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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논란 작가들, 이상한 문학상에 반기를 들다
2020년 새해 벽두부터 문학계는 이상문학상 논란으로 한바탕 시끄러웠다. 올해 제44회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 작가가 수상 거부 입장을 밝히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수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계약서의 ‘저작권 양도 조항’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수상작들의 저작권을 이 상을 운영하는 문학사상사에 3년간 양도한다는 내용에 작가들이 반발한 것이다. 이로 인해 문학사상사 측은 1월 6일 예정됐던 수상작 발표 기자간담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이상문학상은 요절한 천재 작가 이상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그의 작가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소설계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1977년 문학사상사가 제정했다.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국내 대표 문학상으로 꼽힌다.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시상하며 수상작과 후보작을 매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통해 발표한다. 작품집은 매년 2만 부 이상 판매될 정도로 파급력을 지녔다. 하지만 이번 논란으로 위기를 맞았다. 40여 년 지켜온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이상문학상과 관련한 쟁점을 살펴봤다.

저작권 양도 요구에 수상 거부한 작가들

시작은 김금희 작가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었다. 김 작가는 지난 1월 4일 자신의 SNS에 “어제 모 상의 수상 후보작이 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일차적으로는 기쁜 마음이었다”라며 “그런데 오후에 계약서를 전달받고 참담해졌고, 수정을 요구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고 적었다. 이어 “거기에는 내 단편의 저작권을 3년간 양도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심지어 내 작품의 표제작으로도 쓸 수 없고 다른 단행본에 수록될 수 없다고 했다. 문제를 제기하자 표제작으로는 쓰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글쎄, 내가 왜 그런 양해를 구하고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며 수상 거부의 이유를 설명했다.
최은영 작가 역시 “황순원문학상, 젊은작가상 우수작에 올랐지만 이런 조건을 겪어본 적이 없다”라며 “나를 포함한 작가들이 보다 나은 조건에서 출판사와 관계 맺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우수상을 받지 않겠다”라고 동참 의사를 밝혔다. 이기호 작가는 1월 6일 자신의 SNS를 통해 “사실 나에게도 연락이 왔었다”라며 “(이상문학상) 우수상이라는데 3년 동안 저작권 양도 이야기를 하길래 가볍게 거절했다”라고 전했다.
온라인상에서는 이번 논란과 관련한 작가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 문학평론가는 “이상문학상에 아직 남아 있는 ‘전통과 권위’가 있나 싶지만 김금희 작가가 거의 마지막 기회를 준 셈”이라며 “문학사상사는 이상문학상의 운영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한 트위터리안은 “문학사상사에서 저작권을 가지고 갑질을 하다 저항을 받은 것”이라며 “김금희 작가의 용기 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라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

1 <이상문학상 작품집>. (출처_문학사상사)
2 김금희 작가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 (출처_김금희 작가 트위터 갈무리)

논란 계기로 ‘노예계약’ 사라져야

이번 일은 비단 이상문학상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현대문학상, 김유정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많은 문학상들이 수상 작품을 수록한 ‘수상 작품집’을 출간하고 있다.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동인문학상의 경우 저작권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하지만 각 문예지나 매체에 발표된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시상하는 경우 저작권 문제가 불거질 소지가 있다.
기성 작가와 평론가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문학상 저작권 문제가 개선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수년 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던 한 작가는 “내가 수상을 하던 때에도 비슷한 계약서 조항이 있긴 했지만, 상을 받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에 따로 이의제기를 하지 못했다”라며 “지금은 세대가 바뀌고 ‘갑질’에 민감한 시대이다 보니 젊은 작가들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문학평론가인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이상문학상의 전통과 권위에 힘입어 ‘봉건적인’ 계약조건을 작가들에게 강제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다른 메이저 출판사의 경우에도 작가들에게 가하는 유무형의 불이익이 없었는지 살펴보고 적절한 대응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작가 의식을 고취하고 문학계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문학상의 취지가 이번 논란으로 빛이 바랬다. 논란이 확산되자 문학사상사 측은 “작가들과 소통을 통해 문제가 된 계약서 내용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수상을 빌미로 작가의 저작권을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안 된다. 작가와 출판사 간의 불공정한 계약으로 비치기보다, 수상 작가와 출판사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이상적인 문학상’을 모두가 바라고 있다.

글 이윤정_이데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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