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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책 <극여행>과 <인듀어런스> 세계의 끝을 여행하다
세계의 끝은 어디일까.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사람들이 상상하는 장소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지평선이나 수평선 너머에 있는 어딘가를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광막한 우주 공간에 펼쳐진 별무리의 끄트머리를 상상할 듯하다. 그렇다면 세계의 끝을 향해 떠난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지구촌 극지 탐험기 <극야행>과 우주 여행 에세이 <인듀어런스>는 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인간의 발길이 가닿을 수 있는 세계의 끝을 탐방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적지 않다.

밤의 한복판으로 떠나다<극야행> 가쿠하타 유스케 지음, 박승희 옮김, 마티

우선 제목에 담긴 ‘극야’(極夜)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하고 넘어가자. 극야는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칠흑의 밤이다. 극지방에서는 위도에 따라 길게는 3~4개월 해가 뜨지 않는다. 북극점 부근은 1년 중 절반이 극야다. 일출과 일몰을 1년에 한 번씩만 볼 수 있다.
저자인 가쿠하타 유스케는 오지 탐험에 몰두해 있는 일본의 탐험가다. 그가 오지를 돌아다니는 이유는 “시스템의 바깥 세계”를 동경해서다. 그는 극야의 세계를 인간이 아직 체감하지 못한 세계라고 여겼다. 극야의 세계를 헤매다가 북극해에서 움트는 태양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럴 수 있다면 낮과 밤을, 빛과 어둠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저자의 여정은 지구상의 최북단 수렵 마을인 시오라팔루크에서 시작됐다. 그는 식량과 텐트를 실은 썰매를 끌고 개 한 마리와 함께 2016년 12월 6일 밤의 심연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탐험은 빙하를 넘은 뒤 빙상(대륙빙하)과 툰드라 지대를 거쳐 북극해에 도달하는 코스였다. 여정이 험난했을 건 불문가지다. 무지막지한 블리자드(눈보라를 동반한 강풍) 탓에 천측(天測)을 통해 방향을 가르쳐주는 육분의를 잃어버렸고 지도와 나침반에만 의지하는 신세가 됐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가없이 펼쳐진 어둠이었다. 어둠 속에서는 얼마나 가야 기착지나 목적지에 도달할지 알 길이 없었다. 가끔은 지금 걷는 길이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도 가늠하기 힘들었다. “불안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믿었던 내 신체 감각을 버려야 했다. … 북극성이 가리키는 방위만을 믿어야 한다. 한 점 의심 없이 의지하고 북극성의 말씀에 매달려 나아가야 한다.”
위험천만한 상황이 간단없이 이어졌다. 가장 문제가 된 건 식량이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기착지에 미리 방문해 쟁여두었던 식량을 백곰이 먹어치운 것을 알고 저자는 좌절한다. 출발지로 돌아가려면 극야가 끝나길 기다려야 했다. 사고무친의 땅에서 굶주리다가 쓸쓸히 죽음을 맞게 되는 건 아닐까. 탐험에 동반한 개라도 잡아먹어야 할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야기의 결말은 밝히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확실한 것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삶과 죽음의 뜻을 되새길 수 있다는 점이다. 책을 읽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반짝이는 별빛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매일 열심히 별을 쳐다보고 있자니 별마다 개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생명줄을 쥔 별들은 가스와 먼지와 암석이 응축된 무기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인 것만 같았다.”

지구 밖에서 보낸 340일<인듀어런스> 스콧 켈리 지음, 홍한결 옮김, 클

미국의 베테랑 우주인 스콧 켈리를 아는지. 그는 총 네 차례 우주를 여행했는데, 2015년 3월 28일부터 무려 340일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살면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이는 미국인 중 역대 가장 긴 체류 기간이었다. 그가 그토록 오랜 기간 우주에 머문 이유는 인간이 얼마나 우주에서 머물 수 있는지, 우주 공간에서 인체는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인류의 우주 프로젝트가 최우선 목표로 삼는 것은 화성에 인간을 보내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우주에서 인간이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는지 ‘실험 대상’이 돼야 했다.
<인듀어런스>는 켈리의 우주 생활기를 담고 있다. 그는 ISS에 머물면서 상추를 길렀고 백일홍도 키웠다. 주된 생활 공간은 승무원실을 일컫는 CQ(Crew Quarters, 공중전화 부스 정도의 크기라고 한다)였다. 잠은 침낭에 들어가 공중에 뜬 상태로 잤다. 양치질할 때는 빨대로 물을 한 모금 빨아서 입을 헹군 뒤 그냥 삼켜야 했다. 물을 뱉을 곳이 마땅찮아서였다. 대원들끼리 식사를 할 땐 음료 방울이 떠다니곤 했는데 누구 것이든 먼저 보는 사람이 입으로 받아먹는 게 관행이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우주인으로 살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건 언제였을까. 바로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내려다볼 때였다. “휘황찬란한 그 모습에 언제나 할 말을 잃곤 했다. 뭐랄까, 남들 모르게 나 혼자만 지구와 친하게 알고 지내는 기분이랄까. 동시에 이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내게 소중한 그 모든 것이, 지금까지 태어나고 죽은 그 모든 사람이 다 저 아래에 있구나.’”
우주에서 산다는 것은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가장 힘든 건 그리움이었다. 신선한 요리가, 싱그러운 과일의 향기가,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가 그리웠다. 푹신한 베개를 상상할 때도 많았다. 대원 중엔 지구에서 녹음해온 빗소리나 새소리를 자주 챙겨 듣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무감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작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미덕은 작지 않다. 340일간의 우주 생활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했을 때 저자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수영장에 들어가는 거였다. 그는 “우주에 있으면서 물만큼 촉감이 굉장한 건 없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비행복 차림 그대로 풍덩 빠졌다. 물속에 푹 잠겼을 때의 감동은 어마어마했다.”

글 박지훈_국민일보 기자
사진 제공 마티, 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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