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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4월호

‘동물화’의 폭력을 넘어

2022년 3월 5일 《한국일보》에 ‘어젯밤 당신이 먹은 치킨은 한 달 동안 못 잔 닭이다’라는 제목의 기획 기사가 실렸다. 단기간에 50g짜리 병아리를 유통 가능한 닭고기로 살찌우기 위해 병아리의 수면 시간을 빼앗고 사료를 끊임없이 먹이는 것이다. 육계 사육의 실태를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기사 제목의 구체성 탓에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그저 ‘고기’로 가공되려 사육되는 동물에 대해 인간은 가증스럽고 얄팍한 동정심조차 베풀기를 거부하는 듯하다. 동물의 살을 더 저렴하고 맛있게 씹고 뜯고 즐기기 위해 우리는 그들의 삶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만들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 어떤 동물도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먹을 것을 구하지 않는다.

웹진 [비유] 51호 포스터

인간화’를 폭력과 착취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로 생각하는 한, 특정한 존재나 집단은 여전히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도 되는 존재로 남겨질 수 있고 ‘동물화’의 폭력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벗어나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동물화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구분하고 ‘비인간’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해 온 차별적인 인식론과 폭력의 역사다.
김보경 <‘동물화’의 모욕을 넘어> 중

오월의봄 출판사에서 출간한 수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을 읽는 중 김보경 평론가의 글을 만났다. 두 작가의 이야기는 기후 위기, 채식, 동물권 등을 언급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들이 역설하는 지점은 비인간과 환경에 대한 무관심이 결국은 ‘정상’이라 불리는 범위 밖 이웃에 대한 타자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동물화’되는 방식―관절이 굽은 장애인을 원숭이로 부르거나 폭력에 노출된 약자를 매 맞는 개에 비유하는 일 등을 예로 들 수 있다―을 경유해 타자화되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비인간’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난사돼 ‘정상’ 바깥의 ‘소외된’ ‘약자’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사람을 “개 패듯” 때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쩌면 저런 비유를 통해 인간에 대한 폭력을 경고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저 폭력적 비유에 동원된 ‘개’에 대해 우리가 인간적인 태도를 취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다.

동물 돌봄의 본의는 단지 동물을 따뜻하게 대우하자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입장과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에 있다. 그렇게 ‘동물의 입장’을 더 많이 고려하고 상호 의존성을 느낄 수 있을 때에 우리는 ‘인간다운’ 대우에 호소하는 언어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동물화’의 폭력을 끝내는 방법을 배우고 상상하고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김보경 <‘동물화’의 모욕을 넘어> 중

김보경 평론가는 김지연의 소설 <공원에서>와 임솔아의 소설 <초파리 돌보기> 속 여성 화자에 주목한다. 자신이 당한 폭행의 무자비함을 강조하느라 스스로를 ‘개’에 비유한 <공원에서>의 화자는 사전을 펼쳐 ‘개’의 뜻과 용례를 찾기 시작한다. <초파리 돌보기>의 주인공 원영은 50대 무경력자 주부로 실험동에서 초파리를 양육하고 번식시키는 일을 한다. 소설에서 그가 보여주는 초파리에 대한 집착과 감정이입을 그저 우스꽝스러운 기행으로 넘기기 어려운 이유는 그러한 우스꽝스러움이, 비인간 동물에게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윤리적 거부를 환기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태도를 우리 사회가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일, 그렇게 우리 사회가 비인간 동물에 대한 폭력을 멈추는 일은, 인간에 대한 타자화와 혐오를 감소시키는 일과 다르지 않다. 김보경의 글은 비약 없이 그러한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김잔디_[비유]편집자 | 사진 제공 웹진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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