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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동화, 세상을 넓히다



<쓰다> 32호 포스터

최근 가나 출신의 한 방송인이 곤욕을 치렀다. 블랙페이스로 흑인을 흉내 낸 학생들의 사진을 SNS에 게시하고 그것이 인종차별 행위임을 지적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어떤 사람들은 블랙페이스 자체를 인종차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동양인 비하로 구설에 휘말렸던 그가 인종차별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 반문했다. 그의 게시물이 학생들의 초상권을 침해하였다며 다른 시각에서 그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비난에 못 이겨 그는 결국 사과 글을 게시하였다.
내가 생각하는 혐오는 무색무취한 무엇이다. 외부인의 지적이나 비극적인 사고가 없는 한, 우리는 혐오의 악취도 색깔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공기처럼 혐오를 들이쉬고 내쉴 수 있는 장소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냥 살던 대로 사는 게 우리에게 편하다고 해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여성에 대한 차별, 특정한 문화나 취향에 대한 차별이 무작정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몰랐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같은 변명도 혐오를 혐오 아닌 것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침묵과 변명은 항상 편하고 안전하다. 그래서 굳이 정의를 이야기하겠다고 나서는 목소리가 귀한 것이다.
혐오를 부수면 세상은 넓어진다. 이번 호를 편집하며 느낀 것이다. 여성혐오를 문제 삼고, 팬덤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재고하며, 동성 간의 사랑을 인정하려는 목소리가 많아질수록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타자도 다양해진다.

어렸을 땐, 시도 때도 없이 프러포즈를 했다. 소꿉놀이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말이 막 나왔다. 하지만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푸른이조차도 그랬다. 부모님들은 축가도 불러주고 주례도 서주겠다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여 내 속을 뒤집어놓았다. ‘둘 중 하나가 남자였으면 결혼시키는 건데……’라고. 난 어른들이 불가능한 일을 말하듯 말끝을 흐리는 게 싫다.
조은비, <푸른 계절> 부분

<푸른 계절>은 반전 없는 평범한 사랑 얘기다. 그러나 남녀 사이에 있을 법한 흔한 연애 감정을 동성 간의 일로 바꾸 어놓음으로써 이 이야기는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두 소녀의 사랑이 정말, 그렇게 이상한가? 기존의 연애 서사를 의도적으로 답습하는 동화가 여성과 여성의 사랑을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이처럼 낯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동성에게 사랑을 느끼는 어린이들이 자신을 혐오하거나 교정하려 하지 않고 자기 욕망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볼 만한 이야기가 훨씬 많아져도 좋을 것이다.

“네 말대로 아무도 몰라줄 수도 있지. 어쩌면 비아 누나들조차도 말이야. 하지만, 난 이 약속을 꼭 지키고 싶어. 팬클럽 이름을 걸고 한 약속을 안 지킬 순 없잖아. 약속을 안 지킨 순간부터 비아에 대한 내 진심이 없어지는 거나 다름없다고.”
전여울, <누가 비아를 응원하나> 부분

연예인에 대한 애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사람을 ‘빠순이’라고 비하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연예인 ‘덕질’이 하나의 취미 생활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이제 우리는 ‘덕질’이나 ‘오타쿠’라는 단어를 남의 취향을 비하하는 데 사용하기보다, 몰두할 만한 취미를 가진 이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럼에도 으레 문화와 예술에 A급, B급 따위의 꼬리표를 붙이고, B급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전여울 작가는 주류 아이돌이 되지 못한 ‘비아’라는 그룹을 함께 응원하고 지지하는 과정을, 서로를 이해해 나가는 두 학생의 ‘덕질’을 통해 그린다. 이 동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고 용기 있다. 타자를 존중하는 한에서 모든 취향이란 숨길 일도 부끄러울 일도 아니라는 것.

남성은 독서를 통해 외부 세계로 나갈 자극을 받지만, 여성은 독서를 통해 내면적인 탈출구를 얻는다.1 “여자는 언제나 욕망에 이끌리지만 행동규범에 의해 구속받”2기 때문이다. 하지만 SF는 현실의 문법을 전복할 수 있는 장르이다.
한윤정, <여성서사의 장으로써 SF가 주는 자유> 부분

아동 청소년 문학이 세계의 밝은 면만을 늘 조명한다면 소수자를 억압하는 ‘행동규범’은 다음 세대로 반성 없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 다채로운 목소리를 들려준다면, 우리의 ‘현재’가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혐오와 고정관념을 아이들의 ‘미래’는 거뜬히 이겨낼지도 모른다.

  1. 리타 펠스키, <독자>, 《페미니즘 이후의 문학》, 도서출판여이연, 2010
  2. 각주 1번의 책, 50쪽
글 김잔디_웹진 [비유] 편집자
사진 제공 웹진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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