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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조영남의 사기 혐의는 왜 무죄인가 이것은 예술의 몫
조수를 사용해 완성한 그림을 팔았다. 검찰은 조수가 아닌 ‘대작 화가’의 그림에 덧칠과 서명만 해 자신의 것으로 속여 팔았다고 주장하며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된 가수 조영남 씨 사건 이야기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예술 작품의 가치 평가는 전문가의 영역이며, 위작이나 저작권 다툼이 없는 한 사법 개입은 자제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미술사가 전하현 씨는 “대법관의 현명한 판결대로 ‘예술의 가치에 대한 판단은 법적 영역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절대로 법적 판단 영역이 되어선 안 되는 예술을 일부 예술인들이 스스로 훼손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영남의 1·2심 판결문과 공개 변론을 지켜본 필자 역시 그 의견에 공감한다.
그러나 판결 후에도 여전히 의견은 분분하다. 일부 평론가 조차 사건의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우려된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7월 10일 SBS에서 방영한 <궁금한 이야기 Y>도 조영남이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자기주장을 합리화한다’며 비판적으로 다뤘다.
이 사건을 정리한 기사와 글은 이미 많으니, 판결에 대한 미술 기자로서의 의견을 질문과 답변 형태로 정리해 봤다.

비전문가인 조영남이 그림을 의뢰한 사람은 전문가이니 조수가 아닌 대작 화가다?

검찰이 주장한 논지였으나 비전문가와 전문가의 구분이 잘못됐다. 검찰은 조수 송모 씨가 전문 교육을 받고 개인전도 수차례 열었기 때문에 전문가라고 봤다. 이에 반해 조영남은 본업이 가수인 아마추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학벌이나 전시 횟수로 예술가를 전문가와 비전문가로 나누진 않는다. 바스키아·백남준 등 미대를 나오지 않은 예술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작품 자체의 조형 언어와 철학이다.

남이 그린 그림에 약간의 덧칠과 사인만 하면 내 그림이 되나?

설치 작품은 덧칠조차 하지 않아도 의뢰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가 자신의 철학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기술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조영남은 자신이 기존에 그린 그림 등을 레퍼런스로 구체적 지시를 조수에게 전달했다. 2심 판결에서 변호인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입증했다. 조영남이 과거 혼자 그린 작품을 재판부에 보여줬고, 조수도 “자신이 아이디어를 내거나 적극적으로 창작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구매한 사람이 속았다고 생각하면 사기 아닌가?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이기택 대법관은 검사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 사건은 피해자 고발로 수사가 개시된 것은 아니었지요?” 검사는 “그렇다”고 답했다. 몇 차례 질문과 답변이 오가고 또 질문. “구매자가 친작이라 믿었다면 계약을 취소하거나 민사적으로, 계약 내용을 보고 검토할 성질의 문제 아닌가?” 즉 구매자가 친작이 아니어서 ‘속았다’고 생각한다면 환불하거나 민사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게다가 재판 과정에서 구매자 모두가 문제를 제기한 것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조수를 사용했더라도 조영남의 작품이라 생각한다”고 증언한 구매자도 있었다. 여기에 2심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구매자들의 의견이 도출되는 과정에 유도 질문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미술계의 더러운 관행을 뿌리 뽑지 못하고 오히려 법으로 인정해 준 꼴이다?

조수 사용이 ‘더러운 관행’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필자가 좋아하고 지켜보는 작가들도 대다수는 조수 없이 그림을 그리지만, 추구하는 조형 언어나 철학에 따라 얼마든지 조수를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수를 사용하고 말고의 문제는 미술계에서 비평 등으로 논할 일이지, 사법부에 가서 해결해 달라고 할 것은 아니다.
역시 공개변론에서 이기택 대법관은 “조수를 사용했느냐 여부에 따라 형사처벌이 된다고 하면 어디까지 적법한 조수 사용이고, 어느 선을 넘으면 위법한 대작 화가를 사용한 것인지 구별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느냐”고 검찰에 물었다. 여기에 검사의 답변은 이랬다.
“대법원에서 금일 구별 기준을 판단해 주시리라고 믿는다. 조수의 개념은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을 주는 정도를 의미한다. 이 사건처럼 아예 전업 화가에게 맡겨 완성된 상태에서 액자까지 끼워 받은 다음에 덧칠만 하고 자기 이름을 서명해서 판매한 것은 문제다.”
검사의 취지대로라면 예술가들에게 어디까지 조수를 사용하라고 법으로 정해줄 뻔했다. 작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덴마크 작가 아스거 욘(1914~1973) 전시에는 액자까지 끼워진 초상화 위에 덧칠한 작품도 나왔다. 예술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으면서 통제하려는 행태가 아찔했다. 다행히 현명한 법원은 이 판단이 사법이 아닌 예술의 영역이라 결론지었다.

이번 재판을 취재하며 예술에 관한 인식의 간극이 판단 주체마다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전공을 했건 하지 않았건 말이다. 다만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는 작가의 사상이나 철학,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조형 언어로 활성화돼 나오는지 냉혹하게 평가받아야만 할 것이다. 그 일은 작가와 기획자, 비평가, 미술 시장이 해야 하는 것이지 법정에서 가릴 일은 아니라는 것만 확실히 해두고 싶다.

글 김민_《동아일보》 기자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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