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COLUMN

3월호

유산슬 · 유르페우스, 카피추, 펭수의 존재감 ‘부캐’ 전성시대
유산슬, 카피추, 펭수! 현재 한국 미디어에서 가장 ‘핫’한 스타들에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선풍적인 인기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이들에게서 요즘 통하는 미디어의 화법을 읽어본다.

유재석에게 새 이름이 ‘또’ 생겼다. 1월까지 유산슬이라는 신인 트로트 가수로 활동한 유재석은 오케스트라 단원이 돼 하프를 연주하며 ‘유르페우스’로 활동한다. 이미 예술의전당 공연에도 올라 MBC <놀면 뭐하니?-유케스트라 하프> 편의 녹화를 마쳤고, 이번 ‘부캐’의 이름은 유재석과 오르페우스(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음유시인)의 합성어인 ‘유르페우스’로 정해졌다고, MBC 공식 계정에 공지됐다. 이미 국민MC라는 어엿한 별칭이 있는 유재석이 왜 유고스타(비틀스의 드러머 링고 스타에서 따온 이름), 유산슬, 유르페우스라는 낯선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일까.

유튜브식 유머의 성공 ‘유산슬’

<놀면 뭐하니>의 시청자라면 알겠지만, 이것은 일종의 역할 놀이다.
전 국민이 얼굴을 다 아는 유재석이 “저는 유재석이 아니라 유산슬이라는 신인 가수이고 소속사는 MBC이며 소속사 사장은 김태호 PD 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방송에서 또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 는 것이다. 방송에서 공공연하게 말하는 이 또 다른 캐릭터가 바로 ‘부캐’이고 ‘본캐’는 유재석이다. ‘부캐’는 게임에서 원래의 자기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 계정으로 활동하는 데서 비롯된 신조어다. <놀면 뭐하니> 안에서 유재석은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을 연기 하고, 신곡 <사랑의 재개발>까지 발매한 후 유산슬로 지방 행사장을 누비다가 연말에는 단독 콘서트까지 열었다. 어디 그뿐인가. 2019년 MBC 연예대상 신인상 트로피도 유산슬에게 돌아갔다. <놀면 뭐하니>를 본 적 없는 어떤 시청자는 MBC 연예대상을 보다가 당황할 수밖에 없다. 데뷔한 지 28년, 지상파방송 3사 시상식에서 대상 트로피를 몇 개나 거머쥔 유재석이 신인상이라고? 하지만 트로피를 받은 것은 유재석이 아니라 유산슬이다. 2018년 MBC <무한도전> 폐지 후 1년 만에 돌아온 김태호 PD가 왜 공중파 방송에서 이와 같은 ‘장난’을 치는 걸까. <놀면 뭐하니>의 1회가 MBC TV가 아닌 유튜브에서 첫 방송을 시작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하던 대로 해서는 유튜브를 상대로 승산이 없음을, 김태호 PD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유명 연예인들의 브이로그 형식으로 시작한 <놀면 뭐하니>가 방송 초반 저조한 시청률을 보인 것과 달리 유재석이 유산슬을 연기하면서부터 시청률이 안정권에 들어섰다는 것을 보면 ‘유튜브식 유머’를 지상파로 끌어온 제작자 김태호 PD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약속된 역할극 ‘카피추’

이와 같은 ‘부캐’로 활동하며 인기를 얻은 대표적인 개그맨이 바로 추대엽, 일명 ‘카피추’다. 2002년 MBC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후 개그 프로그램에서 귀신 같은 모창과 연예인 따라 하기로 잠깐 화제가 된 추대엽의 ‘부캐’가 바로 카피추다. 카피추는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영감을 얻은 캐릭터로 자연에 살며 돈에 관심 없다고 떠들면서 실은 속세에 찌들어 유명 노래를 표절하는 유튜브 속 인물이다. 코미디 작가인 유병재가 추대엽에게 “이런 캐릭터로 유튜브에서 콩트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서 탄생한 캐릭터다. <코미디 하우스>에서 ‘성식이 형(성시경)’ 모창을 하고, <나도 가수다>에서 가수 정엽을 패러디한 ‘천엽’으로 활동한 추대엽을 눈여겨보던 유병재는 그에게 가발을 씌우고 생활한복을 입힌 후 ‘카피추’라는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산에만 살아서 속세의 유행어나 유행곡을 모른다며 손사래 치는 카피추는 남의 노래를 가사만 바꿔 부르며 “내가 만든 노래”라고 시치미를 뗀다. 유튜브 방송을 보는 시청자는 그가 자연인도 아니고 산속에 살지도 않는, 개그맨 추대엽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알면서도 속아준다. 추대엽, 아니 카피추는 카피추 채널(구독자 36만 명, 2020년 2월 20일 기준)을 운영하며 유병재의 채널(구독자 96만 명, 2020년 2월 20일 기준)에서 ‘표절제로’라는 코너에 출연해 누가 들어도 표절이 확실한 남의 노래를 가사만 바꿔 신나게 완창한다. 그 역시 ‘유산슬’처럼 약속된 역할극이고, ‘표절제로’의 유튜브 라이브에 참여한 시청자들은 댓글창으로 “오, 처음 듣는 노래입니다. 카피추 형님 천재!” 등등의 댓글을 남긴다. 유튜브 시청자들까지 이 사기극에 즐거이 동참하는 것이다. ‘표절제로’ 3화에서 카피추가 부른 노래는 박상철의 <무조건>이고 노래 제목은 ‘유조건’으로 둔갑 된다. 전 국민이 아는 그 노래 <무조건>의 가사를 카피추는 이렇게 개사해서 부른다.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 여자 만날 거야~ 나마스떼”.

기획된 펭귄 ‘펭수’

그렇다면 펭수는 어떨까. 2019년 최고 인기 캐릭터이자, 박원순 서울 시장과 함께 2020년 보신각의 종소리까지 울린 펭수는 ‘아이돌을 꿈꾸며 남극에서 대한민국을 찾아온 10살 펭귄’이라는 캐릭터로 자신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 인형 탈 속에 성인 남성이 들어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냥 펭수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열 살이고, EBS에서 아이돌 연습생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펭수는 사실은 커다란 인형 탈 속에 누군가 들어가 ‘펭하~’를 외치고 적재적소에 센스 넘치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다. 펭수의 힐링 메시지를 담은 에세이집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의 작가 소개에 펭수와 함께 이름을 올린 EBS에서 기획하고 제작한 캐릭터인 것이다. 그 안에는 당연히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재미있게도 펭수는 사람의 ‘부캐’가 아니라 그 스스로가 본캐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의 정체는 꽁꽁 숨겨야만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존재다.
유산슬과 추대엽이라는 부캐,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서도 자기를 펭귄이라고 주장하는 펭귄 인형 펭수. 2020년의 대중이 열광하는 이 ‘캐릭터’들은 실존하는 사람이 아니다. 기획되고 만들어진 거대한 농담이자 우화다. “우리 지금부터 이렇게 놀 건데 너희들도 같이 놀래?”라고 기획자들이 보낸 초대장을 받은 대중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는 그 놀이판에 기꺼이 올라가 함께 논다. 그것은 분명 거짓말이고 사기이고 장난이고 농담이지만, 현실에는 없는 무엇이라 더 즐겁게 속아줄 수 있다.

글 김송희_《빅이슈코리아》 편집장
사진 제공 MBC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