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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독립출판 마켓에 셀러로 참여하며 파편화된 취향의 시대

2021년 연말에 첫 책을 냈다. 뜬금없이 책 홍보를 하려는 건 아니고, (그래도 한 권 사주시면 마다는 안 하겠습니다.) 덕분에 처음 해본 경험과 문화콘텐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볼까 한다.

독립출판 마켓인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소비자로 간 것은 1회 때부터였다. 벌써 10년이 넘은 이 행사가 처음 열릴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갔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원래 독립출판 마켓은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나는 장으로서 의미를 가지기도 하는데 2021년 11월에 열린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코로나19로 마켓 개최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방식의 행사를 선택했던 셈이다.

소비자가 곧 창작자인 출판 시장

지난해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정확히 100개의 독립출판물만을 엄선해 저울 위에 책을 올려 뒀다. 보통 이러한 행사는 각 출판사에서 부스를 열어 여러 출판물을 전시하고 작가나 출판사 사장이 독자를 맞이한다. 독자에게 해당 책의 기획 의도나 출간 과정 등을 직접 홍보하고 스티커나 배지 같은 굿즈를 나눠주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해 11월에 열린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는 그저 저울 위에 책을 한 권씩 올려두고 차례대로 입장한 독자가 이를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직접 책을 본 독자는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해 책을 장바구니에 넣고 지하 1층에 내려가 결제하는 방식이었다. 이 행사에 독자로 참여했던 나는 작가나 출판사 사장을 직접 만나지 않고 오로지 책만 볼 수 있는 이 방식이 다소 미래적이면서도 편리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한 달 후인 12월에 열린 또 다른 독립출판물 행사인 ‘퍼블리셔스테이블’에는 내 책을 가지고 출판사 부스에 난생처음 앉아 있게 됐는데, 두둥. 밀려드는 독자들의 사인 요청과 서로 책을 구매하겠다고 줄을 선 난리 통에 정신이 쏙 빠졌다고 쓰면 참 좋았으련만 신인 작가와 신생 출판사는 독자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온몸으로 확인했다. 당시 퍼블리셔스마켓은 성수에 위치한 디뮤지엄에서 개최됐다. 성수! 디뮤지엄! 독립출판 마켓! 온통 ‘힙스터’스러운 이름을 갖다 붙일 수 있는 행사였음에도 패션 매거진에서 막 튀어나온 구경꾼이 곧 내 책의 실구매자는 아니었다. 출판물을 구매한다는 것은 돈을 지출함과 동시에 자신의 시간과 공간도 내줘야 한다. 독자는 내가 시간을 들여 이것을 읽고 내 공간에 저 책을 두어도 괜찮은지를 가늠한다.
소비자가 아닌 판매자로 부스를 지키고 있다가 심심해지면 마켓에 참여한 200여 개의 다른 부스를 구경했다. 10년간 독립출판물 마켓을 구경해 온 사람으로서 느낀 것은 이러하다. 독립출판물에도 세대교체가 이뤄졌으며 이제 독립출판과 대형 출판사 간의 질적 경계가 흐릿해졌다는 것, 그리고 지금의 출판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곧 창작자이고 창작자가 소비자라는 사실이다. 책을 디자인한 후 인쇄하는 일련의 과정에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해졌다. 글쓰기, 디자인, 인쇄, 발행, 마케팅, 서점 입고 등을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시대다. 책 소비 인구는 줄었지만 출판사 등록은 쉬워졌고, 인쇄매체 소비자는 미래의 창작자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창작의 시대에 출판은 제2의 자아와 직업을 탐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2022년 커넥티드 북페어 현장
출판뿐만 아니라 영상 미디어 접근도 쉬워져

열성적인 출판사 사장님 덕분에 나는 연달아 독립출판 마켓에 또 나가야 했는데 여기서 ‘출판 소비자=창작자’라는 생각은 확신에 가까워졌다. 올해 2월에 열린 ‘커넥티드 북페어’는 홍대 무신사 테라스에서 개최됐다. ‘패션 피플’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열린 이 북페어에는 디제잉 부스까지 있어 디제이가 온종일 음악을 틀어줬다. 디제잉 뮤직과 물아일체가 돼 출판 부스에 멍하니 앉아 있으면 이제 책, 영화, 음악 등의 콘텐츠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한다. 직업의 특성을 살려 다른 부스의 작가를 인터뷰해 보니 이들은 모두 열렬한 독립출판물의 독자였고, 독립출판 서점에서 출판 수업을 듣고 직접 출판해 본 경험도 많았다. 그중 지역에서 상경한 이도 다수였다. 자기 출판물을 낸 후에는 지역에서 참여인을 모아 사진이나 글쓰기 수업을 하고 그들의 콘텐츠를 모아 책을 낸 사람도 있었다. 출판과 강연이 한 몸이 돼 수입원이 되는 것이다.
출판뿐 아니라 영상 미디어에 접근하는 것이 쉬워진 건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유튜버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한국 장단편 심사를 맡아 200편이 넘는 영화를 봤다. 누구나 출품작을 낼 수 있는 단편 예심을 보다 보면 미래 영화인의 영상이 여기 다 모여 있는 것 같다. 기획, 제작, 촬영에 전부 한두 명의 이름만으로 채워진 영화도 있고, 10대가 감독과 배우로 참여한 작품들도 있다. 촬영 장비를 빌리기도 쉬울뿐더러 아이디어만 기발하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작품도 얼마든지 개성 있는 영화가 된다. 누구나 작가나 감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발전적이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시장이 좁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청률 20%가 넘는 드라마, 1천만 명이 보는 영화, 100만 부가 팔리는 책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대중이라는 이름은 이제 모든 사람을 통칭하는 단어로 쓰이기가 어려워졌다. 취향에 의한 구독이 일상인 시대에서 사람들은 갈수록 까다롭게 지갑을 열고 직접 체험하거나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곳에만 시간을 투자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내가 다수에 의해 선택되고 대중적으로 잘 팔리는 작가가 아니라 하는 변명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김송희_《빅이슈코리아》 편집장,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 저자, 칼럼니스트 | 사진 김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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