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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연극 <분장실>과 뮤지컬 <광화문연가> 죽음을 상상하며 삶을 되새기다

연극 <분장실>과 뮤지컬 <광화문연가> 아무도 모르는 죽음을 상상한다. 살아생전 무대를 갈망하던 유령이 분장실을 떠나지 못하고, 한 남자는 죽음 직전 옛사랑의 기억을 더듬는다. 지난 삶에 남겨둔 아쉬움과 그리움을 떠올려 골똘히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연극 <분장실>에 출연한 서이숙(왼쪽), 배종옥 배우
죽어서도 죽지 못한 유령들 <분장실>| 8. 7~9. 12 | 대학로자유극장

무대 뒤 ‘분장실’은 하나의 삶을 다른 삶으로 이동시키는 징검다리다. 배우 한 사람이 자신을 다른 ‘자아’로 덧입히는 곳. 새어 들어오는 박수와 환호, 아스라이 스며드는 조명, 분주한 스태프들의 발걸음처럼 심장이 나대는 곳. 조연으로, 단역으로 그리고 프롬프터prompter,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배우에게 대사 등을 일러주는 사람로 변장하는 곳. 분장실은 ‘순번’을 기다리며, 무대에 서기를 갈망하는 대기 장소다. 그리고 실현되지 못한 꿈이 겹겹이 쌓인 그 분장실은 누군가에게 ‘집’이다. 영원히 그 ‘차례’를 맞이할 수 없는 ‘유령’들에게 말이다. 대학로자유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분장실>은 그 유령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왜 이들은 죽어서도 분장실을 떠나지 못하고 ‘살고’ 있는지, 살아 있었다면 정말로 해보고 싶은 배역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언제 그 ‘집’을 떠날 것인지.
일본 현대 연극의 거장 시미즈 쿠니오의 대표작 <분장실>은 1977년 초연 이후 일본에서 상연 횟수가 가장 많은 ‘국민 연극’이다. 여배우 네 명 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공연이 가능한 단출한 구성도 장점인데,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 <세 자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공연하는 어느 극장의 분장실이 무대라 연극 애호가로부터 사랑받는다. 등장인물에겐 이름이 없다. 네 사람의 배역은 그저 A·B·C·D로 구별된다. A는 독재정권 시절 대학에 다니며 연극을 했는데, 남학생들이 시위를 하다 끌려가는 바람에 줄곧 남자 역을 대신 맡았다. B는 <갈매기>의 ‘니나’ 역을 늘 선망해 죽은 후에도 틈만 나면 니나의 대사를 읊는다. C는 마흔이 넘어서도 어린 니나 역을 줄곧 맡는 톱 배우지만 요즘 자주 대사를 까먹는다. D는 C의 언더스터디돌발 상황 시 주연 배우 대신 투입되는 배우인데,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 돌아온 후 이제 젊은 자신에게 니나 역을 “돌려달라”며 C와 말다툼을 벌인다.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연극이라는 예술에 대해, 그리고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장실>은 가장 쉽고 보편적인 언어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무대’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분장실>은 그 인기만큼 일본에서도 다양하게 변주되는 작품이다. 배우들이 A·B·C·D 모든 배역을 돌아가며 연기하는 방식이 대표적인데, 이번 신경수 연출의 무대가 종료되면 오세혁 연출의 남자 배우 버전 <분장실>이 시작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분장실>은 배경이 연극 분장실이고, 등장인물이 각자의 연기론을 펼치기에 연극 전공자나 관계자에겐 반드시 봐야 할 무대로 손꼽힌다. 후반부에 이르면 이 무대의 가장 큰 미덕이 드러난다. 지지부진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생과 사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준다는 것. 죽어서도 죽지 못한, 여전히 분장실에서 대기 중인 유령들이 던지는 “살아야 해!”라는 대사는 살아서도 살아 있지 못한, 인생이라는 무대의 숱한 A·B·C·D에게 돌직구처럼 날아와 박힌다. 이 모순적 풍경과 함께 다소 ‘파격적’으로 각색된 엔딩은 분장실 유령들에게도, 그리고 관객들에게도 선물 같은 시간이 될 것이다. 서이숙·배종옥·정재은·우정원·이상아 등이 출연하고, 남자 배우 버전은 9월 19일부터 10월 31일까지 공연한다.

뮤지컬 <광화문연가> 김호영, 윤도현 페어 공연
기억을 걷는 시간 <광화문연가> | 7. 16~9. 5 |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삶과 죽음, 그 경계에선 자의 ‘시간’이란 어떤 형태일까. 사라질까 부서질까 소중한 내세의 기억을 열심히 줍고 있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하고, 후기를 들을 수 없는 그 ‘상태’로 들어가는 무대가 있으니, 이번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광화문연가>다. 익숙하고 아련한 제목은 고 이영훈 작곡가가 만든 가요에서 땄고, 작품은 이 작곡가의 음악들로 이뤄진 주크박스 뮤지 컬이다. <광화문연가>는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주단태’로 활약한 배우 엄기준이 180도 바뀐 모습으로 출연해 화제가 됐는데, 사악한 미소의 악당 주단태가 서정적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떠올리기만 해도 흥미롭다.
<광화문연가>는 죽음을 앞둔 남자, ‘명우’의 생각 속에서 펼쳐진다. 그것은 기억을 찾는 시간이고, 놀라운 시간 여행이다. 안내자는 ‘월하’. 그룹 인피니트의 멤버 성규를 비롯해 김호영·차지연이 동시 캐스팅된 월하 역은 순정남 명우와는 대조적 매력을 발산하며 극을 이끈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명우는 그 사랑과의 첫 만남 장소로, 그녀와 함께 붉은 노을을 보던 육교 위로, 그녀를 휩쓸고 간 시위 현장으로, 환상·기억· 현실의 교차점을 종횡무진 방황한다. 그때 그 시절의 어린 명우를 만나고, 꿈에라도 보고 싶었던 첫사랑을 만나고, 이별의 상처를 보듬어줬던 새 인연도 떠올린다. 명우는 무엇을 가장 그리워할까. 우리가 죽어서도 잊고 싶지 않은, 알 수 없는 ‘저 세계’에 가져가야 할 가장 소중하고 유일한 기억은 무엇일까.
‘기억이란 사랑보다’ ‘그녀의 웃음소리뿐’ ‘광화문 연가’ ‘옛사랑’ 등 명우의 시간 여행 내내 함께 흐르는, 시적 가사를 품은 아름다운 넘버뮤지컬 삽입곡는 이 뮤지컬을 아련한 흑백영화처럼 만들어준다. 2017년 탄생한 후 단숨에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광화문 연가>는 아이돌과 스타 배우의 티켓파워를 발휘할 뿐만 아니라 뮤지컬을 흥행시키는 가장 큰 힘은 ‘음악’에 있음을 증명한다. 고선웅 작가·이지나 연출·김성수 음악감독 등 공연계 유수한 제작진이 뭉친 만큼 작품의 완성도 또한 높다. 엄기준이 맡은 명우 역에는 윤도현과 강필석이 함께 캐스팅돼 번갈아 출연하며, 줄곧 남성이 연기한 월하 역에 차지연이 발탁된 것도 새로운 관전 포인트다. ‘젠더리스’ 배역의 새로운 장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박동미 《문화일보》 기자 | 사진 제공 나인스토리, 샘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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