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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무엇이든 가능한 세계

웹진 [비유] 56호 포스터

창문을 열면 아침저녁으로 꽤나 선선하다. 정오의 뜨거움을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서 가을을 느낀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입추를 지나왔다. 올해 여름은 젖은 공기 속을 걷다가 끝나버린 것 같다. 지구가 뜨거워져서 대기 중 수증기가 증가했다는 전문가의 말을 들으니 눅눅했던 마음이 꼭 그만큼 무거워졌다. 기후 위기라는 말이 아니면 이 여름을 설명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 보니 여름이라는 계절이 지닌 매력을 좀처럼 느끼기 어렵기도 했고.
이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설령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더라도 (물론 충격과 근심이야 따르겠지만) ‘세상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와 같은 질문을 건너뛴 채 그러한 상황에 적응할 것만 같다.

근래 한국소설에서 나타나는 감염의 주체들 역시 현실에 대한 반영이자 상흔과도 같은 결과물이다. 이들은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시간처럼 질병에 의한 감염을 겪은 인간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감염 존재에 대한 고전적인 표상이 그러하듯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좀비로 그려지는 경우도 다수다. 다만 전통적인 좀비 서사가 주로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최근의 좀비 서사는 세계를 파국으로 이끌지 않으며 감염된 존재들을 통해 이 세계를 다른 방향으로 조명해 보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소유정, 〈감염되지 않은 이데올로기〉 중

이제는 좀비의 등장이 작품의 장르를 바꾸지 않는다. 좀비를 상상하는 일은 소설 속 주인공의 꿈을 들여다보는 일만큼이나 흔해졌다. 과거의 소설 속 꿈이 주인공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했듯이, 혹은 그러한 꿈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독자를 위로하는 역할을 담당했듯이, 우리가 접하는 좀비 장르란 지금-여기의 선명한 은유로서 현실의 문제를 대면하고 돌파하려는 태도와 자연스레 연관된다. 좀비가 등장하는 순간, 소설 속 현실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아니면서도 현실의 맥락을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그리하여 더 진짜 같은 현실로서 독자의 눈앞에 그려진다. 어렵게 감당하던 문제들은 전혀 다른 가치를 가지게 되며, 그로 인해 문제 해결에 관한 현실적 제약, 즉 불가능성이 삭제된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비인간적인 행동으로 스스로 비인간이 되어 맞이하게 된 파멸이었으므로 이에 대항하는 두 모녀의 처리 방식은 다분히 인간적이고 또 이성적이라 이해된다. 아버지에 대한 연민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진득하게 남아 있는 건 딸을 위한 엄마의 사랑이다.
소유정, 〈감염되지 않은 이데올로기〉 중

소유정 문학평론가는 좀비 서사를 통해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내용의 단편 세 편을 소개한다. 송지현과 조예은의 작품에서는 어느 날 아버지가 좀비가 돼 나타나고, 은모든의 작품에서는 가정폭력과 친족 성폭력 가해자인 큰아버지에게 복수하면서 그의 가부장적 지위를 거세하는 수단으로 좀비가 이용된다. 사회적으로 용인된 ‘가부장’이라는 폭력을 휘두르며 여성이 누려 마땅한 모든 것을 집어삼키던 인물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 주인공 가족들이 겪는 갈등과 그것을 이겨내는 방식에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좀비가 나타난 상황을 기회 삼아 그들이 억압에서 벗어난다는 결말은 다르지 않다.
좀비가 된 ‘아버지’들은 가장의 자격을 잃는다. 기존 가부장의 행태를 아버지 아닌 좀비가 수행함으로써 저 ‘아버지’들의 권위는 바닥에 떨어지는 반면 그들이 지닌 폭력성은 여과 없이 폭로된다. 가족 구성원에게 가장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이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한때 이런 말은 과학과 기술 발전에 놀라움을 표할 때나 썼는데 지금은 인류가 자초한 전 지구적 재앙을 떠올리며 쓴다. 초등학생 시절 과학상상화를 그리는 시간이면 반 아이의 절반쯤은 도시 위에 커다란 유리돔을 씌우거나 사람들 얼굴에 마스크를 씌웠다. 어쩌면 우리는 최악의 방식으로 과거의 판타지를 실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좀비는 판타지가 아니다. 아니, 더 나쁜 상황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본다. 모든 최악이 가능해진 현재가 존재한다면, 어쩌면 모든 최선이 가능한 미래 또한 우리의 상상력을 통해 불러낼 수 있지 않을까.

김잔디_[비유]편집자 | 사진 웹진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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