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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영화평론가 최재훈 “영상을 정직한 언어로 읽어주고 싶다”
지난 11월 열린 ‘제3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장평 <성기가 향한 길, 끝_김기덕 작가론>과 단평 <꿈의 제인>을 쓴 최재훈 평론가가 신인평론상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45세라는 늦은 나이에 신인상을 수상한 그는 이제 막 입봉한 신인 평론가지만, 알고 보면 연극, 오페라, 무용 등의 분야에서 오랜 기간 일하고 있는 문화예술계의 베테랑이다. 영화평론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들어선 최재훈 평론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개인의 생존을 내포하고 있고, 보편적 정서에 가닿는 길도 찾았다. 그래서 성기가 가리키던 길 끝, 헤르메가 길을 안내하지 않아도 이야기의 길은 쉬 끝나지 않는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동안이 아니라, 영화가 끝나 일어나는 순간, 더 많은 김기덕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종착역에 도착했다고 안내를 받는 순간, 그 길에 선 순간, 여행이 다시 시작되는 것처럼.”

지난 11월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3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이하 ‘영평상’)에서 신인평론상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최재훈 평론가의 김기덕 작가론에 관한 평론의 일부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에서 주관하는 ‘영평상’은 영화평론가와 영화 관련 언론인들이 그 해의 우수한 영화와 영화인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최재훈 평론가가 수상한 ‘신인평론상’은 영화비평의 활성화와 신인평론가 발굴을 위해 공모(公募)를 통해 진행되며, 안숭범(한신대 조교수,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국장), 박우성(한국영화평론가협회 출판이사, 영화지 스태프 평론가) 등 총 10명의 평론가를 배출했다.
최재훈 평론가는 장평 <성기가 향한 길, 끝_김기덕 작가론>과 단평 <꿈의 제인>으로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에 당선됐다. 심사를 맡은 이현경 영화평론가는 “최재훈의 평론 2편 모두 안정적인 문장력이 돋보였으며 영화보다 이론을 우위에 두는 흔한 우를 범하지 않았다”라며, “자신의 언어와 감성으로 일관된 호흡을 유지하고 있는 그의 글에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 대한 오랜 애정과 탐구를 짐작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덧붙여 “최재훈은 정재형, 송효정, 이현경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고른 지지를 받아 비교적 수월하게 당선이 결정됐다”라고 말했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

45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신인상을 수상한 최재훈 평론가는 “협회에서도 나이를 듣고 당황하지 않았을까 싶다”라며 멋쩍어했지만, 실제로 그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오히려 주인 잃은 신발이 제짝을 찾았다고 할까. 연극, 오페라, 무용 등 오랫동안 몸담았던 공연예술계 경력만 봐도 그렇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1 영평상에서 신인평론상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최재훈 평론가의 상패.
2 시각예술과 무용예술가의 협업 프로그램인 <Colla報(콜라보)>. 콜라보를 널리 알린다는 중의적 의미를 띤다.
3 <댄스토리 서울(Danstory Seoul)>은 댄스와 스토리의 합성어로, 사진과 무용의 협업을 통해 서울을 이야기하는 프로젝트이다. 이탈리아의 사진작가 기안마르코 브레사돌라와 열혈예술청년단이 함께했으며 사진집 발간과 사진 전시가 이어졌다.
4 댄스필름 제작 아카데미 참가자들의 티저 영상을 심의, 댄스필름 제작 지원금과 제작 여건을 제공해 호평받았다.

우선 수상을 축하한다. 소감이 어떤가?

처음 영화관이라는 곳에 갔을 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전의 극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스크린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좀 시끄러웠는데, 객석에 불이 꺼지자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된 기분이었다. 지금도 극장을 가면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처음 당선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불 꺼진 객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채널예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평론을 해왔다. 어떤 계기로 평론을 하게 되었나?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재학 시절에 딱 3번 공모전에 지원했는데, 모두 최종심 후보에만 오르고 당선되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로 인터넷 잡지에 소설을 연재했는데, 그 글을 보고 잡지사에서 영화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평론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일상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에세이였다. 삶과 영화를 연결 지어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영화를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했던 것 같다.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는데, 굳이 이번 ‘영평상’ 신인평론상 공모에 응모한 이유는 무엇인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글을 쓸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6개월쯤 글을 쓰지 않으니까 요청이 뚝 끊겼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글을 쓴다는 것은 지키고 싶은 자존심 같은 거였다. 글을 다시 쓰고 싶어 각종 매체에 연락을 했다. 눈에 띌 만한 타이틀을 요구하는 곳이 많았다. 등단 절차를 거쳐 정식으로 인정받는 필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에도 영화평론을 해왔는데, 이번 수상의 의미는 이전과 어떻게 다른가?

