흐르는 강물이 아무리 격렬하게 부딪혀도, 멀고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면, 그 강물은 아마 골짜기와 평온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을 거에요.”

<다페르튜토 쿼드>
2023년 3월 28일부터 4월 16일까지
대학로극장 쿼드

글 극작가·연출가 오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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