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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3월호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클래식 스타 탄생의 공식을 바꾸다
과거 클래식 음악의 스타 공식은 이런 거였다. 콩쿠르에 우승한다, 언론이 주목한다,
그 뒤에 음반이 발매되고 공연이 연속된다… 그런데 요즘은 클래식 스타가 되는 길이 다양해졌다.
그중 하나가 인터넷 스트리밍 채널 유튜브다. 음대생들이 만든 유튜브 채널인 ‘또모’에 출연한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은 열정적이고 화려한 모습과 불행했던 뒤안길을 노출한 뒤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지금은 자신의 채널도 열어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시련을 이긴 음악인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은 한 살 때 높은 곳에서 떨어져 턱관절에 이상이 생겼다. 유전으로 왼쪽 귀의 청력을 거의 잃었다. 2살 때 유학생 부모를 따라 영국에 간 뒤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냈다. 퍼셀스쿨을 졸업하고 15세 나이로 폴란드 최고의 바이올린 콩쿠르인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서 공동 2위에 입상했다. 옥스퍼드와 로열 아카데미,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대학 시절에는 정경화에게 레슨을 받았다. 20대 중반부터 통증이 심해져 6년 동안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는 공백이 있었다. 1월 31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한수진 초청 리사이틀은 그녀가 유튜브 스타가 된 뒤 팬들 앞에 선 첫 공연이었다.
한수진은 공연 전 해설을 맡은 《월간 객석》 송현민 편집장과의 대화로 아이스브레이킹을 했다. 준비운동 하는 효과로 아티스트와 곡에 대한 흥미가 높아졌다. 영국 악센트가 독특한 한수진의 영어 설명도 새로웠다.

유튜브 스타를 넘어 클래식 스타로

첫 곡인 <모차르트 소나타 K376>에서 한수진의 바이올린이야 여러번 들었던 익숙한 톤이 나왔는데 놀라운 부분은 피아니스트 박영성의 반주였다. 한국인이 한 모차르트 반주 중에서 이토록 예쁘고 단아하게 바이올린을 돋보이게 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마치 포르테피아 노나 스피넷을 연주하듯 빛나는 터치에 고졸함도 깃들인 연주를 들려줬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의 제자인 박영성은 독일 아헨에서 열린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우승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모차르트 소나타에서 한수진은 선이 되고 박영성은 점이 되어 그림을 그리는 듯했다. 한수진에게서는 스승인 정경화의 강철 같은 절도 위에 드리우는 자발적인 우아함이 느껴졌다. 무대 위에서 그냥 연주하는 게 아니라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이 그녀에겐 있었다. 과연 연주 하는 모습과 음색이 모두 매력적인 연주자였다.
이어진 <베토벤 소나타 4번>에서 한수진의 바이올린은 골프에서 아이언을 바꾼 듯 좀 더 공격적인 자세로 임했다. 베토벤의 소나타는 특히 만족스러운 연주를 듣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대가들의 연주에서도 단점을 잡아내기 일쑤다. 그런 면을 감안했을 때 한수진의 연주에서도 여러 군데 흐름의 끊김이나 실수가 있었지만 기세를 몰고 가는 정신력은 대단했다. 좌절에 굴하지 않는 베토벤의 투쟁은 언제 들어도 숭고하다.
2부의 <포레 소나타 1번>은 이번 공연의 백미로 꼽고 싶다. 모네의 그림처럼 사방 어느 곳 한 귀퉁이에도 많은 색깔이 덧칠돼 정보량이 많은 작품이다. 그녀는 이런 곡을 해석하며 다양한 빛을 방사했다.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어 설득력이 높았다. 카라얀의 솔로이스트였던 대가 크리스티앙 페라스의 포레 연주도 중간에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한수진의 연주에는 일관되게 곡의 끝까지 견인하는 힘이 있었다.
퍼즐을 맞추듯 거기에 일조한 박영성의 피아노도 한몫을 담당했다. 드라마 <모래시계> 중 ‘혜린의 테마’로 익숙한 <파가니니 소나타 6번>에서는 의욕이 앞섰던지 자유로운 루바토(박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하는 연주)를 남발했다. 이로 인해 정상 궤도를 가는 피아노와 어긋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거기서 흘러나오는 한수진의 바이올린 음색은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연주를 듣다 보면 하나의 음을 소리 낸다기보다 음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 같다. 그 음이 청자에게 다가와 손을 잡고 어깨에 팔을 두른다.
이 정서는 프로그램이 끝난 뒤 첫 앙코르인 글룩의 <멜로디>에 그대로 이어졌다.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 플루트 연주로 나오는 애잔한 선율이다. 두 번째 앙코르인 조지 거슈윈의 <It Ain’t Necessarily So>에서는 그녀의 끼가 녹아 있는 바이올린 소리가 스윙감을 뿜으며 귀에 착착 감겼다. 마지막 앙코르는 유튜브에서 히트한 바로 그 곡, 집시의 열정을 노래한 비토리오 몬티의 <차르다시>였다. 느린 부분의 슬픔과 한, 빠르게 질주하는 뜨거운 열정을 연속으로 뿜으며 듣는 이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연주는 꽤 오랜만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은 이제 유튜브 스타를 넘어 클래식 스타로 연착륙하고 있었다. 벌써 협연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부상과 핸디캡을 이겨낸 한수진의 성공 요인을 생각해 봤다. 표정과 태도와 실력의 삼박자가 아닐까 한다. 청중 앞에서 친절하게 생글생글 웃는 표정 속에서 나는 문득 ‘아 정말 칼을 갈고 나왔구나’ 하고 느꼈다. 타이틀, 겉멋보다 연습이 한수진의 오늘을 만들었을 거다. 앞으로 그녀의 연주는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서 회자되리라 예상해 본다.

글 류태형_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제공 조인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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