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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2월호

2021년 봄을 맞이하는 마음 봄, 새롭게 피어나는 계절
나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고장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어린 시절, 눈이 잔뜩 쌓여서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는 겨울은 두세 번 경험한 게 고작이었다.
그렇다 보니 겨울이라 하더라도 눈이 가득 내린 풍경은 상상하기 어려웠고,
그보다는 동네에서 팔던 군고구마나 군밤, 따뜻한 전기장판이나 귤을 까먹는 시간 정도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보통이었다.
눈이 없던 겨울을 주로 보내다 보니, 눈이 녹고, 냇물이 흐르고, 개구리가 깨어나는 봄에 대한 연상도 조금은 덜 생생한 데가 있다. 일단 내가 살던 고장에서는 겨울에 아무것도 얼지 않는 게 보통이었으니, 봄이 와도 인상적으로 녹아내릴 만한 고드름은 딱히 없었다.
그보다 봄은 언제나 도둑처럼 왔는데, 어느 날에는 그저 더는 내복을 입지 않아도 되고, 전기장판을 켜는 게 다소 덥게 느껴졌으며, 다시 학교를 가야 할 즈음 등굣길에 핀 개나리가 비로소 봄을 알려준다고 느꼈다.
어쩌다 보니 2020년에 나는 다시 나의 ‘옛 고장’에 머물렀는데, 역시 봄은 도둑같이 찾아왔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한창 코로나 사태가 대두되던 즈음이라, 벚꽃놀이 같은 나들이를 극도로 자제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지면서 나들이다운 나들이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렇게 보면 작년에는 봄도, 여름도, 가을도 온 것인지도, 간 것인지도 모르게 그렇게 사라졌다는 느낌이 든다. 그저 겨울만이 길고 길어서, 늘 집 안에서 숨죽이고 있기 마련이었고, 으레 한 해의 설레는 시작, 반가운 계절의 시작 같은 말은 다소 사치였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올해도 그런 ‘세상의 분위기’는 이어질는지도 모르겠다. 봄이 오더라도, 봄이 온지도 모르게, 봄을 누리지도 못하도록, 그렇게 세상 일이라는 게 흘러갈지도 모른다. 마치 내가 살던 고장의 봄이라는 게 그와 비슷했듯이, 그렇게 어느 계절이 왔다가 슬그머니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째서인지 올해만큼은 조금 더 선명하게 지나가는 계절을 느끼고 싶고, 삶을 조금은 새로운 지평 위로 올려두고 싶고, 크고 작은 설레는 일들로 삶을 채워 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도 하다. 온통 고립과 격리, 경계와 거리두기로 채워졌던 지난해에 대한 반작용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봄을 스스로 짓다

아마 올해도 작년과 다르지 않게, 어느 정도의 거리를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시간이 있을 것이고, 하루하루 생활하며 내 몸에 혹여나 나쁜 바이러스가 닿지 않았는지 걱정하고, 나를 발산하는 시간을 갖기보다는 안으로 자제하는 시간을 가지려 애쓰는 나날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오는지 아닌지 모르게 오곤 했던 내 고장의 봄처럼, 그렇게 조금은 다른 표지들에 주목하면서 삶의 새로움을 찾아가는 일을 부지런히 해나가고 싶다. 나뭇가지 끝에 돋아난 작은 새싹이나, 조금 훈훈해진 바람이나, 하나둘 바뀌어가는 상의와 하의의 종류처럼 새로운 시작을 붙잡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올해 봄은 조금 더 특별했으면 싶다. 기나긴 겨울을 맺어가면서, 오랫동안 움츠렸던 마음을 펴고 그 누군가를 찾아 나서고 싶다. 여전히 작년처럼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일이 이어진다면, 좀 더 안전한 방식으로라도 새로운 만남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싶다. 온라인으로 독서 모임을 만들고 서로의 글을 나누고 읽어주는 시간을 갖고, 서로의 마음이 마냥 고립되지 않게 이어가는 방법들을 고민해 보고 싶다. 그렇게 마냥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스스로 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새해에는 일 년 내내, 봄이 가득한 느낌으로, 항상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항상 봄을 누리는 마음으로 지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본디 계절이란 원하든 원치 않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몰려왔다가 슬며시 빠져나가는 것이지만, 어째서인지 올해는 스스로 계절을 지어가며 살아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그런 계절을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많은 이가 잃어버린 봄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는 사람들이 저마다 각자의 봄을 지어나가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작년이 통째로 차가운 겨울과도 같았다면, 올해는 봄이 되고, 내년은 여름이 되어 그렇게 조금씩 삶도, 마음도, 세상도 회복한다면 좋을 듯하다. 어떤 시절에는 한 해에도 수십 번의 겨울이 몰아치는 때가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한 해에도 여러 번의 봄이 오고가듯이 그렇게 새롭게 피어남이 가득한 한 해도 있기 마련일 것이다. 우리 앞에 주어진 어떤 해는 틀림없이 그런 해가 될 것이다. 올해가 그럴지도 모르고 말이다. 올해를 그런 한 해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글 정지우_문화평론가,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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