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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월호

이경자의 서울 반세기, 공간을 더듬다 19“너 자신을 알라”고는 하지 마세요

한 점집 앞에 걸려 있는 흰 깃발과 붉은 깃발

요즘도 길을 가다가 대나무 가지에 흰색 천과 붉은색 천이 나란히 매달려 하늘 쪽으로 치솟게 세워둔 걸 보면 그냥 지나치게 되지 않는다. 대나무 깃대를 따라 아래로 눈길을 내리면 깃발이 말하는 뜻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소박하거나 더러는 가난한 느낌의 집 기둥에서 커다란 문패를 읽게 되니까. ‘방금 신 내린 처녀무당집’ ‘30년 지리산 도사’ ‘작두 장군’ ‘계룡산 산신’ ‘천수보살’ ‘여신도사’ ‘천신엄지보살’ ‘백호동자’ 등등. 절 표시를 앞세워 암자란 느낌을 주는 간판도 있다. 간판만 있기도 하지만 하는 일을 자세히 써놓은 집도 있다. 사주, 궁합에 성명, 재물, 사업 등의 운을 보고 여러 가지 굿도 한다는 등등. 그러니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운과 불행과 슬픔과 고난을 샅샅이 뒤져 미리 알려주고 해결해 주고 아픈 곳은 마음이든 몸이든 치료해 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새마을운동으로 굿거리를 미신으로 여겨 징과 장구 소리만 나면 경찰이 출동해 심할 땐 굿상을 부수고 무당을 잡아가던 시절엔 기복(祈福)을 알리는 깃발이 요즘처럼 당당하지 않았던 것 같다.
두어 달 전 어느 날 강북구의 어느 거리에서 4층인가 하는 빌딩 맨 위층에 점집과 교회가 나란히 있는 게 신기해 보여 잠깐 쳐다본 적이 있다. 세상은 생물들이 사는 곳이니 변화가 잠시 잠깐도 멈추지 않는다. 세상의 몸체를 이루는 세포 하나로 살아갈 것이 분명한 나. 혹은 낡아서 닳아서 쓸모가 끝나서 떨어질 게 분명한 살비듬 같은 나. 혹시 불안은 이런 현상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그런 현상을 인정하기 싫어서 생기는 게 아닐까? 나는 한때 정말 방앗간 곁을 지나는 참새처럼 점집만 보면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억누르지 못했다. 어느 곳의 누가 용한지, 그런 정보도 교환하고 멀리 찾아가 본 적도 있다. 모두 불안과 욕망 때문이었다. 그들이 나의 불안을 없애고 욕망은 언제 이루어질지 ‘족집게’로 말해 주길 바라며 적지 않은 ‘복채’를 내고 보살, 도사, 선녀, 동자, 천신, 산신, 도령… 앞에 조아려 앉았다.
사실 그런 집을 들어갈 땐 뒤가 좀 켕기긴 했다. 떳떳하지가 않아서 쫓기는 기분으로 성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허름한 단층의 문간방일 때도 있고 커다란 한옥을 쓰는 이도 있었다. 좁고 가파른 계단 아래로 내려가 수없이 자물쇠를 갈아 단 흔적이 가여울 정도로 덕지덕지한 문을 밀고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용할까? 다 맞힐까? 기대와 의심으로 마음이 출렁인 건 마찬가지였다.
진한 향이나 양초 타는 내가 물씬 코를 찌르는 곳으로 들어가면 대개 한복을 입은 여성이 반기거나 순식간에 나를 파악하기 위한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지는 평범하지 않은 인상의 여성(남성)이 있거나 했다. 나는 비굴할 정도로 공손하게 앉아 그가 시키는 대로 복채를 놓고, 그가 나를 위해 신기(神氣)를 올리는 간단한 주문을 외는 동안 침묵한다. 주문을 마친 그가 무엇이 궁금해서, 혹은 무엇이 답답해서 왔느냐고 물으면 나는 줄줄이 대답하는데 그 대답 속엔 그가 묻지도 않은 말까지 포함됐다는 걸 나중에, 그러니까 그런 집에 더는 가고 싶지 않은 뒤에야 깨달았다. 나의 바람은 그가 내 불안과 욕망을 한시 바삐 알아맞히는 것이었다.
친구에게도 못 하는 말을 다 해버린 뒤에… “바라는 대로 될까요?” 절박하게 묻고 그의 반응을 기다린다. 그가 느리게 대답하면 혹시 내 질문이 전달되지 않았을까 봐 나도 모르게 총알처럼 다시 한번 말한다. “저는요, 어쩌고저쩌고.”
그는 말없이 쌀알을 굴린다거나 엽전을 이리저리 뒤집는다거나 종이 질이 좋지 않은 공책에 그림 같은 글자를 쓴다거나 무어라고 중얼거린다거나…. 이런 그의 행동 속에 내 운명이 콧김에도 날리는 먼지처럼 이리저리 흩날렸으리라.
“한번 가서 물어보세요. 조상님 산소를… 산 모양이… 둥그런 데다 썼을 텐데….”
아, 신통해서 저런 것까지 보이나 보다, 나는 어느 결에 그를 존중하기에 이른다.
그가 내 맘을 읽은 걸까? 내가 꼭 듣고 싶은 말들을 콕콕 찍어서 말해준다. 직업과 자식과 또 바라는 것들에 대해 “조상님이 도와서 다 잘 풀린다!”는 것. 나는 독한 것들에 취하듯 점괘에 몽롱해진다. 수많은 동업자 중 하나이니 내 신상이 알려질 염려도 없고 내 욕망이 언제쯤 이루어질 거라고 말해주니 안심이 되며 ‘조상’의 도움이 운명에도 나와 있다니 기쁘기 그지없다. 이러는 사이에 내 정신은 허약할 대로 허약해지고 자존감은 그림자도 남지 않은 걸 눈치채지 못한 채.
나이가 꽤 든 뒤에야 도사, 거사, 보살, 선녀, 산신 등이 사는 점집을 드나들지 않게 됐다.
온전히 나이 덕이다. 늙는 것이 준 선물. 저절로 욕망이 가라앉아 대체로 평화로워졌을 때, 삶에 고통과 불안, 슬픔 등이 있어야 한다는, 그런 묘미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됐을 때, 인류 최초의 점괘라는 “너 자신을 알라”에 가까이 간 기분이다.

글·사진 이경자_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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