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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2월호

<쓰다> 과거도 미래도 현재라는 이름으로



<쓰다> 23호 포스터. (웹진 [비유] 제공)

패스트푸드 매장의 무인 주문기 앞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어르신을 도와드린 적이 있다. 도움이란 것이 화면에 손가락을 몇 번 가져다 대는 일이었지만 어르신께선 정말 고마워하셨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 아이가 좋아하는 공룡 카드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공룡 이름을 읽어주고 있는데, 어르신께서 내게 말을 걸어오셨다. 공룡이란 것이 정말 있는 거냐고. 자신은 순 거짓말인 줄로만 알았는데 공룡 뼈도 발견된다는 소리도 들은 것 같다고.
현재 당면한 문제를 내가 노인이 되어 맞닥뜨리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 때가 종종 있다. 무인 주문기는 나에게도 낯설었지만 어쨌거나 주문을 해냈다. 아이가 궁금해할 만한 과학적 질문들에 알고 있는 것을 의심 없이 나눠주고 있다. 아직은 그렇다. 하지만 내가 수십 년 후에도 새로운 결제방식에 금세 적응하고, 새롭게 알려진 것들을 쉬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 무섭게만 느껴진다.
SF는 내게 노인이 된 나를 상상하게 하는 장르이다. 공포물이나 다름없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국내외 SF 작품들이 크게 주목받으면서 내게도 편견을 뛰어넘을 만한 호기심이 생겼다. 나의 독서가 켄 리우, 테드 창, 정세랑…… 을 거쳐 김초엽에 이르렀는데! [비유]에서 김초엽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김초엽 작가의 작품 <로라>에는 ‘기계 팔’이 등장한다. 교통사고 이후, 애초 존재하지도 않는 팔의 감각을 느껴온 로라는, 세 번째 팔이 없는 자신의 몸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한다. 자기 몸을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 오른쪽 어깨에 기계 팔을 달기로 결정한 로라를, 연인인 진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진이 가장 괴로웠던 것은 로라가 애초부터 진에게 이해받을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_김초엽, <로라> 부분

진은 사랑하기 때문에 로라의 모든 걸 이해하고 싶다. 반대로 이해받고 싶기도 할 것이다. 진이 로라를 이해하기 위해 없는 신체에 대한 고통을 추적하는 과정이 이 소설의 뼈대이다. 진은 로라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소설이 불러일으키는 사랑에 관한 많은 질문 가운데 우리에게 과학적 상상력을 요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아무리 먼 미래로 날아가도 우리가 인간인 한 끌릴 수밖에 없는 사랑 이야기. <로라>는 진과 로라의 사랑 이야기이다.

유전자 해커들에 의해 스테고사우루스 ‘미나리’가 태어난다. 타조 DNA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스테고사우루스 미나리는 기계로 만들어진 메카 공룡들과 함께 지낸다. 이 과감한 설정을 독자들이 유치하거나 허무맹랑하게 느끼지 않도록 작가는 과학적인 언어로 가상 세계의 배경지식을 다양하게 구성한다. 한반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지만 현실 세계에 발을 딛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공룡이라고 하면 포효하는 티라노사우루스의 형체만을 가까스로 떠올리는 사람에게는 상상력이 좀 필요한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소설의 메시지는 충분히 현실적이다.

공원 안 메카 공룡들의 정신은 통합 시스템을 통해 연결된다. 공원 관리 시스템과 별도로 공룡들의 희미한 집단의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_듀나, <우리 미나리 좀 챙겨주세요> 부분

인간 집단은 인간 아닌 지구상의 모든 집단을 발아래 둔다. 그렇게 여긴다. 종교로써 특정한 동물 집단을 ‘보호’할 가능성을 제외하면 예외 없으며, 치명적이고 낯선 질병조차도 시간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인간보다 수십, 수백 배 거대한 공룡들이 인간의 통제를 거스르는 소설 속 상황은 상상하면 아찔하면서도 한편 통쾌하다.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서 얼마든지 동물이 태어나고, 그들의 존재 자체에 실패와 성공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이런 폭력 상황은 현실을 잘 닮아 있다.

물론, <로라>와 <우리 미나리 좀 챙겨주세요>는 기계가 생명체의 일부를 대체하거나 혹은 생명체와 다를 바 없이 사유할 수 있게 될 미래를 상상한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서만 기능하는 윤리적 질문들을 던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공상과학에 대한 공포를 거두고 읽다 보면 이 수많은 가정(假定)들이 우리 세계의 한 부분을 극도로 확대해 보여주는 망원경으로 느껴진다. 과거도 미래도 현재라는 이름으로.

글 김잔디_ [비유]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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