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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2월호

‘서촌 옥상화가’ 김미경의 서촌 예찬내 사랑 서촌
김미경 작가는 서촌에 살면서 주변 풍광을 화폭에 담는다. 인왕산이 보이는 동네 풍경과 좁은 골목길, 계절마다 피어나는 서촌의 꽃과 서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작품의 소재가 된다. 서촌의 옥상에 올라 그림을 그리기에 ‘서촌 옥상화가’라고 불리는 그가, 서촌을 사랑하는 이유를 고백한다.

서울 단상 관련 이미지<옥인동 47번지> 펜, 53 × 72cm, 2014~2017. 동네 친구의 옥상을 빌려 오래오래 그렸다. ‘신인왕제색도’인 셈이다.

매일 걸어 다니는 누하동 뒷골목에 늘 ‘한 번 그려야지’ 하며 지나쳤던 곳이 있었다. 한옥과 적산 가옥이 멀리 보이는 인왕산과 묘한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었다. 어느 날 마음먹고 앉아서 그리고 있는데 동네 사람이 내 그림을 들여다보며 소리쳤다. “오! 우리 집을 그리고 있네! 우리 집 모델료 내셔야겠는데요?” 그림 오른쪽에 있는 집에 사는 사람이었다. 서로 마주 보며 웃는 것으로 끝났지만, ‘정말 모델료를 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촌, 나의 새로운 일터

나는 서촌의 산과 건물과 나무와 꽃과 사람들을 그리고, 그 그림을 팔아 먹고산다. 서촌은 내가 하루 종일 먹고 자고 살아가는 곳이면서, 내 그림의 대상이자, 일터다. 화실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매일 동네 옥상과 골목길, 인왕산을 돌아다니며 그리다 보니 서촌 동네 전체가 내 화실이 됐다.
4월에 인왕산에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면, 인왕산이 내 화실이 된다. 바위틈을 비집고 앉아 이리저리 힘차게 자라나는 진달래를 그리는 재미에 4월 한 달이 후다닥 지나간다.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5~6월과 9~11월은 옥상에서 그림을 그리기 제일 좋은 계절이다. 동네 친구들의 옥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나는, 동네에서 ‘옥상 동냥녀’로도 불린다. 옥상에서 보는 서촌은 어마어마한 바닷속 풍경인 듯도, 축소된 세계지도인 듯도 하다. 골목길 구석구석도 낚시의자만 놓으면 화실로 바뀐다.
대학 시절, 1980년부터 1982년까지 종로구 청운동 청운아파트에서 선배 한 명과 자취하며 살았다. 복도 중간쯤에 공동 화장실이 있고, 연탄보일러로 난방을 하던, 방 두 칸짜리 11평 서민 아파트였다. 인왕산에 바짝 붙은 아파트였지만, 그땐 내가 인왕산에 붙어 사는지도 몰랐다. 그 후 결혼하고, 애 낳고, 직장생활 하느라 마포구 합정동으로, 마포구 염리동으로, 강동구 명일동으로, 서대문구 연희동으로, 경기도 김포로, 일산으로, 허겁지겁 이사를 다니면서 이 동네를 까마득히 잊었다. 꼭 30년 만인 2012년에, 나는 기억 속에서 자취를 감췄던 그 동네로 다시 돌아왔다.

옥상 풍경과 동네 친구가 있는 서촌

‘서촌 옥상화가’로 불리는 나는 옥상에 오를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옥상 풍경이 왜 이렇게 좋은 거지?’ 옥상에서는 전체 구도가 확연하게 보여 좋다. 동네가 산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어디서부터 길이 시작되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동서남북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내가 나를 둘러싼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내가 자리한 곳이 어디인지를 객관화해 볼 수 있어 좋다. 그 새로운 면들이 겹치고 풀리고 만나면서 만들어내는, 예측할 수 없는 선과 면, 그리고 새로운 구도가 멋지다. 인왕산과 건물과 골목이 만든 선과 구도를 찾아낼 때마다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는 기분이다. 인왕산, 북악산, 경복궁을 배경으로 한 역사공간이기도 한 서촌은 그 선들만으로 고대, 근대, 현대를 아우르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서촌만의 힘이다.
동네 친구라곤 아주 어린 시절, 집 뒷골목에서 고무줄놀이를 함께하던 친구밖에 없었다. 성인이 되어 ‘회사인간’으로 살았던 30여 년 동안 동네는 아침 일찍 빠져나가는 곳, 밤에 되돌아와 잠자는 곳이었다. 하루 종일 동네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동네 꽃이 자라는 소리, 골목길을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다 보니, 조금씩 동네가 보이고 동네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서촌에는 친구와 함께 밤마실 나가 술 한 잔을 나누는 동네 친구 문화가 있다.
얼마 전 세 번째 개인전을 열면서 제목을 ‘좋아서’ 라고 붙였다. 지난 2년간 옥상에서, 인왕산에서, 길거리에서 그린 70여 점의 그림을 선보였다. 모두 서촌 풍경이, 서촌 꽃이, 서촌 사람이, 서촌에서 일어난 탄핵 행진이 좋아서 그린 작품들이었다. 서촌에 어떤 매력이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그리는 서촌 옥상 풍광에 자연과 역사와 문화와 정치와 사회가 오롯이 다 들어갈 수 있어서요”라고 혼자 중얼거려본다. 서촌 꽃들에게, 인왕산에게, 집들에게, ‘서촌세’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점점 더 하게 된다.

글·그림 김미경_ 화가.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하다가 오십 줄 넘어 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브루클린 오후 2시>, <서촌 오후 4시> 등의 책을 펴냈으며, <서촌 오후 4시>, <서촌 꽃밭>, <좋아서> 등 3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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