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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우리에게 필요한 미술관·박물관의 역할은 무엇일까 국공립 미술관·박물관 유료화 정책

서울시의 경우, 현행 조례에 따라 시립 미술관·박물관의 관람료는 무료가 원칙이다.
그런데 2021년 9월 시의회에서 유료화를 골자로 하는 개정 조례안이 발의됐다.
서울 시민, 청소년, 단체 관람객 할인이 가능한 조례안이다.
게다가 2021년 10월 경기문화재단이 2017년부터 무료로 개방한 미술관·박물관의 관람료 유료화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국내 주요 미술관·박물관을 보유한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유료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무료화 vs 유료화 논쟁

우리나라는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늘리기 위해 2002년 이후 20년 가까이 국공립 미술관·박물관 무료화 정책을 이어왔다. 그러나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상설 전시관의 관람료를 받기로 했고, 다시 2008년 들어 이명박 정부의 대선 공약으로 인해 국공립 미술관·박물관이 무료로 전환됐다. 그리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은 유료, 서울시와 경기문화재단 산하 미술관·박물관은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정책이 계속해서 바뀌는 만큼 국공립 미술관·박물관의 유료화에 대한 찬반 논의도 꾸준히 이어졌다. 무료화에 찬성하는 측은 문화에 접근할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국공립 미술관·박물관을 무료로 개방해야 하며, 관람료 징수 자체가 이중과세라고도 주장한다. 그리고 서울과 수도권이 아닌 지역의 경우 무료화로 더 많은 관람객을 유치함으로써 지역 경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든다. 여기까지 본다면 국공립 미술관·박물관의 무료화가 문화의 민주화 및 지역의 고른 성장에 기여하는 최선의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료화를 주장하는 측의 의견은 다르다. 우선 2008년 국공립미술관·박물관을 무료로 전환했을 당시, 유료로 운영한 2007년도와 비교해 관람객 수는 비슷한데도 사업비만 크게 늘었다는 통계를 든다. 문화 민주화에 유의미하게 기여하지 못하면서 기관의 재정 악화만 부추겼다는 것이다. 현장 실무자도 관람료 수익 없이 지자체의 예산만으로는 적절한 전시 콘텐츠를 기획하고 관람 환경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의견을 말했다. 게다가 전시 참여 작가에게 적정 보수를 지급하지 못해 작업 의지를 저하시킬 수도 있다.
또한 무료 콘텐츠를 경시하는 전반적인 관람 태도를 지적하거나, 외국인에게조차 무료로 기관을 개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도 말한다. 한편 사립 미술관·박물관에서는 국공립이 무료화를 유지하면 사립 역시 관람료를 받기 어려운 분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건강한 문화예술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관람료 수익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경 ⓒ남궁선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전경

현재와 미래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

어느 쪽의 의견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미술관과 박물관의 역할은 수집·전시·연구·보존·교육 다섯 가지다. 가치 있는 작품을 수집해 보존·연구하고 전시와 교육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며 문화 의식을 기르도록 돕는다. 미술관·박물관은 한 사회의 중요한 기둥인 문화예술을 지탱하는 기관이다. 그러니 모두가 접근하기 쉽게 개방해 문화예술의 민주화를 이루는 것도, 콘텐츠의 질적 향상과 문화예술인에게 적절한 보상을 지급해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도 모두 국공립 미술관·박물관의 역할이다.
이렇게 여러 가치가 상충할 때에는 상황에 따른 이익형량을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과거 우리나라는 대중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기에, 미술관·박물관 개수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지원금을 나눠주고 무료라는 매력으로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현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기관의 질적 향상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유료화가 이뤄져 재원이 확보될 경우 콘텐츠의 질적 향상에 더 높은 성과를 이룰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넉넉한 재원이 좋은 콘텐츠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기관이나 지역에 따라 다른 상황을 파악하고 늘어난 예산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또한 최고의 컬렉션과 기획력, 안정적 재원까지 갖췄다 하더라도 여전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술관·박물관의 공공성이다. 서울시는 개정 조례안을 발의하며 서울 시민과 만 19세 미만 청소년, 단체 관람객의 관람료 할인 조건을 붙였는데, 차등 적용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올수 있다. 비슷한 사례로 지난 201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25달러의 관람료를 책정하고 뉴욕 시민은 무료 입장이 가능하도록 결정하며 뉴욕 문화예술계에 격한 논쟁이 불거졌다. 뉴욕의 미술비평가들은 법적으로 거주 사실을 증명할 수 없는 이들을 차별하는 정책이며, 반이민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계급주의적이고 이민 배척주의적’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서울이 주 활동 지역이지만 주소지의 문제로 문화예술 접근에 차별을 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며, 대부분의 문화예술기관이 서울에 집중된 상황에서 또 다른 지역 격차를 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취약 계층 할인도 마찬가지다. 각종 지원사업에서 가난과 취약을 증명하는 과정은 가혹한 장벽을 만든다.
국공립 미술관·박물관의 무료화와 유료화는 단순한 재원 문제는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미술관·박물관이 차지하는 위치를 확인하고, 앞으로 지향하는 미래에 어떤 역할을 부여할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와 함께 기관의 상황과 이를 둘러싼 문화예술 생태계는 물론 결정 과정에서 배제될 수 있는 약자의 입장을 두루 살피는 섬세한 감수성이 필요하다.

김지연 미술비평가, 작가 |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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