‘등단’을 하게 되었으니, 정식으로 인정받은 느낌이다. 영화평론가로서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영화평론가로서 활동을 해야겠지만, 일도 계속하고 싶다. 도전을 했고, 원하던 것을 이뤘다는 성취감 때문에 한 계단쯤 딛고 올라선 기분이다.

“영상을 또박또박 읽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자신만의 평론 스타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비평을 하라고 하면, 비판을 하거나 지식과 이론을 작품에 억지로 가져다 붙이는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영화평론은 자신의 관심사나 편견으로 살을 붙였다 깎았다 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언어를 독자들에게 글로 다시 풀어 또박또박 읽어가며 그 의미를 되짚어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정직한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오독해서는 안 된다. 어려운 영화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주는 평론가가 되고 싶다.

평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김기덕에 대한 애증을 느꼈다. 그 많은 텍스트 중 김기덕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김기덕 감독은 영화계 폭력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그의 작품들을 폄하하는 댓글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김기덕의 영화를 보긴 했을까 싶었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은 모두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읽은 사람은 거의 없는 고전소설 같다. 김기덕이라는 사람이 아닌, 김기덕 감독이 만든 영화를 되짚어 읽어주고 싶었다.

영화 <꿈의 제인>도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불행하고 ‘마이너’한 소재의 작품을 선택하는 이유가 있나?

나쁜 예술의 힘을 믿는다. 잔인하게 생채기를 내는, 무례하고 어두운 예술을 좋아한다. 상처 난 살갗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은 나쁜 감성을 대신 표현해주는 것이 예술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오해할 수 있어서 덧붙이자면 나쁜 예술은 나쁜 영향을 주는 예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빠서가 아니라 상처받아서 거칠어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내가 말하는 나쁜 예술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는다.

국립오페라단과 서울문화재단을 거치면서 다양한 문화예술을 경험했다. 문화예술계 경력이 영화평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나?

연극을 전공했고, 오페라와 시각예술, 무용예술과 인연을 맺었다. 예술가를 지원하는 분야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고 친분을 쌓아왔다. 내가 쓰는 글에도 각 장르 예술의 특성이 알게 모르게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인문학으로서의 극작, 텍스트인 것 같다.

45세라는 늦은 나이에 영화평론계에 데뷔한 셈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나?

젊은 시절에 시작했다면 놓쳤을 많은 것들을 품고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늘 친구들에 비해 한 박자씩 늦었다. 막연히 글을 쓰고 싶어 한국예술종합학교도 좀 늦게 들어갔고, 다시 공연이 하고 싶어서 오페라단에 들어갔을 때도 함께 입사한 친구에 비해 나이가 많았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는 뻔한 얘기지만 쉬운 건 아닌 다짐을 마음에 품고 산다.

영화평론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글을 많이 쓴다고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글에도 단련이 필요하다. 많이 보는 것만큼, 많이 쓰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은 단순히 끼적거리는 것 같지만, 그것이 쌓여 필력이 된다. 영화는 타 장르 예술의 장점들을 흡수하면서 성장해왔다. 인문학은 물론,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접해야 한다. 더불어 결국 4예술이 향하는 곳, 이야기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기본을 이해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하고 싶은 말은?

직장인 평론가다 보니 한쪽에 조금만 소홀해도 이도저도 아니라는 평가를 받기 쉬울 것 같다. 기회를 준 한국영화평론가협회에는 옳은 선택을 했다는 확신을 주고 싶고, 서울문화재단에서도 인정받고 싶다. 무엇보다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가장 행복하다. 원고 의뢰가 아주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웃음)

최재훈은 1972년 부산 출생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했다.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 팀장과 국내 최초 무용전문 창작공간인 서울무용센터에서 매니저를 역임했다. 그는 무용사진영상전 <댄스토리 서울(Danstory Seoul)>, 무용과 타 장르 예술과의 협업 프로젝트 <Colla報(콜라보)> 등 무용예술을 영상언어로 확장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각종 매체에 문화예술 칼럼과 에세이를 써왔다.

글 이규승_ 서울문화재단 IT홍보팀장
사진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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