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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8월호

<입법극장> 5화 ‘다수결은 옳고 곧 민주주의다?’ 작은 것들을 위한 민주주의

<입법극장> 1부 공연 장면(왼쪽)과 공연에 참여한 관객들(오른쪽)(사진 제공 일민미술관)

일민미술관과 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하고 신문박물관이 협력한 전시 <새일꾼 1948-2020: 여러분의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내시오>(이하 <새일꾼>)는 시대의 요구를 읽어내는 텍스트로 관객에게 민주주의와의 대화를 제안한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입법극장>은 다양한 가족의 형태, 환경문제, 동성혼의 법제화 등 첨예한 사회문제를 비롯해 자본주의에서 예술가의 삶 등 시의성 있는 주제로 민주주의 대안을 이야기한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입법극장>은 총 5회의 프로그램 중 마지막으로 진행된 5화 ‘다수결은 옳고 곧 민주주의다?’이다. 1부는 연극, 2부는 북토크로 이루어졌다.

1부는 헨리크 입센의 <민중의 적> 중 4막을 다루었다. 1882년에 발표되고 2년 뒤에 극으로 무대에 오른 <민중의 적>은 당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10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이 작품은 날카롭게 현실 사회를 반영한다. 이번 무대에서는 극본에 충실하되, 우리 사회가 겪어온 현재를 반영해 ‘다수결 원칙’의 문제를 드러냈다.
무대로 사용된 천경우 작가의 작품들(설치 <Listener’s Chair>, 싱글채널 비디오 <Uneven: Mazurka>)은 1989년 폴란드 원탁회의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폴란드 원탁회의는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나아가던 시기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그해 6월, 폴란드에 첫 민주주의 선거가 도입됐다. 또 다르게 주목할 만한 점은 극 중 배우들의 위치였다. 배우들은 관객과 경계를 두지 않고 같은 공간에 앉아 있다가, 극이 시작되자 연기를 시작했다. 누가 배우인지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 극의 설정인 연설장에 와 있는 듯한 몰입을 이끌어냈다.

2부는 애스트라 테일러의 책 《민주주의는 없다》를 주제로 안규철 작가·노명우 교수·김도희 변호사와 함께 민주주의와 다수결에 관한 심도 있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안규철 작가는 여러 작품을 통해 권력과 자유의 문제를 탐구해 왔다. 연대와 자유가 부딪히는 순간과 누가 ‘우리’임을 규정하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해 사회 구성원들의 공통 기반을 탐구하는 작업까지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노명우 교수는 시대의 흐름 안에서 가치관 충돌이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심판관적인 태도를 벗어나 당연하게 여겨져 온 것들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전달했다. 이어서 김도희 변호사는 법적인 주체가 인간이 아닌 동물, 자연환경으로 확대되고 있는 해외 사례와 현재 국내에서도 진행 중인 유의미한 소송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국가권력에 대항해 자유로 나아갔던 과정이었듯이 예술도 시대와 맞물려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연대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변화한 시대에 맞춰 예술 또한 새로운 흐름으로 이어진다. 민주주의가 소외되고 숨겨져 있던 주체들의 담론을 돌아보길 요구받는 현재 상황은 예술이, 예술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듯, 민주주의(Democracy)는 그리스어로 민중(Demos)과 통치(Kratos)를 의미하는 두 단어가 합쳐진 말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주체가 돼, 충돌하는 사회문제를 어느 한쪽이 희생하지 않도록 아주 느리게 풀어나가야 한다. 애스트라 테일러는 《민주주의는 없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민주주의가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하지만 자치는 그런 거다. 이상이자 원칙이며, 항상 멀리 있고 자꾸만 뒤로 물러나는 지평선에 걸려 있는 것. 우리가 계속 손을 뻗지만 잡히지 않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약속은 권력자가 만들고 깨는 것이 아니다. 보통사람들의 부단한 각성, 창의, 그리고 투쟁을 통해서만 지켜질 수 있는 약속이다.

김도희 변호사는 돌고래를 위한 변호를 준비한다고 한다. 바다에 사는 돌고래는 70년 넘게 살 수 있지만, 포획돼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의 평균 수명은 12년이고, 수족관에서 태어난 돌고래는 평균수명 4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한다. 거제 씨월드에선 돈만 내면 돌고래를 놀이기구처럼 탈 수 있다. 인간의 잠깐 즐거움을 위해서 돌고래를 혹사시키는 것이 과연 마땅한 일일까? 민주주의에서 ‘우리’는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다양한 소수자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자연이고 동물이 될 수도 있다. 개인의 행복에서 그치지 않고, 나를 둘러싼 것들의 행복을 상상할 수 있는 곳에서 다른 민주주의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 믿는다.

글 박상미_주로 예술기획, 예술행정, 예술에 대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올해는 현대연희극 공연 기획과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축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papermoonfly@naver.com
※본 원고는 지면 관계상 편집되었습니다. 원문은 웹진 [연극in]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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