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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월호

양희은의 <상록수>가 주는 메시지 끝내 행복해지리라
김작가가 결혼했다. 김씨 성을 가진 작가가 아니라 필명이 ‘김작가’인 대중음악평론가다. 지난 11월 25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는 수많은 음악계 종사자들과 음악인들이 모였다. 홍대 앞 인디 음악인들과 끈끈하게 어울려온 김작가의 결혼식에서 누가 축가를 할지가 관심사였다. 축가 1순위로 예상됐던 모던록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은 노래 대신 축사를 했다.

드디어 축가의 순서. 베일에 싸여 있던 주인공이 단상으로 나왔다. 양희은이었다. 그는 별다른 얘기 없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저 들의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상록수>였다. 결혼식장의 분 위기가 자못 숙연해졌다.
대개 잘 몰랐거나 알았어도 잊어버리기 십상이지만, 사실 <상록수>는 결혼 축가로 만든 노래다. <아침이슬>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김 민기는 1970년대 중·후반 공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중 이 노래를 만들었다. 인천 어느 공장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노래였다. 이는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이라는 제목으로 1978년 양희은의 독집음반에 실렸다. 박정희 정권의 탄압 아래 활동이 불가능했던 김민기는 작사·작곡자로 친구 김아영의 이름을 적었다.

서정민의 썰 관련 이미지1, 2 2016년 11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서 <아침이슬>, <상록수> 등을 부른 가수 양희은과 광화문 일대를 밝힌 촛불 행렬.

축가에서 국민 희망가로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라는 마지막 구절 때문인지 <상록수>는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시위에서 널리 불렸다. 박정희 정권은 <아침이슬>처럼 <상록수>도 금지곡으로 지정했지만, ‘거리의 노래’로선 오히려 훈장과도 같았다. <상록수>는 1987년 6월항쟁 이듬해인 1988년 금지곡에서 해제되었다.
이 노래가 더 크게 양성화된 시기는 10년 뒤인 1998년이었다. 당시 IMF 사태로 실의에 빠져 있던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국민 희망가’로 발돋움한 것이다. 골프선수 박세리가 양말을 벗고 검게 탄 종아리 아래 새하얀 발을 드러내며 물에 들어가 공을 쳐내는 장면과 함께 이 노래는 국난 극복의 상징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노래를 특히 좋아해 2002년 대선 후보 시절 기타를 치며 직접 노래하는 영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노래가 다시 한 번 거리에서 거대하게 울려 퍼진 건 2016년 말이었다.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광화문 촛불집회가 열리던 11월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 양희은이 깜짝 게스트로 무대에 올랐다. 사람들은 술렁였다. 양희은은 <아침이슬>, <행복의 나라로>를 들려준 뒤 마지막 곡으로 <상록수>를 불렀다. 촛불을 든 100만 명의 시민들은 노래를 따라 불렀다.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라는 마지막 대목이 빌딩숲 사이로 메아리쳤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내 가슴도 뜨거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탄핵됐고, 국민들은 끝내 이겼다.

굴곡의 현대사를 돌고 돌아 제자리로

결혼식장에서 <상록수>가 울려 퍼지는 내내 환하게 웃던 신부와 달리 신랑의 얼굴은 짐짓 굳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하는 결혼식에 긴장해서였는지, 노래 자체가 주는 엄숙한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리라 짐작할 따름이었다. 하객들 역시 엄숙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자리에서 스테이크를 썰던 한 지인은 “이 노래를 들으면서 뭔가를 먹으면 안 될 것 같다”며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노래가 처음 생겨난 애초 취지로 불리는 걸 보며 연신 싱글벙글했다.
<상록수>가 끝났다. 사람들의 박수가 터졌다. 그제야 신랑은 환하게 웃었다. 양희은은 “이 노래를 발표한 이후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불러본 건 처음이네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이 노래가 불렸을 장면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수많은 신랑, 신부들 사이에서 노래가 처음 울려 퍼졌을 인천 어느 공장의 합동결혼식장, 유신 정권에 저항하는 거리 시위 현장, 1980년 5월의 광주, 1987년의 뜨거웠던 6월, 1990년대 후반 금 모으기 운동을 하며 국난 극복의 의지를 다지던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적인 당선, 나라를 망친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며 촛불을 밝히던 광화문광장… 그리고 다시 결혼식장. 노래에는 각기 타고 난 운명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록수>는 굴곡의 한국 현대사를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로 찾아왔다.
“저 들의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 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문득 노랫말을 되새겨본다. 지금은 비록 힘들고 가난하여도 손을 맞잡고 함께 헤쳐 나간다면 끝내 행복해지리라는 메시지가 이 노래에 담겨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신랑, 신부는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노래인 것이다. 김작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기원한다.

글 서정민_ 씨네플레이 대표
사진 제공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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