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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2월호

여성 예술가의 삶을 조명한 <파울라> 유리천장 깨뜨리기
여성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을 하면서 겪어야 했던 건 착취와 투쟁의 역사가 아니었을까. 시대의 편견과 벽에 부딪혀 고전했지만 끝내 자신의 화풍을 구축한 여성 화가들을 다룬 영화들이 있다. 미국의 마가렛 킨을 소재로 한 팀 버튼 감독의 <빅 아이즈>, 로댕의 그늘에 가려 불행한 삶을 살다간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을 모델로 한 동명의 영화들, 그리고 지난 11월에 개봉한, 독일의 여성 화가 파울라의 삶을 그린 영화 <파울라>이다.

영화의 틈 관련 이미지 1 영화 <파울라>의 한 장면.

팀 버튼 감독은 <빅 아이즈>(2014)를 통해 1950년대 미국 대중미술계에 혁신을 일으켰던 화가 마가렛 킨(에이미 애덤스 분)의 기막힌 스토리를 조명한다. 마가렛은 재혼한 부동산업자가 화가 행세를 하며 자신의 작품을 내다팔아 부와 명성을 얻는 동안, 정작 자신은 딸에게도 화가라는 사실을 숨긴 채 골방에서 작업을 하며 지내야 했다. 큰 눈의 소녀를 그린 마가렛의 그림들은 기괴하다고 무시되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화풍을 고집했고 30년간 착취당하고 숨어 지냈던 삶을 떨치고 결국 자신의 권리를 찾아나간다.
이런 기막힌 사연이야 시대를 훌쩍 넘어서도 적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조각가 로댕의 그늘에 가려 자신의 재능을 펼치지도 못한 채 평생을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야 했던 천재 아티스트 카미유 클로델. 그녀 역시 편견과 차별의 시대, 예술은 남성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시대에 재능을 펼치지 못한 채 사그라들어야 했다. 그 ‘야만적인 기준’의 반경 안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숨죽여 살고 있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카미유 클로델의 불운한 삶은 브루노 누이땅의 <까미유 끌로델>(1988) 브루노 뒤몽의 <까미유 끌로델>(2013) 등을 통해 조명되었다.

영화의 틈 관련 이미지 2 자신의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마가렛 킨. 영화 <빅 아이즈>의 한 장면.

“아무리 그래도 난 할 거예요!”

스크린이 불러온 또 한 명의 여성 화가가 있다. 19세기 말 활동했던 최초의 여성 화가로 명명된 파울라 모더존 베커는 독일 표현주의를 개척한 선구자적 화가로, 사실적이고 정밀한 풍경화를 추구하던 당시 미술계에 단순한 선, 무미건조한 색채를 통한 화풍으로 주목받았다. <실 잣는 농촌 여인>(1899), <어머니와 젖 먹는 아기>(1906), <누워 있는 모자의 누드>(1907)를 비롯해,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한 누드 자화상 <호박 목걸이를 한 자화상>(1906) 등의 대표작을 통해 파울라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후대의 인정과 달리 31살의 짧은 생애를 보내는 동안 파울라는 여성을 등한시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맞서 싸워야 했다. 오로지 자신이 그토록 열정을 바치고자 했던 그림을 위하여. 영화는 한 예술가의 빛나는 찰나, 그리고 그 찰나를 위해 매진했던 여성이자 화가인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삶을 그려나간다.
1876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난 파울라. 그녀는 당시 또래 여성들과 달리, 미래를 개척한 여성으로 기억된다. 파울라는 자신의 의지로 두 번 집을 나간다. 한 번은 나고 자란 집으로부터의 탈출이다. 그림에 대한 열망으로 화가가 되고자 했던 파울라를 향해 아버지는 “너무 거창한 것 말고, 실현 가능한 미래”를 꿈꾸라며 그녀를 나무란다. 아버지가 제시한 미래는 적당한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해서 아이를 생산해 가정을 꾸리는 전업주부로서의 삶이었다. 여자는 화가가 될 수도 없던 시절이었고, 파울라의 그림은 “재능이 없다”란 말로 묵살되어야 했다. 파울라는 커다란 이젤과 물감, 붓통과 물통 등 그림을 그릴 재료들을 잔뜩 몸에 이고, “아무리 그래도 난 할 거예요!”라고 외치며 당당하게 집을 나왔다.
두 번째로 그녀가 집을 나온 건 결혼 후다. 독일의 예술가 공동체 ‘보르프스베데’에서 화가로서의 역량을 키워나가던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 이해받지 못할 그림을 그린다는 이유로 무시되는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같은 화가인 남편 오토 모더존을 떠나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파리로 찾아든다. 역시 아버지를 떠나 집을 나올 때 짊어졌던 그 무거운 화구들을 몸에 칭칭 이고, 끌고서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는 당시의 화풍에서 그녀는 당당히 “내 시각도 중요하다”고 외친 독특한 아티스트였다. 남자들만의 작품을 인정하는 예술계에서 그녀는 “진정한 내 것을 만들고 싶다”며 “서른 전에 성공하고 싶다. 세 점의 그림과, 아기를 낳겠다”는 절실한 목표를 세운다.

여성 예술가들의 생존법

영화에는 19세기 파울라가 활동하던 시절의 공기가 고스란히 묘사된다. 파울라가 매료된 세잔의 그림이나 로댕의 작품이 등장하는가 하면, 그녀와 예술적 교류를 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묘사된다. 특히 파울라의 대표작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초상>(1906)도 등장해 눈길을 끈다. 파울라와 함께 호흡했던 그 시대 여성 예술가들의 고충도 다분히 피력된다. 파울라와 독일에서부터 함께 성장한 친구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술집에서 만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그녀는 마침 로댕의 조수로 일하며, 창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착취당하는 생활을 파울라에게 토로하는 중이었는데, 곁에는 그런 로댕을 원망하며 조각을 헐값에 팔아넘기는 카미유 클로델이 마치 카메오처럼 등장하기도 한다. 남편을 떠난 파울라를 정신병원에 가두려는 시도도 없지 않다. 영화는 이렇게 여성이 억압받던 시대, 여성 예술가들이 어떻게 생존해나갔는지를 조명한다.
영화를 연출한 크리스찬 슈뵈초브 감독은 파울라를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두려움과 싸워나가며 운명을 개척한 여성, 시대의 유리천장을 깬 놀라운 여성”이라며, “짧지만 강렬한 삶을 살다간 여성화가 파울라를 통해 관객들 역시 용기와 희망을 얻길 바란다”고 전한다. 10년도 채 안 되는 작품 활동 기간이었지만, 그녀가 독일 예술계와 여성사에 남긴 족적은 여전히 되새겨야 할 지점이다.

글 이화정_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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