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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과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아름답고도 잔인한 존재, 인간
누군가를 죽는 날까지 사랑하거나, 누군가를 죽을 때까지 착취하거나.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과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이 보여주는 인간의 상반된 모습이다. ‘어햎’을 본 뒤엔 풋풋하고 또 달콤했던 옛사랑이 떠오르다가도, ‘엘레나’가 끝나고 나면 내 안에도 조그만 악들이 도사리고 있진 않을까 돌이켜보게 된다. 과연 인간의 민낯은 어느 쪽을 더 닮았을까.

※이번 호에 실린 공연·행사 등의 일정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변경 또는 취소될 수 있습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전미도(오른쪽)는 ‘클레어 자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능숙하게 연기한다.

다시 사랑하고 싶어진다, 로봇들 덕분에 <어쩌면 해피엔딩> | 6. 30~9. 13 | 예스24스테이지 1관

인간의 사랑을 어깨너머로 배운 로봇들이 인간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사랑을 한다. 그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에 그간 휴지 상태였던 연애 세포가 다시 깨어난다. 특히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활약한 뒤 무대로 복귀한 배우 전미도의 연기가 정말 사랑스럽다.
멀지 않은 미래 서울의 한 아파트에 인간은 없고 기계들만 가득하다.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쓸모없어 버려진 로봇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곳 주민 ‘클레어’가 충전기를 빌리러 ‘올리버’를 찾으며 인연이 시작된다.
올리버는 옛 주인 ‘제임스’를 따라 레코드 플레이어, 재즈 잡지 등 아날로그를 좋아하고 그가 언젠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주인 바라기’다. 반면 클레어는 옛 주인들의 이별을 목도하고 상처받아 관계 맺음에 극히 냉소적이다. 서로 정반대 타입이지만 인간도 그렇듯 서로가 서로에게 시나브로 스며든다. 단둘이 제주도 여행을 떠나며 감정은 더욱 깊어진다.
달콤한 나날도 잠시. 이내 두 로봇은 클레어의 수명이 다해 간다는 잔인한 현실을 맞닥뜨린다. 사랑이 언제까지고 영원하기란 너무나도 힘든 일, 다시 홀로 남겨지는 게 두려운 남녀는 기억을 지워 지금까지의 행복을 없었던 셈 치기로 한다.
다시 충전기를 빌리는 장면이 펼쳐지지만 처음과는 조금 다르다. 둘은 정말로 기억을 지웠을까. 클레어가 어떤 것도 덧붙이지 않고 올리버에게 묻는다. “(우리) 괜찮을까요?” 올리버는 애틋한 눈빛과 함께 클레어에게 답한다. “어쩌면요….” 무대 위층 피아노와 바이올린·비올라·첼로 선율이 이들을 축복한다. 그 순간 관객들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배우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소리가 극을 이끈다.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로봇부터 사랑에 설레고 이별에 괴로워하는 로봇들까지 모두 담아내야 한다. 전미도는 ‘클레어 자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이를 능숙하게 해낸다. 이 작품으로 2018년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코로나19 불황 속에서도 그가 출연하는 회차는 연일 매진이다. 강혜인·한재아 등 다른 클레어들이 출연하는 회차도 파급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올리버는 정문성·전성우·양희준이 연기한다.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인물들은 ‘어떤 삶이 옳은지’ 논쟁하며 극한 대립한다.

도덕과 윤리는 절대적인 것일까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 6. 16~9. 6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상연시간 110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왈츠가 흐르는 첫 장면부터 탐미주의적 결말까지 어느 하나 버릴 데 없다. 충격적 내용 전개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극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사로잡힌 관객들의 눈과 귀는 내내 무대를 향해 있다. 이보다 더 매혹적인 작품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수학 교사 엘레나 세르게예브나의 생일날 제자 네 명이 그녀의 집을 찾는다. 랄랴와 빠샤, 비쨔, 그리고 발로쟈는 와인과 선물, 꽃다발을 건네며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의 생일을 축하한다. 엘레나는 기뻐하지만 학생들 속내는 다르다. 그녀를 꾀어내 수학시험 답안지가 보관된 학교 금고 열쇠를 받아내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인사치레도 잠시, 이들은 본론으로 돌입한다. 교육자 엘레나는 열쇠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거부한다.
그녀를 굴복시키기 위해 학생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아픈 노모를 위한 의료진 제공을 미끼로 내거는가 하면, 랄랴 등은 절박한 상황을 드러내며 동정심도 유발한다. 몸을 수색하며 수치심을 주거나, 집 안을 어지르는 등 행패도 서슴지 않는다. 엘레나는 계속 저항하지만 점차 정신이 붕괴돼 간다.
그 과정에서 양쪽은 ‘어떤 삶이 옳은지’ 치열하게 논쟁한다. 엘레나는 도덕과 윤리를 역설하지만 학생들은 “공허하다”고 비판한다. “도덕은 극히 인간적이고 상대적”이라며 “잘 살기 위해선 비열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상을 깨고 이들의 논담은 백중세를 이룬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소포클레스, 레프 톨스토이, 헤르만 헤세 저작들이 각자의 논리를 위해 동원된다.
극은 흔해빠진 권선징악 도식을 거부한다. 엄존하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며 가치판단을 관객의 몫으로 돌린다. 무대를 사이에 두고 객석이 양쪽에서 마주 보게 한 배치도 이를 거든다. 특히 선연한 핏빛 조명 아래 랄랴가 울부짖는 마지막 대목은 미학적으로도 탁월하다. 전작 뮤지컬 <데미안>에서도 호연한 배우 김주연은 여기서 더욱 깊어진 감정을 꺼내 든다.
‘욕망의 화신’ 발로쟈도 자못 매력적이다. 내적 갈등을 겪는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의 목적을 향해 일관되게 나아간다. 관객들은 그런 발로쟈를 욕하면서도 그에게 빠져든다.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를 연상시킨다. 배우 이아진이 랄랴를 나눠 맡는다. 엘레나는 우미화·정재은·양소민이, 발로쟈는 박정복·김도빈·강승호가 연기한다.

글 서정원_《매일경제》 기자
사진 제공 CJ ENM, 아이엠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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