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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책 <사서>와 <사탄탱고> 노벨상의 계절, 심연으로 향하는 두 권의 나침반
노벨문학상의 계절이 다가오면 어른거리는 두 이름이 있다. 중국 소설가 옌롄커(閻連科)와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Laszlo Krasznahorkai)다. 인류가 당면한 시계제로의 디스토피아를 다른 언어와 형식으로 써내려간 두 소설가는 매해 노벨상 후보로 집중 거론되지만 스웨덴 한림원의 선택은 매번 빗나갔다. 고집스럽게 디스토피아를 그려온 두 소설가의 내면은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두려워 애써 외면하고 싶지만 경외감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옌롄커의 <사서>(四書)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탱고>는 심연을 보게 만드는 예리하고 거대한 나침반과 같다. 두 나침반을 품어 심연을 여행한 뒤 돌아왔다. 자신 있게 추천한다.

금서의 작가, 절망을 노래하다<사서>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자음과모음

<사서>의 줄거리는 이렇다. 황허강변 인근 강제수용소에 지식인들이 수용된다. 사상이 불충하다는 이유로 노동을 강요당한 지식인들은 신념이 꺾이는 폭압적 상황에 처하지만 항쟁도 도피도 불가능하다. 최고의 소설가였지만 국가에게 장악된 ‘작가’에게 소장은 잉크, 펜, 편지지를 쥐어주며 주문한다. “수용자를 일일이 감시해 7일마다 보고하라. 그러면 집에 갈 수 있다.”
무너져가는 세계에서 밀고자의 운명을 받아들인 작가는 반역자 보고서 ‘죄인록’을 집필해 아이에게 보고한다. 하지만 작가의 관심은 사실 다른 지점을 향해 있다. 잉크를 빼돌려 일생의 걸작 ‘옛길’을 몰래 쓰기 시작해서다. ‘죄인록’과 미완의 장편 ‘옛길’이 교차하는 액자식 구성의 이 소설은, 철학연구서와 신화소설 한 권을 추가로 덧대며 제목이 말하듯 ‘네 권의 책(四書)’으로 입체화된다.
인간의 노동력으로는 불가능한 목표의 농작물 생산에 내몰리면서도 수용자들은 귀향을 꿈꾼다. 현실은 안위를 허락하지 않는다. 흑사(黑沙)를 모아 철을 제련하라는 지시를 받거나, 심지어 자신의 피를 뿌려 곡식을 재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기근과 한파가 들이닥쳐 수용자가 죽어나가도 상부는 기별이 없다. ‘목표’만이 남겨진 수용소의 날씨는 ‘절망’이다.
수용소 소장이 죽는 최후의 장면은 인간의 종교와 역사와 세계를 전부 끌어안으며 도약한다. 왜 작가가 수용소에 갇혔는지에 관한 비화도 설득력이 높다. 문화대혁명 시절의 중국을 고발한 옌롄커의 이 소설은 중국 정부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중국 내 모든 출판사에서 출간을 거부당했다. 그러나 20개국에서 결국 출간돼 ‘금서(禁書)의 작가’ 옌롄커를 위대한 지성의 반열에 올렸다.
서울을 찾은 옌롄커를 작년에 단독으로 인터뷰한 적이 있다. 오래전부터 그가 서사의 전략으로 언급한 신실(神實)주의를 정의해달라고 요청하자 옌롄커는 답했다. “현실에서 나타난 표면적인 논리 대신 존재하지 않는 진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 진실에 가려진 진실까지 찾는 전략이 신실주의다.” 옌롄커는 시대의 진실에 가장 근접한 위대한 소설가다.

메시아가 돌아온 집단농장, 구원은 어디에<사탄탱고>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알마출판사

<사탄탱고>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실패한 집단농장에 남겨진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불신하며 산다. 돈 몇 푼에 악바리가 되어 막막한 생계를 이어가는 그들은 1년 반 전에 죽은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가 농장으로 돌아온다는 이상한 소문을 듣는다. 누군가는 그들을 구세주로 생각한다. 완벽하게 망한 세계인 마을에 이상한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초반의 종소리는 상징적이다. 주변에는 어떠한 교회도 없지만 소설에 첫 등장하는 인물인 후터키는 종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다. 종이 없는 종소리는 불길하고 불온하다. 그것은 청각으로 감각되는 디스토피아의 노크소리처럼 들린다. 마을 사람들이 환청을 공유한다는 건 실체 없는 희망을 일상에서 이명처럼 품고 사는 현대인을 은유해낸다.
자, 죽지 않았으나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리미아시는 메시아가 될 수 있을까. 구원은 무엇이며 구원자는 과연 누구인지를 소설은 묻는다. 그들이 마주하는 건 디스토피아의 파멸뿐이다. 구원자로 기대감을 모았던 두 인물은 사실 죽었다가 되살아난 메시아는커녕 당국에서 좌천된 시정잡배였을 뿐이다. 방치된 세계에서 이념도 체계도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한국엔 작년에야 출간됐지만 <사탄탱고>가 처음 발표된 시점은 1985년으로 동구권 해체 이전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책을 번역한 조원규 시인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그려낸 ‘몰락’은 정치적 저항의 표현에 다름 아니었으리라. 이 작품은 한 시기의 체제 비판을 넘어서 좀 더 항구적인, 희망하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한 문학으로 남았다”고 해설에 썼다.
올해 초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실패한 인터뷰가 다수였지만 이번 무응답은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그의 2015년 맨부커상 수상 소감에는 질문지로 보낸 10개의 물음을 무력화시키는 무엇이 있었다. “아마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 같다.” 옌롄커가 했어도 어색하지 않았을 말이란 상상은 필자만의 것일까.

글 김유태_매일경제 기자
사진 제공 자음과모음, 알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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