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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책 《화가들의 정원》과 《서울을 걷다》어느 정원과 길목으로의 초대
“라떼는 말이야, 마스크 없이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도 가고 그랬어.”
인류가 듣도 보도 못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함께 살아가게 된 지 벌써 수개월이 지났다. 마스크 없이는 집 밖 어느 곳도 마음 편히 나갈 수 없는 시대. 그냥 이대로 마스크와 영영 이별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라떼는…’이라며 자유롭게 해외여행 다니던 과거를 말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갈 수 없는 정원으로의 초대 《화가들의 정원》 | 재키 베넷 지음, 김다은 옮김 | 샘터

《화가들의 정원》 저자는 답답한 실내에 갇힌 우리를 화사한 정원으로 초대한다.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세잔, 살바도르 달리, 프리다 칼로 등 전 세계 유명 화가들이 소유했던 정원 속에서 그려낸 계절의 얼굴을 다양한 해설과 함께 보여준다. 책에 소개된 화가들의 정원, 텃밭, 나무숲 등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 누구나 둘러볼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라 더욱 동경을 품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물에 비친 하늘, 연꽃 등을 담은 <수련> 연작을 남긴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은 특히 인상 깊다. 프랑스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지베르니 정원은 모네의 뮤즈와도 같은 대상이었다.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100여 점의 작품은 지베르니 수경 정원에서 탄생했다. 모네는 작품을 위해 아프리카 수련, 열대 수련, 멕시코 수련 등 다양한 수련 종류를 정원의 연못에 심었다. 또 작품에 담을 꽃을 구해 집 바로 앞 정원인 르클로노르망에 심었고, 이 정원은 계절마다 달라지는 색의 향연을 이루며 모네를 색채의 대가로 만들었다.
1880년대부터 1920년대 스칸디나비아 예술가들의 만남의 장소로 통한 덴마크 바닷가 마을 스카겐에서 탄생한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 든다. P.S. 크뢰이어의 <만세, 만세, 만세!>는 푸른 정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축배를 들고 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인데, 요즘 같은 시절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라 묘한 해방감마저 자아낸다. 스카겐에 머무른 화가들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마을의 풍경과 노동하는 마을 주민들을 그렸다. 높은 하늘, 모래언덕, 한적한 해변, 아름다운 숲속의 꽃밭 등은 화가들에게 끝없는 영감을 주는 곳이었다. 화가 미카엘 앙케는 “이곳 스카겐에 이르러 손길이 닿지 않은 고유한 세상을 거닐어본다”는 말을 남겼다.
초현실주의와 팝아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살바도르 달리도 스페인 포르트리가트의 집을 사들여 예술혼의 아지트로 삼았다. 달리는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포르트리가트 지역을 이해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달리는 그의 아버지가 태어난 이 지역에 1930년 작은 집을 샀다. 여러 차례에 나누어 1헥타르 이상 땅을 사들인 달리는 정원에 수영장과 작은 신전까지 설계했다. 이후 아내 갈라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1969년 푸볼 지역의 중세 성을 매입하기에 이른다. 달리가 어떤 땅과 건축물을 사들이고,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그림은 물론 삶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면 《서울을 걷다》 | 정연석 지음 | 재승출판

서울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조차 자신 삶의 반경에서 먼 지역이라면 같은 서울 테두리에 있더라도 다른 도시처럼 낯설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의 법정 동은 무려 467개. 마음먹고 나서지 않는다면 서울에서 수십 년을 살았더라도 미처 가보지 않은 곳이 많으리라.
그래서 저자는 필통과 종이를 들고 나섰다. 은평구 대조동, 종로구 혜화동, 서대문구 연희동, 중구 정동과 을지로, 성동구 성수동, 강남구 논현동, 영등포구 문래동 등. 이름만 들어도 왠지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사연이 켜켜이 자리 잡고 있을 것만 같은 동네를 골라 갔다. 책은 저자의 드로잉을 통해 글 반, 그림 반으로 채웠다.
첫 장은 외지에서 서울로 올라온 저자가 처음 살게 된 동네인 대조동의 대장간, 조용한 동네와 달리 불야성을 이루던 불광역 인근 등에 대해 그렸다. 서울에서 가장 많은 동으로 쪼개져 있다는 종로구에서는 조선 시대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이 있었던 명륜동에서부터 사직동 재개발 이슈까지 다양한 면을 건드린 점도 인상 깊다. 한때는 세상의 모든 컴퓨터가 모여 있는 것만 같았던 용산구 한강로동 전자상가, 옷 장사로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뤘던 동대문운동장 앞(중구 을지로 6, 7가), ‘망리단길’의 시작이 된 마포구 망원동의 풍경도 정겹다.
서울의 오래된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구도심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서울의 얼굴은 천편일률적인 아파트가 아니면 고압적인 고층 빌딩일 가능성이 높다. 굳이 저자가 다닌 서울 골목골목이 아니더라도, 당장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 동네 주변을 애정 어린 눈으로 한번 더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글 최고야_《동아일보》 기자
사진 제공 샘터, 재승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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