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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예술과 환경 보호
환경 친화적 예술의 딜레마

환경을 지키자고 이야기하는 예술 활동을 벌이다 보면, 누구든 언제나 동종의 딜레마에 부딪힌다. 예술 활동은 인간의 생존에 불필요한 부산물을 창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즉 전시 준비 과정에서나 종료 이후, 여러 쓰레기가 창출되는 것. 작가와 작업과 전시가 국제 투어를 다니는 경우 탄소 발생에 대한 책임도 만만치 않다. 물론 그러한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예술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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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라퍼 엘리아슨, <얼음 시계>(Ice Watch), 2014년 작의 2015년 설치, 파리 팡테옹 광장, 30t의 탄소를 발생시켰다.

예술과 환경 보호, 어울리지 않는 이름

초기의 대지미술가들은 대지를 확장된 미술의 장소로 이해하는 경향을 드러냈지만, 대지미술의 어법을 물려받은 2세대 작가들은 보다 환경 친화적인 작업을 전개하려는 의지를 드러냈고, ‘에코 아트’라는 흐름을 형성하기도 했다. 자연의 풍광 속에서 자연의 재료를 찾아, 자연 속에서 서서히 파괴될 설치미술을 제작하는 것이 기본 패턴이다. 문제는 결과가 신통치 않다는 것. 자연에서 찾은 재료, 즉 얼음이나 나뭇가지, 돌, 흙으로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기하학적 구조체를 만들어 자연 풍광에 대비시키는 것이 보통인데, 대체로 기록 사진으로만 아름답다. 굳이 그렇게 작업할 것이라면, 애초에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며 수목원을 운영하는 편이 더 예술적이고 또 환경 친화적이지 않을까?
환경 친화적인 디자인 활동을 추구해도 역시 유사한 딜레마에 봉착한다. 예컨대 생분해 재료를 사용해도 재료가 분해될 때면 환경에 해로운 성분이 나오기 마련. 소위 업사이클링을 통해 낡은 자재를 재활용해 새로운 디자인을 창출한다는 작업도 실제로 들여다보면 상당한 부산물을 파생한다. 윤리적 소비를 희망하는 구매자에게 정치적 올바름의 차원에서 만족감을 주지만, 실제로는 그냥 있던 물건을 오래오래 고쳐가며 아껴 쓰는 것만큼 환경 친화적인 방도는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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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지미술가 앤디 골드워시의 <얼음 별>(Ice Star). 스코틀랜드 덤프리셔 펜폰트 마을의 스카우어워터 강변(Scaur Water, Penpont, Dumfriesshire), 컬러사진,77cm×75.5cm, 1987, The UK Government Art Collection.

3 티노 세갈, <키스>(Kiss), 2002~2004, 연출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

올라퍼 엘리아슨과 티노 세갈

환경 이슈를 들고 나온 한시적 에코 아트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는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당신의 시간 낭비>(Your Waste of Time, 2006)라는 작업을 꼽을 수 있다. 작가는 아이슬란드의 빙하에서 AD 1200년경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6t가량의 얼음덩어리들을 떼어다가 베를린의 노이게리엠슈나이더 갤러리에 전시했다. (전시장엔 전기를 소모하는 냉동 장치가 가동됐다.) 애초에 이 빙하 설치물은 시간성과 추상성을 연결 짓는 다소 억지스러운 아이러니로 구상됐지만, 이후 작가는 환경 이슈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2014년 열두 덩어리의 빙하를 코펜하겐 시청 앞에 원형으로 설치하고 <얼음 시계>(Ice Watch: ‘얼음 지켜보기’라는 뜻도 담겼다.)라고 이름 붙였던 작가는, 2015년 같은 프로젝트를 COP21 기후 보고 행사가 열리는 동안 파리의 팡테옹 광장에서 반복했다. 기자들 앞에서 그는 “1만 5,000년 전의 공기가 당신을 만나러 파리까지 여행을 왔습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말이죠”라며 정치인 같은 언론 매체 친화적 사탕발림 언술을 구사하기도 했다.
빙하를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석연료 소모로 인한 탄소 발생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지만, 멀쩡한 빙하를 바다에서 건져와 녹여버리는 작업의 모순에 대한 비판은 미술계의 막후에서나 조용히 이뤄졌다. 기후 변화에 대한 전 지구적 각성을 촉구한 작가는 전 지구화의 시스템과 사람들의 죄책감을 가장 영악하게 활용해온 인물이니, 여러모로 ‘21세기형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예술가가 올라퍼 엘리아슨처럼 이율배반적인 것은 아니다. 티노 세갈(Tino Sehgal)은 현대예술가가 취할 수 있는 한 극단을 제시하고 구현했다. 탄소 배출을 유발하는 전 지구적 이동을 비판하는 작가는, 해외 전시가 열려도 제트 비행기는 타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기차와 배처럼 탄소 배출이 적은 교통수단만을 이용한다는 것. 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려도 도록 같은 것은 제작하지 않는다. 촬영이나 녹음 등의 파생물을 만드는 일에도 반대한다.
본디 무용가로 일했던 그는 작업을 기동시키는 아이디어를 입말로 전달하고, 그것을 ‘해석가/번역가’(interpreter)로 불리는 수행자들을 통해 구현할 뿐이다. 구현된 행위는 ‘연출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이라 일컫는데, 에디션 넘버를 붙여 일종의 조각처럼 판매한다. 거래할 때도 모든 작품은 면대면으로 전달되고 기억으로만 저장하라고 요구하니,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삶의 실천을 추구하면서 본질로 환원되는 수행적 작업을 제시한 그는, 전 지구화 시대의 공동 번영에 대한 믿음이 붕괴한 2008년 이후 새로운 차원에서 진선미를 통합한 인물이 됐다. 그는 5년 뒤인 2013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다른 건 몰라도, 티노 세갈의 전시에선 쓰레기와 탄소가 많이 발생하지 않는다. 앞으로 꽤 오랫동안 환경적 측면에서 그보다 더 윤리적으로 올바른 작업을 전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글 임근준 미술·디자인 이론 및 역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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