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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월호

신수원 감독의 <마돈나>끝끝내 맞잡은 슬픔의 연대
끝내 생채기를 내는 예술이 있다. 잔인하고 무례하게 어두운 세상을 보여준다.
상처 난 살갗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은 나쁜 감성이 그 속에 담긴다.
나빠서가 아니라 상처 받아서 거칠어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나쁜 정서를 담은 예술은 그런 소수자의 정서와 이야기를 품어낸다.
하지만 그들을 향한 섣부른 동정을 감히 허락하지는 않는다. 건조하고 거친 표현과 까끌거리는 감성이 아프지만,
정서적 학대가 아닌 공감을 통해 얻는 카타르시스는 순진한 감동과 다른 감정을 만들어낸다.

잔인한 슬픔에 빠지다

신수원 감독의 2012년 작 <명왕성>은 발견과 같은 영화였다. 있을 법하지 않게 연출된 상황을 통해 개선될 여지없이 되풀이되는 입시 지옥의 처참한 속내를 고스란히 현실로 소환한다. 신수원 감독은 비밀 스터디 그룹과 사제폭탄, 살인, 납치라는 다소 극단적 상황 속에 덜 자란 아이들을 던져놓고 끝내 파국에 이르게 만든다. 하지만 아이들의 슬픔과 그들에 대한 동정의 정서를 끝까지 놓지 않는다. 시니컬해 보이는 날 선 감성 속에 약자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숨어 있는 셈이다.
감독의 2014년 작 <마돈나>에서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은 미성년자들의 세상보다 더 잔혹한 성인들의 세상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훨씬 더 자극적이고 공격적이다. 외면하지 말고 눈 돌리지 말고 끝끝내 들여다보라고 머리채를 잡아끄는 것 같은 <마돈나>는 자극적이고 불편한 장면에도 불구하고 결국 서늘하고 숙연한 슬픔에 빠지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감성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끝내 눈 돌리지 못하고 보고 만 불편한 이야기는 지금, 현재, 여기, 우리 곁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VIP병동의 간호조무사 해림(서영희)과 의사 혁규(변요한)는 병원에서 심장 이식이 필요한 환자 철오를 돌본다. 철오의 아들 상우(김영민)는 아버지의 재산을 얻기 위해 억지로 아버지의 생명을 연장하려고 애쓴다. 어느 날, 미나(권소현)가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실려 오면서 인물들의 관계에도 균열이 생긴다. 미나는 연고가 없는 만삭의 임신부다. 상우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해림에게 미나의 가족을 찾아 장기 기증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제안한다.
미나, 해림 혹은 약자들의 대립각으로서 재벌 2세인 상우는 힘과 돈과 권력으로 사람의 목숨을 흥정할 수 있는 강자로 표현된다. 병원이라는 폐쇄적인 작은 사회 속에서 보호받고 지켜내야 할 사람이, 힘없고 약한 자가 아니라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회적 함의와 암묵적 동의는 버젓이 존재한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사람들의 태도는 미나를 통해 투명한 유리처럼 고스란히 투영된다.
미나의 과거를 쫓으면서 해림은 그녀를 향한 동정심과 심리적 연대, 그리고 결코 자신의 삶과 다르지 않은 한 여인의 슬픔을 마주한다. 약자들의 연대의식은 미약하지만 희망의 지푸라기 한 줌과 같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들의 삶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들이 모질게 겪어온 운명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잔인한 현실은 늪처럼 그들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마돈나, 어쩌면 우리의 이름

가장 낮은 곳에서 겨우겨우 살아온 미나의 과거를 통해 관객들이 만나는 것은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거대 사회가 힘없는 자들을 대하고 바라보는 시선과 편견이다. 그래서 ‘미나’ 혹은 ‘마돈나’는 다른 꿈을 꿀 여유도, 벗어날 자신도 없이 진창에 그저 주저앉아버릴 수밖에 없는 약자들을 대변하는 이름이 된다. <마돈나>는 세상에는 결코 노력하지 않아서도 비겁해서도 아닌, 그럴 수밖에 없는 일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법이란 사실을 강변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들여다본다.
앞서 <명왕성>을 통해 학교 내 최상위층의 계급 구조를 풍자적으로 보여준 신수원 감독은 <마돈나>의 VIP병동을 통해 가지지 못한 자는 철저하게 짓밟히고야 마는 냉혹한 현실을 은유한다. 마치 희망 자체가 없는 것 같은 현실에서 신수원 감독은 소소한 판타지를 통해 무너진 사회 속에서도 작은 연대를 통해 희망을 말할 수 있다고 속살거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나를 향한 해림의 동정심은 강한 연대가 돼 변화로 나아가진 못한다.
미나가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많이 한 말, 버릇처럼 입에 달고 산 말은 “죄송하다”는 사과였다. 사회적 폭력에 시달리고 늘 구박받지만 정작 미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늘 짓밟히지만 누구에게도 사과받지 못하는 약자의 삶, 그래서 늘 최선을 다했다는 미나의 말은 슬픔의 칼날이 돼 우리들 마음에 깊숙이 박힌다. 영화 <마돈나>는 꾸역꾸역 그렇게 슬픔의 구멍을 들여다보고, 슬픔으로라도 연대하라고 한다. 끝끝내 그렇게라도 맞잡아야 한다고….

<마돈나>(2014)
감독     신수원
출연    서영희(해림 역), 권소현(미나 역), 김영민(상우 역), 변요한(혁규 역), 고서희(현주 역)
글 최재훈_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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