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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3월호

상상하던 일상이 현실이 될 때

시각장애 관객의 쿼드 탐방기

대학로극장 쿼드는 모두가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극장 전 구역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했다.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로 활동하며 자신의 중도장애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도 한 필자의 걸음을 따라 극장 공간을 탐방했다. 쿼드의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대학로극장 쿼드는 내게 찾아온 새로운 일상의 시작이다. 30대 중반부터 서서히 흐려진 시야는 내 일상을 바꿔놓았다. 혼자서 할 수 있던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눈으로 즐기던 것들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달라진 생활 속에서 나는 꿈꾸기 시작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그런 내게 찾아온 대학로극장 쿼드는 꿈꾸던 일상이 현실이 된 공간이다. 지난해 12월 나는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무용 공연 <2022 휘이잉>을 관람했다. 그날 나는 내가 꿈꾸던 일상을 즐길 수 있었다. 그 일상이 어떻게 찾아왔는지 지금부터 이야기해보려 한다.
대학로극장 쿼드를 처음 만난 것은 극장이 정식으로 문을 열기 전이다. 블랙박스 형태의 새로운 극장은 개관 전 제로셋 프로젝트와 진행한 시설 접근성 워크숍을 통해 시각장애 관객, 휠체어 이용 관객, 농인 관객이 극장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물리적인 보완점을 찾는 것을 함께 고민했다. 워크숍에 참여한 나는 시각장애 관객의 입장에서 극장의 여러 공간을 직원들과 탐색하며 더 나은 접근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극장의 이곳저곳을 발로 딛어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기회가 너무 소중했다. 그리고 워크숍을 계기로 대학로극장 쿼드는 내가 혼자 가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대학로의 몇 안 되는 극장 중 하나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오가는 바퀴들로 늘 정신없는 대학로 골목길 구석구석 숨어 있는 극장들은 내가 찾아가기에는 너무 큰 장벽이었다. 하지만 늘 꿈꾸고 있었다. 눈이 잘 보이던 예전처럼 혼자 극장에 찾아가서 사람들과 어울려 공연을 보는 나를 말이다.
극장은 시설 접근성 워크숍뿐만 아니라 개관 페스티벌에 오른 작품 12편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 모니터링도 실시했다. 페스티벌 중 음성 해설이 제공된 공연은 1편뿐이지만,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다양한 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 한 극장의 시도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개관 페스티벌 이후 선보인 대학로극장 쿼드의 첫 제작 공연 <2022 휘이잉>에서도 극장의 꾸준한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공연을 보러 가는 날, 나는 기대가 가득했다. 청각적이면서 촉각적인 느낌의 제목도 맘에 들었지만, 전화 예매 시 들었던 무대의 모습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블랙박스인 쿼드의 특징을 살려 작품은 객석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관람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전화 예매 담당자는 시각장애가 있는 내게 각 구역의 특징을 꼼꼼히 설명하며 가장 편하고 적당한 객석을 안내해주고자 했다.
제목부터 객석의 구조까지 나에게 호기심을 가득 안겨준 작품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다. 극장은 혜화역에서 멀지 않고, 가는 길도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골목길에는 사람도 많고 차도 많아 조심스럽게 길을 이동했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오른쪽 골목길로 접어들어 길의 오른쪽 가장자리에 붙어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직진하다 보면, 기울기가 완만하게 올라가는 구간이 나타난다. 그 오르막길은 길을 제대로 잘 찾아왔다는 것과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다. 이제 오르막을 오르다가 왼쪽으로 길을 건너 ‘휑한 공간’을 찾았다. 도드라지는 비시각적 랜드마크가 없는 그 공간에서 조금 더 앞으로 다가가면 장애물 하나가 있다. 그 장애물의 왼편은 경사로다. 좁은 경사로를 따라가면 곧 극장 매표소를 만난다. 매표소에 도착해 이름을 말하자, 직원은 접근성 담당자가 지하 2층에 위치한 극장까지 나의 이동을 도와준다고 했다.
사실 대학로극장 쿼드는 지난해 있었던 시설 접근성 워크숍 이후 물리적으로도 몇 가지 변화를 주었다. 1층 매표소에서 주 출입구까지, 그리고 지하 2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남자 화장실까지 선형 점자유도블럭을 설치했고, 1층 주 출입구와 엘리베이터 사이, 지하 2층 엘리베이터에서 인포메이션 사이 벽면에 점자 안내가 붙은 핸드레일을 설치했다. 점자유도블럭도 그렇지만, 한쪽 벽면에 핸드레일을 설치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데, 달라진 물리적 환경이 조금 놀라웠다.
건물의 출입구인 1층에서 극장이 있는 지하 2층까지 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이용할 수 있다. <2022 휘이잉>을 관람한 날 담당자는 나를 계단으로 안내했다. 엘리베이터 이용자가 많아 지하 2층까지 가는 것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 판단해 나름 고민한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쿼드의 계단은 나선형이라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조금 느리더라도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더 편하다. 계단을 다 내려오고 나서 다음번에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담당자는 정중히 사과했다. 내내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며 걱정하던 그의 태도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지하 2층 입구에 도착하니 내게 뜻밖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터치 투어였다. 공연 팀은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해 공연 전 무대와 소품을 만져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했다. 도로의 사각지대를 비춰주는 둥근 거울, 오래된 의자 그리고 이불로 만들어진 버스 등 소품이 아주 신선했다. 만져보지 않았다면 상상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터치 투어를 진행해준 박지선 드라마터그는 소품 외에도 공연 중에 스크린에 비치는 시각적인 것들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펼쳐질 공연이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터치 투어까지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객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객석에 앉아 나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내가 꿈꾸던 새로운 일상에 들어와 있었다. 지금의 내 모습 있는 그대로 이 세상 속에 자연스럽게 함께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좋았다. 객석에 앉아 공연을 기다리며 내가 그리던 새로운 일상이 현실이 된 그 순간을 느꼈다.
대학로극장 쿼드는 상상만 하던 일상이 현실이 된 소중한 공간이다. 물론 나에게만 일어난 특별한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장이 지속해서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 모두가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이는 나만의 기회가 아닌 더 많은 이들을 위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장벽에 막혀 새로운 일상을 꿈꿀 수 없던 이들을 위해 쿼드가 지금의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을 이어나갔으면 한다. 그 마음은 조금 서툴고,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그 마음이 계속 이어진다면 좋은 기회를 얻은 나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쿼드를 찾아올 것이고, 그들은 극장에서 모두가 함께하는 새로운 일상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극장, 새로운 일상이 시작될 대학로극장 쿼드의 모습이 더욱 기대된다.

장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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