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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문화계 여성 서사 열풍허스토리의 힘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 10월 출간 당시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이후 고(故) 노회찬 의원 등이 추천하면서 화제가 됐고 이후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김훈의 <칼의 노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에 이어 10여 년 만에 나온 밀리언셀러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이러한 기록이 만들어지는 동안 이 작품은 ‘한국 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됐다. <82년생 김지영>을 가지고 ‘독박육아’, ‘남아선호사상’ 등 여성 문제에 대한 세미나가 곳곳에서 개최되는 등 페미니즘의 대중화가 시작됐으며, 문화 전반에 등장한 여성 서사 또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허스토리’(Herstory)가 인정을 받고 주류로 떠오른 것이다.

바지 입은 여전사와 공주들

가장 먼저 여성 서사에 응답한 곳은 출판계였다. 페미니즘 하면 기껏 해야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 정도였지만 2017년부터 시작된 페미니즘 열풍은 2018년에 정점을 찍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13년 8,023권에 불과했던 페미니즘 관련 도서 매출 권수는 2014년 1만 1,143권, 2015년 1만 1,628권, 2016년 3만 1,484권, 2017년 6만 3,196권으로 대폭 증가했다. 또 지난해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30위 안에 총 8권의 페미니즘 도서가 이름을 올렸다. 특히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는 3위, <이갈리아의 딸들>은 4위를 차지했다. 1996년 국내에 소개된 <이갈리아의 딸들>은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한국에서는 미투 운동이 연극계에서 시작된 까닭에 이 작품이 연극 무대에 올랐단 것 자체가 메시지다.
남성 서사가 가장 강했던 영화에서도 변화가 시작됐다. 남성 톱 배우들의 멀티 캐스팅과 ‘브로맨스 코드’는 흥행의 주요 요소였다. 그런데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남성적이거나 폭력적이었던 <브이아이피>, <상류사회> 등이 관객들에게 외면받으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과거였다면 일부 ‘과격한 페미니스트’의 비판으로 치부했을 수 있지만 달라진 사회 분위기에 이 작품들은 문제작이 됐다. 이후 여성을 그리는 방식이 논란이 될 만한 장면들은 편집해서 개봉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2019년에는 여전사를 비롯해 여성 자체를 내세운 영화들이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외화는 여전사를 전면에 내세워도 흥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톡톡히 보여줬다. 미투 운동의 진원지인 할리우드답게 ‘은근한’ 여성 서사가 아닌 강력한 여성 히어로를 내세우면서 관객을 사로잡은 것이다. 2019년 초 마블 스튜디오는 처음으로 여성 히어로 시리즈인 <캡틴 마블>을 선보여 국내에서만 58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역시 1991년 속편 이후 등장하지 않았던 여전사 사라 코너를 살려내는 동시에 새로운 여성 캐릭터인 슈퍼 솔저 그레이스를 만들어냈다. SF 액션 블록버스터에서 ‘여전사의 조상’과 같은 코너를 ‘노년의 여전사’로 불러낸 점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한편 젠더 역할에 있어서 가장 보수적인 가치를 선보이던 디즈니가 최근 변신을 꾀했다. <알라딘>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자스민 공주를 선보이더니 <겨울왕국 2>에서는 더욱 진보한 여성상을 제시해 전편에 이어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겨울왕국 2>에서 엘사와 안나는 드레스가 아닌 ‘바지’를 입고 등장했고, 영화는 여성 간의 연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변화를 시도했다.
한국영화는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없었지만, 과거보다 여성이 중심이 되거나 여성이 전통적인 남성의 직업이나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국가부도의 날>의 김혜수를 비롯해 <블랙머니>의 이하늬는 과거였다면 남성 배우가 맡았을 법한 역할을 맡아 IMF와 론스타 사건의 중심에 섰다. 또 주변 역할에 머물렀던 엄마 역시 ‘원톱 주인공’으로 올라섰다.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82년생 김지영>(주연 정유미),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분투하는 <나를 찾아줘>(주연 이영애), 첫사랑의 기억과 마주하는 <윤희에게>(주연 김희애) 등은 주체적으로 여성 서사를 써내려간 작품이다.

1, 2 책 <이갈리아의 딸들>과 <82년생 김지영>.

달라진 시대정신, 변화하는 드라마들

여성이 주 시청자층인 드라마에서도 과거와는 다른 문법으로 여성이 그려졌다. 신데렐라 혹은 캔디형 여주인공을 그린 판타지물이 사라지고 연애와 결혼에서 주체가 된 여성이 등장한 것.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서는 주인공 배타미(임수정)가 연애의 키를 쥐고 연하의 남자친구 박모건(장기용)을 애타게 한다. 관계 자체를 여성이 주도한 것이다.
이를테면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나면 보통 여성이 걱정을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남성인 박모건이 이를 걱정하는 식이다. <동백꽃 필 무렵>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 동백을 비롯해 옹산 마을 여성들은 모두 전통적인 여성상이나 아내상이 아니다. 생계를 책임지기도 하고, 남편보다 학력도 월등히 높다. 동백 역시 그동안 드라마에 많이 등장했던 ‘싱글맘’이지만 청승맞고 가련한 캐릭터가 아니라 꿋꿋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드라마는 여성이 주요 시청자층이지만 어쩌면 가장 ‘보수적인 색채’를 지닌 장르였다. 진보적인 사상을 전하는 대신 이상을 판타지로 구현하거나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메시지를 담아도 여성 시청자들은 별로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 사회 분위기가 달라지고 주 시청자층이 1980년대 생으로 바뀌면서 드라마 역시 시대정신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3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KBS 제공)
4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CJ ENM 제공)

글 연승_서울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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